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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재영 Sep 20. 2020

제주 도민이 되다

  제주에 도착하자마자 거주할 사택을 찾아갔다. 지은 지 30년이 넘고 빈 집으로 있은 지도 2년 정도 되다 보니 아파트 외부가 무척 낡았고 내부도 베란다와 창문 아래 벽지에 곰팡이로 얼룩지고 먼지에 잡동사니가 여기저기 널려 있어 당장 들어가 살 수가 없는 상태였다. 일단 비어 있는 주택으로 임시 거처를 정하고 아파트 정비를 시작했다.      


  청소대행업체에 의뢰하여 내부 정리부터 했다. 베란다와 창틀 사이엔 빗물이 말라붙어 있어 물때를 제거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주방과 세탁실도 먼지가 쌓여 있어 마찬가지였다. 방과 거실의 바닥은 오랫동안 닦지 않아 걸을 때마다 쩍쩍 달라붙는 느낌이었다. 일하는 분들의 노력으로 한나절 정도 청소를 하고 나니 제법 사람 사는 집처럼 보였다. 한쪽 다리가 부러져 기울어져 있는 소파와 사무용 의자는 대형폐기물로 처리하였다.


  사택은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상태였다.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냉장고, 세탁기, 텔레비전과 같은 기본적인 전자제품이 필요하다. 모두 사자니 돈이 만만치 않게 들게 생겼다. 동료 직원들과 점심을 하면서 넋두리를 하니 한 동기가 빌려 줄 수 있다고 했다. 연유를 들어보니 동기도 나처럼 제주에 와서 전자제품이 필요하여 구입하였는데 사택을 옮기다 보니 두고 간 제품이 있어서 구입한 제품은 사용하지 않고 있으니 가져다 사용하라고 했다. 역시 말은 해보고 볼 일이다. 동기 덕분에 세탁기와 냉장고, 텔레비전 무상으로 구하게 되었다.  

    

  기본적인 것들이 갖추어지고 입주를 했다. 층수가 4층이니 짐이 아무리 적어도 사다리차가 필요했다. 대충 짐 정리를 하고 씻으려는데 세면대 똑딱이 물마개가 없었다. 근처 철물점을 찾아 팝업 세트를 구입해 와 공구들을 꺼내 놓고 한참을 낑낑거렸다. 인터넷으로 설치 방법을 조회하며 조립을 하고 나니 자정이 넘었다. 우여곡절 끝에 이사를 마치고 첫날밤을 보내는 데 눈물이 날 정도로 기뻤다. 그간 이사도 많이 하고 직접 집을 지어도 보았지만 자신이 모든 것을 해결하여 생활을 할 수 있는 집을 마련하고 나니 뿌듯함마저 있었다.          


  혹여 다른 하자는 없나 하는 약간의 불안감이 있으면서도 별 일없이 며칠을 지나다 보니 마음도 점점 안정을 찾아가고 있을 무렵 제주에 태풍이 왔다. 귀가 길에 태풍으로 중형 승용차인 내 차가 휘청하고 흔들리는 것을 보 제주의 바람이 대단하다는 걸 몸소 체험하게 되었다. 창문을 꼭꼭 잠그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바람과 빗소리에 깨어 거실로 나와 보니 주방 쪽 바닥이 물바다가 되어 있었다. 신혼 초에 살았던 반지하방이 떠올랐다. 부지런히 닦아내고 창문을 살펴보니 리모델링을 하며 창틀을 하나 덧대면서 창틀 사이를 막지 않아 그 사이로 물이 들어오고 있었다. 잠을 설치며 물을 닦아내고 다른 곳도 새는 곳이 있는지 살펴보니 베란다의 창틀에서도 물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비가 그칠 때까지 한바탕 소동을 치르고 나니 정신이 없었다. 날씨가 개이고 실리콘을 이용하여 틈을 메워 보수를 했다. 또 하나의 문제가 해결되었다. 오랫동안 비어 있던 집이라 이전에 살던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니 집 상태를 물어볼 수도 없고, 단지 시간이 지나며 더 이상 문제가 생기지 않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외적인 시설이 어느 정도 정비가 되고 이젠 생활이 편리하도록 준비하는 일이 남아 있었다. 식탁만 있고 의자가 없어 플라스틱 의자 두 개와 접이식 의자 두 개를 구입했다. 에어컨이 고장 난 상태라 임시로 선풍기도 구입하고 가스레인지도 새로 구입했다. 거실용 소파와 책상을 구입하면서 캠핑 때도 쓸 수 있도록 캠핑용 의자와 접이식 테이블로 구입하였다. 식사를 해결하기 위한 전기밥솥과 전기주전자도 구입하고 꼭 필요한 주방용품도 준비했다. 살림이 하나하나 늘어나면서 주거지의 외형이 갖춰져 갔다.      


  그동안 여러 지역에서 객지 생활을 하였지만 가전제품 같은 생활용품이나 주방용품을 구입한 적 없었다. 나 혼자 잠만 자면서 생활하다 보니 식사는 구내식당에서 해결하고 저녁에도 야근을 주로 해서 딱히 집에 있을 시간이 없었다. 매주 주말마다 집에 오다 보니 생활 근거지라기보다는 임시 거처로만 생각하여 최소한의 생활을 하며 지냈던 것이다. 이번 제주에서의 생활은 마음자세부터 달랐다. 제주에 있는 동안 주민으로 생활하면서 가족들과도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낼 예정이어서 준비를 철저히 했다.      


  며칠을 보내다 보니 화장실에 비데가 없어 불편했다. 그냥 지낼 수도 있으나 오랫동안을 생활하려면 있는 게 낫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여기저기 발품을 팔아 가성비 좋은 제품으로 구입을 하고 설치비를 아끼기 위해 유튜브를 보며 직접 설치도 했다. 전원을 꽂으려는데 아뿔싸 콘센트가 없다. 난감했다. 관리사무소에 가서 도움을 청하니 직원분이 직접 와서 보더니 스위치와 콘센트를 구해 오라고 했다. 마트에서 구입해 드리니 욕실 전등에서 선을 빼서 전원 스위치와 콘센트를 분리하여 설치해 주었다. 시행착오를 하며 4층 계단을 수회 오르내렸다. 헉헉거리는 나를 보고 직원 분이  아파트는 오래되어 엘리베이터가 없으니 나올 때 한 번에 일을 처리할 수 있도록 잘 챙겨야 한다고 조언해 주었다. 1년 정도 살면 허벅지가 튼실해질 테니 괜찮다며 애써 웃어 보였다.

      

  다 되었나 싶었는데 딱 한 가지가 아쉽다. 텔레비전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아내가 집에 혼자 있으면 심심할 텐데 걱정이다. 방안 구석구석을 살펴보니 안방에 텔레비전 케이블 단자가 있었다. 텔레비전을 보려면 안방에 설치를 하거나 안방 문을 열어 둔 상태로 안테나 케이블을 거실까지 끌어와 연결해야 했다. 둘 다 맘에 들지 않았다. 거실을 살피다 보니 콘센트 옆에 덮개가 있었다. 혹시 하는 마음에 열어보니 그 안에 안테나 케이블 단자가 들어 있었다. 심마니가 이런 심정이었을까. 혼자서 기쁨에 소리를 지를 정도였다. 누가 봤으면 이상하다 했을 것이다. 안테나 케이블을 연결하니 정규방송이 선명하게 나왔다. 아무도 없는 거실에 텔레비전 소리라도 흘러나오니 덜 적적했다. 혼자서도 척척 잘하는 내가 기특했다. 모처럼 느긋한 마음으로 거실에 있는 캠핑용 의자에 기대어 캔 맥주를 즐기며 뉴스를 시청했다. 한 달 동안의 긴 이사 여정을 마치고 제주살이가 시작된 것이다.


연동주민센터에 가서 전입신고를 했다. 돌아오는 길에 제주시장으로부터 제주시 전입을 환영하는 문자가 왔다. 이렇게 제주 도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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