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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재영 Jun 16. 2021

나의 일이 되면

나의 일이 되면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너무도 당연한 진리이고 역사상 단 한 사람의 예외도 없었다. 태고 이래 수많은 권력자나 부호, 현자들이 영원 불사의 방법을 찾기 위한 연구와 노력을 하였으나 아직 그 방법을 찾지 못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많은 면이 불공평하지만 죽는다는 사실만은 모두에게 동등하다. 죽는 시점도 인간의 능력으로는 어찌할 수 없으니 죽음 앞에 인간은 겸손하고 한없이 작아진다. 


세계는 코로나와 전쟁 중이다. 코로나를 이겨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백신 접종뿐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백신 접종이 한창이다. 대중 매체에서는 연일 접종 건수와 사고 건수, 사망 건수가 실시간 방송되고 있다. 백신에 대한 두려움으로 접종 속도가 저조하다느니, 어느 백신이 접종 후 이상 반응이 많다느니, 접종 후 이상 반응으로 치료를 받는 사람이 있다느니, 접종 후 사망자가 발생하였다느니 하는 백신 접종 관련 정보가 매스컴을 통해 하루 종일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렇듯 세상이 아무리 시끄러워도 아직 접종 대상이 아니었던 나에게는 관심 밖의 기사거리에 불과했었다. 그러다 예기치 않게 일찍 접종을 하게 되었다. 


나의 접종 일자를 연락받는 순간 모든 게 바뀌었다. 여태껏 궁금하지 않던 접종 후 이상 반응 현상이 가장 중요한 관심거리가 되었다. 자료도 찾아보고 접종 후 대응법에 대해서도 알아보기 시작했다. 극히 예외적이어서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큰소리쳤던 접종 후 이상 반응 확률과 사망률도 막상 나의 일이 되니 확률이 극히 낮다는 사실은 별 의미가 없었다. 아무리 적은 확률도, 아니 단 한 명이여도 그게 바로 내가 될 수 있다는 막연한 공포심과 불안함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독감 예방 접종 후 사망률보다도, 교통사고 사망률보다도 훨씬 낮다는 말들도 감언이설로만 들릴 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내가 이 정도밖에 안 된 사람이었나 자책을 하며 애써 의연해보려고 하여도 걱정스러운 마음을 쉬 떨칠 수 없었다.  


어머니는 연세가 많아서 접종 신청을 하라는 연락이 가장 먼저 왔었다. 백신은 연세 많은 분들이 꼭 맞아야 한다며 어머니의 의사는 듣지 않고 대신 신청을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어머니는 걱정을 많이 하시는 듯했다. 주위에서 백신을 맞고 아파서 고생을 많이 하였다는 말을 들으면서 고민이 더 깊어지는 듯했다. 많은 사람들이 맞고 있고, 이상 반응 확률도 극히 일부이고, 맞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하는데 너무 걱정을 많이 하시는 것은 아닌지 하는 마음마저 들었다. 그래도 결코 강요를 하여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어머니의 의중을 여쭤 봤다. 어머니는 맞고 싶지 않다고 하였다. 가족들의 생각도 어머니의 의사를 존중해 드리는 게 좋다고 하여 결국 포기를 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접종율도 높아지고 친척 분들도 접종을 하였다는 소식이 들리면서 어머니의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가족들도 연세 많으신 분들에게는 코로라가 더 위험하고 언젠가는 맞아야 한다는 의식이 생기면서 어머니도 접종을 하는 게 좋겠다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고민 끝에 접종 신청을 했다. 아내가 어머니를 모시고 가서 접종을 하고 3일간은 어머니 집에서 생활하며 보살펴 드리기로 계획을 세웠다. 어머니도 며느리가 같이 있겠다고 하니 접종에 대한 거부감이 줄어들며 마음도 편안해지는 듯했다.


그 무렵 접종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생기면서 대상자가 아니어도 미리 신청을 하면 접종을 할 수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어차피 맞아야 하니 아내에게 일찍 맞는 게 어떻겠냐고 물어보니 기회가 되면 일찍 맞고 싶다면서 바로 신청을 하였다. 나도 같이 맞기 위해 막상 신청을 하려고 하니 그 많던 호기는 어디로 가고 주저하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거리도 멀고 근무에도 지장이 될 것 같다는 등등의 말도 안 되는 합리적인 이유를 찾으며 신청을 미뤘다. 하루가 지나며 마음이 불편해지고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고 좀스러웠다. 내 일이 아닐 때는 과학과 확률과 의무라는 그럴싸한 언어들을 동원하며 상대방의 감정은 생각하지 않고 상대방의 마음을 함부로 강요하려 했던 행동들이 부끄러웠다. 


고심 끝에 내가 먼저 접종을 하여야 어머니나 아내가 편안하게 접종을 할 수 있다는 거창한 사명감까지 동원하며 못난 남자가 먼저 접종을 했다. 접종 후에도 매스컴에서 쏟아져 나오는 이상 증상에 대한 겁박 소식으로 불안함은 여전했다. 하루 이틀 정도의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상상과 가정들이 생겼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며칠 동안이었지만 모든 사람들이 누리고 있는 일상에서 나만 홀로 벗어나 있는 것 같아 우울하기까지 했다. 근육통과 몸살 기운이 생겨 준비해 둔 약을 두 차례 복용한 것 외에 특별한 이상 없이 일상을 찾아가고 있다. 시간이 흐르며 두려움의 강도와 불안함은 조금씩 적어지고 있지만 아직도 완전히 벗어나진 못하고 있다. 뒤이어 어머니도 조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접종을 하셨다. 아마 어머니의 마음도 이해하지 못하고 정답만을 강요하였던 나에게 많이 서운하셨을 것이다. 

내 일이 되면 모든 게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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