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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재영 Nov 01. 2022

천년애사

당신을 만나러 가는 길 위에 비 개인 시린 하늘이 눈물을 머금고 있습니다

저 멀리 걸려 있는 무지개가 늦게 찾은 나를 원망하듯 얼굴을 감추네요

탁 트인 잔디밭에 화려하고 웅장한 자태를 뽐내며 우뚝 솟아 있습니다

당신의 멋진 모습을 담기 위해 앞다투어 사진기를 들이댑니다

천년 백제의 찬란한 영화가 되살아나듯 눈부십니다


눈물을 삼키는 애절한 울음소리에 정신이 번쩍 드네요

미륵사지 한편에 천년 역사의 한을 간직한 돌덩이들이 흩어져 있네요

갈기갈기 찢긴 사체의 잔해를 보듯 가슴이 아려 옵니다

피로 물든 육신 한 점 한 점에 지나온 당신의 설움과 고통이 묻어 있습니다

환영에 취한 나를 자책하듯 자릴 뜨지 못하고 서성이게 합니다


용화산 기슭에 어둠이 내리고 천년의 아픔을 씻어줄 탑돌이가 시작되면

서동과 선화가 손잡고 거닐며 소원했던 사랑의 힘으로 

아물지 않은 상처의 붕대를 풀고 새살이 돋기를 

더 이상 아프지 말고 앞으로의 천년을 지켜 주기를

과거와 현재, 미래를 품은 미륵사지에서 당신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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