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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rice Jul 26. 2019

[Day 9] 처음이 아니지만 처음이 되는 순간

한가한 일요일 아침, 5층으로 내려와 여유 있게 아침을 시작한다. 오늘은 스크램블 에그와 소시지가 메인이다. 그래도 메인이 매일 바뀌니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Science World at TELUS World of Science


오늘의 첫 코스는 사이언스 월드. 원래 9시까지 야간개장인 화요일 저녁에 가려다가 여유 있게 보면 좋을 것 같아 일요일 오전으로 바꿨다. 비교적 일찍 도착해서일까 주말인데도 주차장도 한산하고 실내도 붐비지 않아서 신기했다.



물총을 쏘는 액티비티 뒤에는 지구에 물이 얼마나 있는지 식수로 사용 가능한 물은 그중 얼마인지를 알려주는 문구가 있고 쳇바퀴를 직접 도는 코너는 얼마나 힘들게 돌려야 에너지가 생산되는지 게이지로 볼 수 있게 되어 있고 차를 모는 기구에서는 에너지에 대한 기본 상식을 중간중간 물어 점수를 획득하게 되어 있는 등 놀면서 중요한 과학 상식을 배울 수 있어 참 재밌고 유익해 보였다.


주변을 둘러보니 어른들끼리 와서 체험하고 노는 모습이 보여 사뭇 새로웠다.

우리나라의 과학관은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그들을 위한 공간이라는 인식에 일부러 놀러 가는 청년들을 보기도 힘들뿐더러 어른들은 주로 핸드폰을 보거나 카페에서 수다 떨거나 아예 취침을 하는 등 어린이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려는 듯 서로의 시간으로 분리된 느낌인데...


고등학생이나 대학생으로 보이는 남자아이들이 신나게 체험하는 모습이나 중년의 그룹이 차분히 대화하며 그들의 속도로 둘러보는 모습 등이 낯설지만 닮고 싶은 모습이다.


아이들이 신체 주제방에서 액티비티를 하는 동안 잠시 앉아있는데 안내방송이 쩌렁쩌렁하게 울린다. 본 섬? 나라의 제군들 재밌는 시간 보내고 있냐, 잠시 후 몇 시에 어디에서 어떤 프로그램이 있을 예정인데 엄청 재밌을 거니 꼭 봐라는 내용이었는데 씩씩한 뮤지컬 어투로 어찌나 재밌게 안내방송을 하던지 피식 웃음이 났다. 나는 이런 테일이 너무 좋다! 뭔가 통일된 주제를 향하는 작은 요소 하나하나가 전체 분위기를 만드는... 직업병인지 벽의 글씨체나 문양, 유니폼 등 큰 주제를 위해 고민한 디테일을 접하면 손뼉부터 치고 싶다.


무대에서 과학쇼를 한다는데 잠깐 볼까?

고체, 액체, 기체의 상태를 설명하면서 드라이아이스가 담긴 병 입구에 풍선을 달아 부풀어 오르게 하고 프링글스 통에 액체를 부어 이산화탄소가 뚜껑을 날아가게 만드는 등 익살스러운 행동에 아이들은 서로 손을 들어 나가려 하고 날아가는 뚜껑들에 허둥대는 모대 모습에 배꼽 잡고 넘어간다.

간단해 보이는 실험 보조를 하러 무대에 올라와도 고글에 장갑을 착용하고 조심스럽게 보여주는 모습에 역시나 우리보다 매뉴얼에 강하구나 싶었다.

별 관심 없어 다른 곳에서 놀던 두 녀석도 슬그머니 다가와서 같이 보기 시작했다. 여행에서의 시너지란... 하나보단 둘이, 둘보단 넷이 더 좋은 이유지 싶다.


슬슬 나갈 시간이 되어서 출구로 걸어가는데 아까 봐 둔 놀이 코너가 있다. 지난주에 학교에서 해봤다며 능숙하게 접시 돌리기를 시작한다, 모래시계 비슷하게 가운데가 잘록한 걸 끈으로 던지며 갖고 노는 놀이 기구를 보고 어떻게 하는 거냐고 묻길래 자원봉사 오빠한테 가서 물어보라고 했더니 수줍은 듯 조심히 다가선다.


"한국분이세요?"

훈남 자원봉사 학생은 캐나다에서 태어난 한국인이었다. 한국말이라며 막내가 엄청 반가워한다. 허당 미 넘치는 훈남 학생은 둘째에게 놀이를 설명해주려다 몇 번 실패하자 머쓱하게 웃으며 실은 본인도 잘 못한단다. 쑥스러워하는 모습에 우리도 빵 터졌다. 아이들과 가볼만한 곳 추천해달랬더니 서스펜션 브릿지를 얘기하길래 이미 가봤는데 다른 곳 없냐고 했더니 한참을 고민하더니 잘 모르겠단다. 그랜빌 워터파를 지금 가려는데 어떠냐고 물었더니 한 번도 안 가봤단다. 내가 웃으며 "그럼 여기서 뭐하고 놀아요?" 했더니 이내 그 머쓱한 미소로 쑥스러워한다. 한국에서 가져온 군것질거리를 호텔에 다 두고 온 게 아쉬웠다. 뭐라고 주고 싶은 아줌마 맘에 발걸음이 아쉬웠지만 고맙다는 인사를 뒤로 하고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캐나다에서 워터파크는 한번 가야지!

이동하는 중에 간식으로 체력 충전 중인 뒷열

워터파크를 가기에는 거리도 멀고 날씨도 추워서 선뜻 내키지가 않아서 잠깐 물놀이할 가까운 곳이 필요했다. 마침 과학관도 가까우면서 점심도 해결할 수 있는 그랜빌로 가야겠다 싶었다.


지난 토요일 우리 밴쿠버 일정의 첫 장소였던 그랜빌 마켓에 이렇게 다시 왔다. 익숙한 듯 주차를 하고 점심부터 먹자며 마켓 쪽으로 걸어 나오는데 바로 워터파크가 보인다(여긴 공원에 아이들용 분수만 있어도 워터파크라 부름...). 어쩔 수 없이 바로 워터파크로 가서 자리를 잡고 수영복으로 갈아입었다. 다행히 탈의실과 사우나, 샤워실이 갖춰진 곳이었다. 이 곳을 찾은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슬라이드! 아이들에게 워터파크의 가장 필수조건이 슬라이드라 왠지 이 곳은 아이들이 흡족해하지 않을까 싶었다. 슬라이드를 보자마자 달려갔는데 문제는 날이 춥다는 거다.


Granvill waterpark

선선한 가을 날씨다 보니 우리나라에서 성수기를 비껴서 워터파크에 간 느낌이다. 햇살은 강한데 바람이 차가워서 물에 젖어 나오면 오들오들 떨리는 날씨다. 결국 몇 번 탄 걸로 만족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점심은 마켓에서 푸짐하게 시켜먹자며 야심 차게 들어갔는데... 주말이다 보니 인산인해다.


겨우겨우 비집고 돌아다니는데 큰 딸이 미리 찾아뒀던 피시 앤 칩스 가게는 줄이 어마어마하다. 그래도 먹어보겠다고 어느새 줄을 서고 있다. 나머지 아이들에게 뭐 먹고 싶냐고 각자 고르랬더니 둘째는 나쵸칩 세트를 먹겠다는데 나머지 둘은 딱히 눈에 들어오는 메뉴가 없는 눈치다.


그래서 일식집에서 돈가스 덮밥과 새우튀김을 시키고 아까 오면서 봐 뒀던 베이커리에서 에그타르와 당근케이크를 사서 테이블로 돌아왔다.

비는 주말 마켓에서 빈 테이블을 잡고 음식을 주문하고 나르는 일은 그야말로 전쟁이다.

특히 함께 움직여줄 동료 없이 애들을 앉혀놓고 혼자 주문하고 배달하고 먹이고... 말 그대로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지는 모르게 정신없이 흡입하고 얼른 그 공간을 벗어나야겠다 싶었다.



제대로 된 커피를 못 마신 채 느끼한 튀김류로 배를 채웠더니 커피가 간절해졌다. 아이들이 길거리 공연을 보겠다길래 이때다 싶어 아까 지나면서 봐 뒀던 모퉁이 카페로 갔다. 



도 덥고 해서 아이스커피를 주문했는데 그냥 brew coffee에 얼음 넣은 느낌... 시원한 맛에 열심히 마시긴 했지만 정말 영혼 없는 맛이다. 3천 원 커피에 너무 많은 걸 기대하지 말자며 스스로를 위안하며 최선을 다해 마시고 마지막 한 모금은 보내주었다.


큰 딸은 여기저기 다니며 아기자기한 물건 구경하는 게 참 재밌는 감성 충만한 소녀다. 마켓 구경을 더 하고 싶은데 주차장 가는 길이 못내 아쉬웠는지 옆 건물을 가리키며 잠깐만 다녀오면 안 되겠냐고 조른다. 잠깐이라는 단어에 동요돼서 허락을 해주고 나니 둘째는 아까 본 사과 한 덩이에 캐러멜을 코팅한 군것질거리가 생각나나 보다. 그렇게 나머지 세 명도 다시 왔던 마켓으로 돌아가고..

 혼자 덩그러니 짐을 들고 길에 서 있는데 바로 앞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안주에 마침 칵테일 아워 시간인데... 같이 갈 사람이 없다. 저들을 두고 차도 있는데 혼자 자리 잡을 수도 없고... 그저 바라보기 아쉬워서 사진 한 장 찍으며 마음을 달랬다.


큰 딸은 여전히 소식이 없다. 안 되겠어서 건물에 들어가 보니

가게 유리창 너머로 낯익은 얼굴이 보인다. 맘 같아서는 충분히 시간을 주고 싶지만 나머지 아이들의 기다림도 외면할 수 없고 실은 주차비도 아깝고 해서 가자고 했더니 그 책이 마음에 들었는지 살까 말까 들락날락 거리며 고민하더니 내려놓고 왔다.


캐러멜 사과팀이 우걱우걱 사과를 씹으며 돌아왔는데 아들이 안 보인다. 혼자서 중간에 돌아갔다는데 아직 안 왔다는 거다. 큰 딸이 카톡으로 위치 설명하고 사진 보내고 하더니 멀리서 익숙한 비주얼의 사내아이가 간판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는 게 보였다. 동생들에게 얘기하니 쏜쌀같이 달려가서 잔소리를 합창하며 데리고 온다.

주차장으로 향하는 길에 맛집으로 소개되어 있던 그랜빌 양조장을 지나치는 게 아쉬워 들려다보고 있으니 아이들이 사가자고 등 떠밀어 들어왔다. 결국 한국에 가져가서 뒤풀이로 다 같이 마셔야겠다는 생각에 8 캔들이 박스를 샀고 큰 딸이 트렁크까지 열심히 들어준다.


Metro Police Mall   

방 청소하면서 너무 이쁘게 인형을 정리해줘서 아이들이 엄청 좋아함(프레임에 들어온다고 나오라는데도 구석에 어떻게든 껴있는 아들)

숙소로 돌아오니 저녁 6시... 우리에겐 너무 이른 귀가 시간이다. 이제 이 숙소에서도 마지막 밤이라 왠지 버나비에는 다신 올 일이 없을 것 같았다. 밴쿠버에서 제일 큰 쇼핑몰이 숙소 3분 거리에 있다는데 한번 가봐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아이들을 이끌고 쇼핑몰로 향했다.


거리는 정말 가까웠고 쇼핑몰은 정말 컸다. 이것저것 구경하다가 월마트 들러 장도 보고 달콤한 군것질거리로 장식된 곳에서 사진도 찍고 그렇게 놀다 보니 어느새 가게가 하나둘 문을 닫고 있다. 일요일이라 좀 일찍 닫는구나 싶어 우리도 서둘러 숙소로 돌아왔다.



오늘 밤도 어김없이 아이들은 출석하듯 수영장에 갔고 샤워 후 배고프다고 난리다. 오늘의 메뉴는 흰밥에 코스트코 갈비맛 스튜와 김치 그리고 불닭볶음면!

낮에 느끼한 튀김류를 가득 먹어서 매운 게 당겨서인지 다들 정신없이 흡입했고 만족스러웠는지 연신 엄지 척이다. 내일 가져갈 간식으로 과일까지 챙기고 나니 할 일을 대충 끝낸 느낌이다.


과학관에서 내내 팝콘 냄새가 나서 계속 먹고 싶어 하는 눈치라 월마트에서 레인지용 팝콘을 집어왔다. 자기 전에 팝콘 튀겨 영화 보는 시간을 마련했더니 아이들이 침대에 옹기종기 모여 신이 났다. 세상에 이렇게 뜨겁게 맛있는 팝콘은 처음이란다.  


뭐든지 실제로 처음은 아닐지라도 처음으로 기억될 만큼 소중한 추억으로 남는다는 건 감사한 일이지 싶다.

오늘도 이렇게 2달러 팝콘이 주는 소소한 행복에 감사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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