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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rice Jul 26. 2019

[Day 11] UBC 일상에 익숙해지기

어제 늦게 자서일까, 아니면 수영장이 코앞이라 생기는 여유일까... 8시 알람이 울린 후에야 일어났다. 오늘 아침은 얼려둔 베이글 토스트에 첫날 아침 사용하고 내내 가지고 다녔던 핫케이크, 시리얼이다. 메뉴는 간단해 보이는데 뭔가 일이 많다. 얼려둔 베이글 해동 후 토스트기에 구워야 하고 핫케이크 반죽해서 구워야 하고... 그런데 문제는 프라이팬이다! 코팅이 아닌 스테인리스 프라이팬이라 첫 반죽은 완벽한 실패. 너무 만만하게 본 것이다. 이대로 물러설 수 없어 바로 설거지 후 재도전! 한국에서 스테인리스 프라이팬을 쓴 노하우를 살려 예열 후 버터 둘러 구웠더니 성공! 그 뒤로는 숟가락 만한 사이즈로 미니 팬케이크로 업그레이드! 그렇게 남은 팬케이크 가루도 완벽히 소비하고 나니 뿌듯하다.


수영장에 아이들을 데려다주고 손 흔들고 나와서 카페로 향했다. 어제 아침식사 장소로 추천받은 숙소 근처 카페에 가서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Great Dane Coffee @ UBC

카페도 이쁘고 라테 만드는 손길을 보며 라테도 참 맛있겠다 생각하고 있는데 내 이름이 불렸다. 가서 보니 헉! 일부러 brew coffee를 안 시키고 진하게 마시고 싶어 좀 더 비싼 americano를 시켰는데 멀겋게 뜬 이 시커먼 물은 뭘까... 크레마라고는 전혀 없는... 내가 좋아하지 않는 원두커피 씻어 나온 물 느낌이다. 굳이 마시지 않아도 이번 커피는 망했구나.... 싶었는데 한 모금 마셔보니 역시나 망했다. 다음부턴 라테를 시켜야 하나... 시무룩한 발걸음으로 숙소로 돌아왔다.


역시 아이들이 떠나간 빈 숙소는 난장판이다. 하우스키퍼가 이쁘게 청소해주고 가려면 일단 물건들을 모두 정리를 해야 한다. 어제 빨래팀이 가져온 세탁물까지 모두 주인들 가방에 넣고 오후 간식까지 챙기고 나니 11시다.

숙소에 매일 비치되던 커피컵 모아서 간식용 과일컵으로 재탄생

점심을 해놓고 나가면 시간이 맞을 것 같아서 김치볶음밥을 시작했다.


소고기 깍두기 김치볶음밥

버터 두른 팬에 다진 소고기 한 덩이 볶다가 무섞박지를 썰어 같이 볶은 후 밥, 고추장, 참기름으로 볶고 마지막에 볶은 김치 투입! 바닥이 살짝 누르게 뒀다가 불을 끄고 큰 접시로 덮었다.

수영장에 픽업 와보니 아이들은 오늘도 역시나 재밌었단다. 더 높은 다이빙대에 올라서 텀블링도 했다며 영상을 못 찍어 아쉽단다. 내일은 와서 영상을 찍어줘야 하나 속으로 살짝 고민하다가 이내 켜버렸다.


볶음밥에 취향껏 참기름을 더해서 맛있게 먹고 다시 오후 수업을 위해 야구장으로 이동했다. 오늘은 스케이트!  려다주면서 나중에 아레나에 구경가도 되냐고 했더니 흔쾌히 놀러 오란다. 알겠다고 하고는 서둘러 내 자유시간을 누리러 출발했다.


Virtuous Pie

참기름 넉넉히 두른 깍두기 볶음밥이 너무 맛있었는데 정신없이 먹다가 겨우 숟가락을 내려놨다. 어제 봐 둔 파이집을 가기 위해서다. 아침에 마신 커피를 만회할 라테도 마실 겸 당당히 레스토랑에 들어섰다. 처음 왔다며 메뉴 추천을 해달랬더니 친절한 직원의 메뉴판을 훑는 설명이 너무 길다. 난 이미 마음으로 정했는데 자르기도 애매해서 한참 듣다가 막 얘기하려는데 자신의 최애 메뉴가 패 퍼로니 피자라며 막 흥분한다. 헙~ 난 그거 안 시킬 건데... 그녀의 열정과 합장한 손에 매료되어 넘어갈까 하다가 꿋꿋이 콘피자를 시켰다. 오 너무 잘했다며 판타스틱을 연발하는데.. 이 동네는 뭐 그리 일상이 퐌타스틱인지... 조용히 라테를 추가하는데 코코넛 밀크, 두유, 아몬드 밀크 중에 고르란다. 헐~ 난 진심 제대로 진한 라테를 마시고 싶은데... 어쩔 수 없이 의심의 눈빛으로 코코넛 밀크를 골랐는데 여전히 잘했다고 칭찬일색이다.



자리를 잡고 노트북을 올려놓자 곧 내 이름이 불렸다. 찰랑이는 라테를 들고 오는데 오늘도 역시 도자기잔이다. 내 운명이지 뭐.. 오픈 키친에서는 피자 만들기가 한창인데 다되면 메뉴 이름을 호명하면 알아서 가져가는 분위기인듯했다. 아.. 내가  시킨 피자 이름이 기억이 안 나는데.. 다시 가서 보기도 그렇고 그냥 열심히 일하는 척하면 갖다 주겠지... 역시나 자연스러웠다. 다른 몇몇 테이블도 그렇게 받는 걸 보니 셀프 픽업은 일부 부지런한 손님들의 몫인 듯싶다고 혼자 결론을 내렸다.

 

피자는... 진심 맛있었다. 레스토랑의 대다수가 혼자 앉아서 피자나 샐러드를 먹는 혼밥러였는데 그들의 다른 메뉴도 탐이 났다. 여정의 끝에서야 혼밥을 즐기게 되다니... 아쉽지만 남은 며칠 기회도 최대한 노려보기로!


아이스링크에 잠깐 들러 아이들이 어떻게 하고 있나 슬쩍 보고는 다시 밖으로 나왔다. 아이들이 신은 스케이트를 보니 장비가 아주 훌륭하다. 우리나라 스케이트장 렌털 장비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생각을 하며 밖으로 나오는데 꼬맹이들이 하키 장비를 풀 세팅한 채 들어오고 있었다. 이런 인프라가 여전히 부럽다.

마칠 시간이 되어 아이들을 데리러 가자 오늘도 재밌었다며 스케이트장을 우리끼리 한번 더 가고 싶다고 한껏 들떠있다.


아이스크림도 사줄 겸 우유도 살 겸 마트로 향했다. 여자 아이들은 기다렸다는 듯 빠르게 한 개씩 집어 올리는데 아들 녀석은 안 먹겠단다. 첫날부터 눈여겨보던 내가 좋아하는 샌드 아이스크림을 가리키며 이모랑 나눠먹자고 암만 꼬셔도 안 넘어온다. 이번 여행에서 샌드 아이스크림을 먹기는 힘들 모양이다.


아빠 줄 선물로 올리브 오일 샀다고 신이난 큰 딸


아껴둔 떡볶이 대방출

우유도 넣을 겸 숙소로 온 김에 저녁을 먹고 외출하기로 했다. 메뉴는 그동안 아껴뒀던 떡볶이! 무려 두 봉지를 끓여서 도 곁들여 넉넉히 먹었다. 먹다 보니 밥이 살짝 모자라길래 급하게 냄비밥을 올렸는데 그사이 식사가 끝나버려서 밥은 뜸 들게 젤 낮은 불로 올려놓고 내일 아침으로 먹어야겠다 싶었다.


Slidey Slides Park

렌터카 마지막 날이라 아이들에게 어디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놀이터를 꼽는다. 지난번 노을이 이뻤던 놀이터는 너무 멀어서 허츠와 통화하는 동안 다른 곳 찾아보라고 미션을 줬더니 큰 딸이 카톡으로 구글맵 링크를 보내왔다. 렌터카 연장도 금요일만 하루 빌리는 것도 서버가 다운되고 이곳저곳 전화를 넘기고 하는 통에 쉽지가 않았다. 결국 일단 저녁 일정을 시작해야겠다 싶어 큰 딸이 보낸 링크를 목적지로 설정하고 시동을 켰는데... 허걱! 50분이 걸린단다.

일단은 다른 대안을 기에 시간도 늦었고 숙소 나서면서 정신도 없고 렌터카도 마지막 여정이라 드라이브 겸 그냥 출발했다.


너였구나, Stove

가는 동안 아이들의 숙면은 시작되었고 한참을 가다가 문득 냄비밥 올린 하이라이트를 켜 둔 채로 출발한 게 기억이 났다. 목적지까지는 불과 10분 남은 상황! 돌아가도 이미 30분은 걸린다. 순간 냄비가 타면서 불이 나면 어떡하나... 경보 알람이라도 울리고 소방차가 출동하면 상황이 심각해질 텐데... 별별 생각이 다 나면서 마음이 조급해졌다. 일단 옆에서 자는 큰 딸을 깨워 텔로 전화하라고 시켰더니 영문을 모른 채 잠이 덜 깬 아이는 투덜거리며 너무 느리다. 답답해서 아들에게도 전화하라고 시키고 어디라도 잠깐 세워야 하나 두리번거리는데 구글에 나온 전화는 예약센터 자동응답기라 근무 시간이 지났다고 연결이 안 되고 당일 예약용 직원 연결 버튼을 누르면 먹통이다. 결국 놀이터에 도착해서 아이들만 내려준 후 차에 앉아서 이메일부터 검색했는데 전화번호가 구글과 같다... 다시 그 번호로 걸어서 대기하다가 겨우 프런트 데스크와 연결이 되었다. 내 방 번호를 얘기하고 직원을 보내서 인덕션을 꺼줄 수 있냐고 얘기하는데... 이 남자 인덕션을 모른다. 아차! 하이라이트였지 싶어서 다시 정신 차리고 하이라이트라고 설명했는데 역시 모른다. 팬을 켠 거냐 에어컨이냐 뭐 이런 얘기만 계속해서 주방에서 쓰는 거고 따듯하게 만드는 거고 뭐 이런 설명을 하는데 된장.. 급하다 보니 냄비가 영어로 뭔지 생각이 안 난다. 어쨌든 우여곡절 설명이 통했고 내 방에 직원 보내서 꺼주겠다는 직원의 대답에 너무 고맙다고 인사 후 전화를 끊었다. 로밍도 안 했는데 통화비 많이 나왔겠다 싶었지만 어쨌든 상황이 해결된데 만족하고 잠시 한숨 돌린 후 문제가 없는지 다시 확인 전화를 했다.

다른 여자 직원이 받길래 아까 했던 설명을 처음부터 다시 했다. 된장... 하이라이트 설명에서 다시 막혔다. 아까 통화한 남자 직원 바꿔달래도 지금 없단다. 결국 이 상황을 슈퍼바이저가 알 것 같으니 연결해주겠다고 기다리란다. 통화료가 걱정되지만 찝찝할 순 없으니.. 게다가 사라진 남자 직원도 의심스럽고 해서 연결을 기다렸다. 잠시 후 새로운 여자 직원이 전화를 받았다. 상냥한 목소리로  

"뭘 도와드릴까요?"

된장... 다시 처음부터 설명이다. 나도 뿔이 나서 아까 얘기 다 했는데 다시 얘기하는 거라면서 또 설명을 이어갔다. 역시나 같은 곳에서 막혀서 낱말밎추기마냥 원초적인 설명을 시작하는데... 드디어 그 단어를 찾았다!!! 스토브였다.ㅠ 그런데 직원이 방에 가서 처리했는지 확인해봐야 하니 잠시 기다리란다... 다시 기다림의 시간이다. 결국 잘 껐고 문제없다는 답을 듣고서야 전화를 끄고 차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놀이터로  걸어가는데 이미 노을이 어둑하게 내려앉고 있었다. 놀이터를 처음 접한 순간의 첫 느낌은

'여길 오려고 50분을 온 걸까? 스토브에 불도 안 끈 채로 급하게 달려 나온 곳인데...'

그렇지만 아이들이 좋으면 나도 좋은 걸로~

나를 발견하자 새로운 기구들에 올라 보여주겠다고 아이들이 분주하다. 그렇게 잠시 놀이터에서 숨을 돌리고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돌아와 보니 냄비도 도 멀쩡하다. 제일 낮은 온도는 정말 안심해도 되는 온도였던 듯하다. 그래도 문제없어서 다행인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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