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larice Jul 30. 2019

[Day 12] 익숙함과의 이별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어젯밤 찍어둔 마지막 사진

오늘은 오랫동안 정들었던 렌터카와 이별하는 날이다. 크고 높은 차를 좋아하는 내게 JEEP라는 새로운 세계를 알려준... 무거운 짐도 먼 길도 함께여서 든든했던 내 여행 동반자였던 밴쿠버 친구를 떠나보내고 홀로서기를 하는 느낌이다. 공항에서 반납하는 조건으로 마지막까지 연장할까 고민도 했고 전화해서 금액도 확인했는데... 2.5일에 추가금액이 CAD300이라 선뜻 결심할 수가 없었다. 공항 숙소로 이동하는 금요일 하루 만이라도 빌려서 저녁시간에 아이들이 가고 싶어 하는 놀이터 한 곳 더 들렀으면 싶었지만 성수기 주말이라 그런지 이미 모든 렌터카가 예약을 마감했다.


아침 7시 30분 알람에 일찌감치 아이들을 깨워서 나갈 준비를 시켰다. 오늘 아침은 국밥이다. 각자 고른 즉석국에 밥을 말아 김치와 먹고 후식으로 과일과 팝콘을 곁들이며 비교적 여유 있는 아침시간을 갖고 있길래 어제 통화 못한 허츠가 생각나 통화를 하고 나니 이미 9시다. 역시 학교 앞에 살면 지각이라더니 오늘도 지각이다. 아이들을 등 떠밀어 보내고 서둘러 따라갔는데 그들은 뒤도 안 보고 수영장으로 들어간 뒤였다. 출석 사인이라도 하려고 데스크로 가니 이미 했다고 괜찮단다. 난 왜 온 걸까... 아침엔 내가 필요 없구나... 하며 털털거리는 걸음으로 카페로 향했다. 뭔가 안정적인 라테가 마시고 싶어 스타벅스를 가려다가 그래도 이제 못 마실 로컬 카페에서 더 마셔야지 싶어 어제의 그 카페로 다시 향했다. 오늘은 기필코 라테로 평가해보리라...


라테를 주문하고 잠시 기다리는데 라테를 호명하는 소리가 들렸다. 헉! 도자기잔이다. 분명 마시고 간다고 얘기 안 한 것 같은데 내가 놓친 건가... 어떡하나.. 싶어 투고 잔에 줄 수 있냐고 조심히 물었더니 내 거가 아니란다. 그 라테는 샤린느 언니 꺼였다(누군지 모름). 머쓱하지만 평온한 얼굴로 자리로 와서 다시 귀를 세우고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내 커피가 나왔다. 비주얼은... 일단 합격! 맛은... brew 커피에 밀크 거품 얹은 맛? 진하지 않아 다소 심심할 수 있지만 어쨌든 부드럽게 마실 수 있는... 아메리카노보다 훨씬 나았다. 이 집은 라테 집으로 인정하는 걸로!


커피를 들고 숙소로 와서 대충 정리를 한 후 차로 향했다. 렌터카 사무실까지 가는 마지막 여정이다. 마지막 행위라 경건하지만 늘 하던 대로 우선 핸드폰 usb선을 차에 꽂고 내비게이션을 켜고 벨트를 매고 사이드 브레이크를 풀고 시동을 켰다. 오늘의 선곡은 지니 플레이어로 듣는 한국 가요다. 왠지 모르겠지만 한국 노래가 듣고 싶었다. 창문을 살짝 내리고 출발했다. 바람과 노래 그리고 평일 오전의 한가한 도로를 보면서 마지막 드라이브를 온전히 혼자서 즐기고 있었다. 가다 보니 주유소가 보인다. 기름을 채우고 가야 했기에 들러서 빈 곳을 차지했는데... 직원이 도와줘서 리터당 몇 센트가 더 붙는 곳이었다. 살짝 고민하다가 주섬주섬 차를 빼서 자리가 난 다른 번호로 옮겼다. 

역시나 가솔린인지 몇 번이나 확인하고 주입구 호스에 기름이 흘러들어 가는 소리가 나자 심장이 덜컹한다. 그래도 무사히 연료 꽉 차게 충전 완료!


렌터카 사무실이 마침 그랜빌 근처길래 주말에 둘째가 놓고 온 모자를 혹시 찾을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에 차를 돌려서 그랜빌로 향했다. 안내데스크에 가서 분실물 센터 위치를 물으니 사무실로 가란다. 건물을 찾아가긴 했는데 올라가는 계단이 없어 다시 물어보니 건물 바깥으로 철계단이 있다. 사무실 문을 열자 "봉쥬르~"하고 나이가 좀 있으신 데스크 여자분이 인사를 건네신다. 분실물 속에 우리 모자는 없었다. 키즈 그랜빌로 가보라고 하셔서 찾아가 봤으나 역시 없다. 비록 찾진 못했지만 확인은 했으니까... 싶어 나름 홀가분한 마음으로 다시 렌터카 사무실로 향했다.


허츠 사무실이 시내에 위치하다 보니 주차장도 좁다. 병렬로 주차된 곳에 겨우 차를 세우고 직원 확인을 받고 사무실로 올라왔다. 빌릴 수 있는 차가 없다더니 역시나 사무실도 사람들로 붐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금요일만 렌트 가능하냐고 물었더니 모든 브렌치가 주말 예약을 마감했단다. 허츠에는 차가 없으니 옆집으로 가보라는데 옆 렌터카 집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깔끔하게 렌트를 포기하고 거리로 나왔다. 차가 없어 서운하긴 해도 카 찍으며 가볍게 거니는 것도 참 좋다. 큰 딸이 먹고 싶어 하던 Five guy가 도심 한가운데라 주차 걱정에 못 갔었는데 마침 렌터카 사무실에서 600미터 거리라 시내도 구경할 겸 천천히 걸어갔다.


포대 가득 무료로 퍼가는 짭조름한 피땅콩이며 메뉴판이며 인테리어 모두 런던에서 봤던 매장과 같다. 치즈버거와 그냥 버거에 핫도그를 주문하고 개별 토핑까지 주문 완료! 토핑 내역을 몇 번이나 확인하는지 나중에는 그냥 같은 내용이길래 계속 고개만 끄덕였다. 알레르기도 없고 뭐든 잘 먹는 식성이라 실은 별 상관도 없고 알지도 못하지만 최선을 다해 주문을 마쳤다. 테이블 위에 땅콩이 이쁘게 놓여 있길래 그냥 의례 세팅해놨나 보다 하고 앉았는데 아이 둘을 거느린 아저씨가

"여기 앉을 건가요?"라고 묻는다.

순간 이쁘게 놓였던 땅콩이 아저씨가 올려놓은 거구나 싶어 미안하다며 벌떡 일어나려니 젠틀한 목소리로 괜찮다며 옆 테이블에 앉는다. 고맙다고 하고 다시 앉는데 왠지 저 땅콩을 탐내서 자리를 빼앗은 것처럼 보일까 봐 가운데 땅콩은 눈길도 안 주고 시크하게 돌아 앉아 택시 앱을 깔고 있었다.


학교까지 버스로는 40~50분 걸리는데 택시로는 20분 거리다. 현재 시간은 11시 30분...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런데 햄버거를 끌어안고 나갔는데 택시를 못 잡으면 낭패였다. Yellow cap 앱을 깔았는데 로그인만 하려고 하면 바로 닫혀버린다. 몇 번을 시도하다 보니 햄버거가 나왔다. 열린 종이봉투를 들고 땅콩 포대로 가서 양껏 담아 나왔다.

나이스 타이밍! 멀리서 택시가 오고 있었다. 얼른 잡아서 학교로 향했다. 밴쿠버 첫 택시 이용이라 설레면서도 미터기의 금액이 눈에 안 들어와서 다소 불안하기도 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 그런데 돌아가는 길을 보니 역시 택시 운전사의 길은 구글맵과 다르다. 내가 모르는 길로 시내를 빠져나가서 익숙한 길로 접어드는 걸 보고 속으로 감탄을 했다.



다행히 12시에 딱 맞춰서 학교에 도착! 아이들을 픽업해서 숙소로 왔다. 유명한 햄버거를 공수해왔다는 뿌듯함에 들떠서 한참 신이 나서 메뉴 설명을 이어갔다. 엄숙하게 4등분을 하는데 패스트푸드를 싫어한다고 이미 선언했던 막내가 역시나,

"이중에 제가 먹을 거는 하나도 없는데요?"

그래도 흥분된 분위기를 이어서 핫도그까지 4등분 한 후 아이들에게 한 조각씩 먹자~ 하고 돌아서서는 막내를 위한 가락국수를 끓이기 시작했다. 반찬과 밥을 꺼내서 테이블 위에 상하나를 더 차린다. 이 와중에 아들은 본인은 치즈버거만 좋아한다며 일반 햄버거와 핫도그는 손도 안 댄다. 둘째 역시 핫그가 본인이 생각하는 비주얼이 아니라고 거부한다. 심지어 가락국수 냄새가 풍기자 아이들이 서서히 가락국수로 몰린다.

오늘도 외면당한 메뉴는 모두 내 몫이다. 햄버거와 핫도그를 열심히 먹다가 나머지 3조각은 각자 한 개씩 먹자고 꼬셔서 쥐어주는데 역시 아들이 햄버거 조각 꼭대기 빵만 먹고 말자 나머지 아이들이 억울한 듯 쏘아붙이기 시작했다. 결국 가락국수를 다 먹고 밥을 말아서 먹으려던 아들이 삐져서 안 먹길래 나는 또 큰 딸을 혼내고... 그렇게 전쟁 같은 점심시간이 지나갔다. 빠듯한 시간이라 외식으로 가볍게 넘기려 했는데 이 역시 쉽지 않다.     


낮에 즐기는 맥주 한잔!

Biercraft @UBC

아이들이 오후 수업에 들어가고 나니 차 없는 첫 오후! 커피 대신 맥주 한잔을 마셔야겠다 싶었다. 오며 가며 문 여겨 봐 뒀던 맥주집으로 당당히 들어섰다. 직원에게 로컬 맥주 추천해달라고 했더니 여러 가지를 설명하길래 고르기 어렵다고 웃었더니 맛을 보겠냐고 묻는다. 귀찮게 해서 미안한데 괜찮냐고 했더니 흔쾌히 샘플러 3잔을 가져온다. 옆에서 지켜보고 서 있서 밀맥주, IPA, 망고 순으로 급하게 세 잔을 들이켰다. 밀맥주는 흔한 맛이고 망고는 부드럽지만 달아서 평범하지만 무난한 IPA로 선택했다. 역시 오늘도 perfect 하다고 칭찬(?) 받으며 기분 좋게 오후를 시작했다. 어쩜 문을 이렇게 활짝 열어놓는데도 음식이 있는데도 날파리 한 마리 어슬렁거리지 않고 평온할 수 있는가... 햇살도 바람도 테라스 경계의 실내석에 앉은 내겐 최고의 컨디션이다. 바로 도착한 맥주의 찻모금은 일단 벌컥벌컥 들이켜주고 내려놨는데 별로 줄지 않았다. 뭔가 기대와 다르게 낮술이 살짝 버겁게 느껴지며 그냥 카페로 갈걸 그랬나 싶다가 적당히 마시고 나가야겠다 싶은데... 둘러보니 점심시간이라 음식을 곁들여 먹는 사람들이 많았다. 반질한 번이 높게 쌓인 햄버거도, 시즈닝이 아주 제대로 된 케이준 감자튀김도 나무 쟁반에 아주 고급지게 나온다. 가볍게 먹을 만한 게 없을까... 심사숙소 끝에 홍합요리 하프 사이즈를 골랐다. 해산물은 레스토랑에나 가야 먹을 수 있는데 우리 형편에 고급 레스토랑은 무리여서 여태 해산물 구경을 못했는데 사이즈도 가격도 딱이었다.  


역시 기대만큼 맛있었다. 물론 1인용 된장뚝배기만 한 그릇에 몇 알 안 되는 양이지만 배만 고팠어도 국물에 빵을 찍어서 샤도네이 한잔 마시고 싶은 맛이었다. 시간은 또 쏜쌀같아서 벌써 픽업 갈 시간이다. 마지막 한 모금까지 흡입하고 서둘러 야구장으로 걸어갔다.


이미 수업이 끝난 아이들은 바닥에 그림을 그려서 게임을 하고 있었다. 캐나다 아이, 홍콩 아이, 큰 딸, 막내 이렇게 4명에서 게임을 했다며 바닥을 보여준다. 막내에게 게임을 하기 어렵지 않았냐고, 어떻게 알았냐고  묻자 막내의 대답에 우리 모두 빵 터졌다.

"언니 그거 빙고게임이 자나. 나 당연히 알지~"

무슨 게임 인지도 규칙도 모르면서 나름의 방식으로 열심히 참여했을 막내가 귀엽다.


차 없이 걸어가는 길은 시간도 걸리고 힘도 들지만 모든 순간을 찬찬히 들여다보게 만든다. 그냥 지나치던 길이지만 걷다 보면 풀이 보이고 나무가 보이고 하늘이 보인다. 그러다가 잠깐 머물고 싶은 장소를 만나면 머물다가 다시 걷는다. 급하게 가야 할 이유도 없다.


걷다 보니 가게들이 모여있는 사거리다. 쉬어가기도 할 겸 편의점에서 음료수 하나씩 사자고 들렀는데 맞은편에 카페가 보여서 이왕이면 앉아서 마시자고 아이들을 데리고 나왔다. 둘가 이미 계산한 음료수 몇 개를 환불하려고 카운터에 갔는데 인도계 직원이 왜 환불하려고 하냐며 깐깐히 묻더니 연락처까지 쓰라고 하고 시큰둥했는지 둘째가 투덜거리며 동전을 받아왔다. 야무진 둘째는 그럻게라도 꼭 환불을 받아내는 아이라 내 대신 수고해줌에 감사함과 미안함이 들어 그녀의 하소연에 열심히 고개를 끄덕여줬다.


맞은편 카페로 걷다 보니 주변이 온통 음식 가게였다. 슬슬 배고파질 시간이라 차라리 카페 대신 저녁을 먹자고 아이들을 꼬셨다. 샐러드볼 집은 내가 너무 가고 싶었지만 아이들 취향이 아니라 패스, 라멘집도 패스, 아이들의 선택은 피자였다. 피자 2조각에 음료 1개가 세트로 된 메뉴가 있어서 딱 우리가 원하던 메뉴라며 반갑게 2세트를 시켰는데... 평소 미식가인 큰딸이 피자 4조각을 모두 다른 종류로 골랐더니 나머지 아이들의 원성이 자자하다. 하와이안 피자를 먹고 싶은데 한 조각밖에 안 시켰다고 난리다. 특히 아들 녀석이 하와이안 한 조각을 먹더니 본인은 한판도 혼자 먹을 수 있겠다고 맛있어하길래 토핑 2개 들어가는 라지 피자 한판 주문하고 토핑을 파인애플과 페퍼로니로 하면 하와이안 피자가 된다고 설명하고 슬쩍 돈을 쥐어 보냈다.


피자 한판을 또 시켰다고 누가 다 먹냐는 걱정이 딸 들 사이에서 새어 나올 즈음 피자가 나왔다. 그런데!!! 파인애플은 잘 들어갔는데 문제는 동그란 소시지가 아닌 고기가 들어가 있다. 우리가 생각했던 하와이안 피자의 비주얼은 아니지만 나름 맛있다며 특히 갓 나온 따듯함이 앞선 조각피자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렇게 맛있게 먹는 와중에 슬쩍 아까 택시 안에서 찾아봤던 클라이밍장 얘기를 꺼내봤다. 아이들이 하고 싶어 하던 루프 어드벤처는 할 수 있는 곳이 없었다. 대신 너무 멋진 클라이밍장이 있길래 좀 멀더라도 버스를 타고 가볼까 싶은 생각에 저장해놨었는데 아이들에게 얘기를 꺼냈더니 다들 대찬성이다.


버스 시간을 검색해보니 5분 후 출발이다. 나머지 피자를 허겁지겁 입에 밀어 넣고 손에 쥐고 버스정류장으로 달렸다. 예정된 시간보다 1분 일찍 도착했는데 버스가 떠나길래 뭔가 했더니 기존 시간보다 몇 분씩 늦게 오는 구조였다. 그렇게 다시 몇 분 기다리다 보니 버스가 왔다. 나란히 자리를 잡고 앉자마자 막내의 낮잠시간 시작이다. 약 40여분을 달려서 버스정류장에서 하차를 했는데 문제는 여기서부터 1.7km, 약 20~30여 분을 걸어가야 한다.



직선거리를 하염없이 걷는데 무슨 공장단지 느낌도 나고 도저히 이 동네에 있기나 할까 싶은 분위기다. 살짝 걷는 게 힘에 부칠 무렵 멀리서 느낌이 오는 건물이 보인다. 서서히 입구가 보이자 아이들도 힘내서 서두른다.



입구에서 사진 한 장 남기고 들어서는데 입이 떡 벌어지는 풍경에 다들 감탄사를 연발한다. 홈페이지 사진이나 봤지 실제로 보니 규모는 훨씬 더 웅장했고 사람도 엄청 많았다.

 

데스크로 가서 홈페이지에서 봤던 아이들 프로그램을 하고 싶다고 했더니 며칠 전에 전화로 예약을 해야 가능하단다. 그래서 기본 사항은 직원이 숙지시켜 주되 보호자가 계속 관찰하는 조건으로 일반권을 사서 들어갔다. 장비를 착용하고 전용 운동화를 신는 데만도 시간이 꽤 걸린다.


초보자 코스에 가니 줄이 3개다. 우린 4명인데 어쩌라고 3개인 거야... 싶었는데 나중에 알게 되었다. 체력상 한번 올라가고 나면 좀 쉬다가 다시 도전할 수 있다는 걸... 번갈아 하기에는 2개도 충분했다. 처음엔 너무 높아서 무섭다던 아이들이 점점 속도를 내더니 맨 꼭대기까지 찍는다. 온통 땀범벅에 생수를 쉬지 않고 들이킨다. 머리를 감은 듯 땀범벅인데도 너무 재밌다며 신이 났다. 실은 나도 클라이밍을 엄청 좋아하는데... 만약 우리 동네에 이런 시설이 있었다면 그리고 여기처럼 자유롭게 와서 할 수 있다면 정말 매일이라도 오고 싶을 것 같다. 이번 여행에서 아이들에게 나는 유일한 보호자라 혹시라도 내가 다치거나 아프게 되면 이 아이들을 돌봐줄 사람이 없다는 생각에 몸을 사리고 최대한 컨디션을 유지하려다 보니 무리한 도전을 스스로 자제하게 된다. 목이 저리도록 계속 올려다보고 응원하고 사진 찍어주고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도 충분히 함께 올라가는 기분이었다.


우리와 비슷한 시간대에 도착한 대학생으로 보이는 여학생 두 명이 있었는데 처음엔 우리 애들보다 높이 올라가길래 '우와'하며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갈수록 우리 아이들이 높이 올라가고 그녀들은 점점 시작 지점에만 머물러 있더니 서로 하라고 미루면서 자리에 털썩 앉아서 쉬고 있다. 가끔 우리 애들과 줄을 교대할 때 친절히 고리에 걸어주고 해서 고마웠다. 쉴 때마다 이런저런 얘기를 했는데 아이들이 너무 잘한다길래 내가 웃으며

"아마도 나이 때문이지 않을까?" 했더니 그녀들도 격하게 공감한다. 마지막에 나갈 때 보니 역시나 그녀들이 바닥에 앉아 쉬고 있길래 "할 수 있다고, 쉬지 말라고, 행운을 빈다고" 웃으며 격려를 남기고 왔다. 아줌마의 오지랖일까... 그녀들을 보고 있으면 한국에 있는 조카들 생각이 나서 몇 마디 말이라도 보태서 마음을 주고 싶다.  


이미 정상까지 여러 번 올라간 아이들은 새로운 도전에 목말라했다. 그렇지만 일반 코스는 2인 1조로 줄을 기계가 잡아주는 게 아니라 사람이 밑에서 잡았다 놨다를 해줘야 해서 숙련되어 있지 않으면 상당히 위험해 보였다. 직원에게 아이들이 이용할만한 다른 곳이 없냐고 물었더니 지금 교육 중인 곳이 9시면 끝난다고 알려준다. 이미 해가 지고 있어서 9시를 넘기면 왠지 버스를 타고 숙소로 가는 길이 부담될 것 같아 살짝 고민을 하고 있는데 아이들은 해보고 싶다고 아쉬워한다. 이를 눈치챈 직원이 8시 50분에 수업이 끝나자마자 줄을 정리해서 우리를 불러들였다. 아이들에게 10분의 시간을 주자 쏜쌀같이 달려간다. 그렇게 새 코스 맛! 을 보고 내려와서 급하게 장비를 내려놓고 물건을 챙겨서 버스 정류장으로 출발했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15분... 달리지 않으면 불가능한 시간이다. 숨이 턱에 찰만큼 열심히 달렸다. 일단 누구라도 먼저 도착하면 버스를 잡자며 무리 지어 달렸다. 가까스로 버스정장에 도착하자마자 버스가 왔다. 역시 나이스 타이밍!

이미 캄캄해진 도시를 가로질러 숙소로 달리는 동안 아이들은 숙면이다. 다행히도 우리 숙소는 UBC 메인 버스정류장 바로 옆이다. 내려서 약 3분만 걸으면 숙소라며 한참 걸을 걸 걱정했던 아이들이 함박웃음이다.

UBC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숙소로 걸어가는 길

역시 샤워하고 나니 출출하다.

갓 지은 밥으로 버터 간장밥을 하고 함박스테이크에 김치를 곁들여서 늦은 저녁을 차렸다. 길었던 오늘도 네 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이전 11화 [Day 11] UBC 일상에 익숙해지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