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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rice Jul 25. 2019

[Day 8] 작아 보이지만 결코 작지 않은 것들

드디어 여정 처음으로 아침밥이 제공되는 숙소에 오니 어제부터 내내 아침이 기다려졌다. 느지막이 일어나서 가벼운 마음으로 세수하고 옷 갈아입고 5층으로 내려갔다. 주말 조식은 10까지 가능하다는 문구를 미리 봐 둔 터라 느긋하게 9시에 내려갔는데 세상에... 사람도 많고 자리도 없다. 일단 빈자리가 생기는대로 아이들을 앉히는데 다행히 우리처럼 대가족으로 여행 온 인도 가족이 식사를 마치고 한 명 두 명 자리를 비우길래 슬쩍 서 다 먹었냐고 물었더니 흔쾌히 오케이 사인이 어져서 테이블 하나 차지하며 다 같이 모여 첫 아침을 즐겼다.


역시 남이 해주는 밥은 뭘 먹어도 맛있다.

빵과 시리얼, 과일 정도의 비교적 단출한 메뉴라 아이들은 덤덤히 먹는데 나 혼자서 아주 신이 났다. 베이글에 크림치즈를 먹고 있으면 베이글의 존재에 감탄하던 2003년 뉴올리언스 출장이 생각나고 통밀 식빵 토스트에 피넛버터를 바르면 2001년 호주 워킹홀리데이가 생각난다. 이렇게 여러 가지 조합으로 추억여행을 하는 사이에 아이들은 진작에 식사를 끝내고 놀고 있다. 무료 조식으로 든든히 배를 채우고 하루를 시작했으면 싶은데 더 먹으라고 아무리 채근해도 반응이 없어 혼자서 부지런히 먹고는 테이크아웃 커피까지 챙겨 방으로 올라왔다.


Burnaby Village Museum

우리의 주말 첫 코스는 숙소에서 5분 거리인 버나비 민속마을이다. 가볍게 도착해서 주차를 하고 들어갔다.  무료입장을 알고 왔지만 그냥 게이트를 통과하기 머쓱해서 오늘 프로그램이 있냐고 물었더니 친절히 모니터를 보란다. 모니터를 열심히 보는 듯하다가 스윽 입구로 들어섰다.


왼쪽으로 텃밭처럼 채소를 키우는 가정집이 보였다. 우리네 텃밭과 별반 다를 바 없지만 뜨거운 햇살과 맑은 공기를 먹고 자라는 채소들은 그냥 두어도 쑥쑥 잘 자랄 것 같아 진심 부러웠다. 당근 잎을 잡고 뽑아도 되냐고 묻는 막내를 간신히 달래서 집으로 들어갔다.


예전 집과 가구 그대로 재현되어 있어 거실과 침실, 주방을 찬찬히 둘러보고 있으니 그시대 복장을 한 아저씨가 열심히 설명해주신다. 별 관심이 없는 아이들을 대신해서 열심히 호응하며 듣고 나왔다. 기차가 서있는 철길로 가니 기관사 복장을 한 안내원이 있고 자리에는 예쁘게 드레스를 입은 여자분이 앉아계셨다.


기관사 복장 아저씨가 아이들이 당길 수 있는 게 두 군데에 있다고 친절히 알려주셔서 아이들에게 그 소식을 전하자마자 서로 하겠다고 난리다. 결국 예쁘게 드레스 입고 있던 숙녀분이 "한 명당 한 번씩이야."라고 온화하게 미소 지으며 얘기하길래 하소연하듯 "남자애들은 늘 그래요" 했더니 맞다고 격하게 공감해주셔서 가슴 따듯하게 통하는 동질감 같은 걸 느끼고 아쉽게 작별하고 기차를 내려왔다. 하루 종일 저렇게 옛날 복장으로 앉아 있는 것도 힘들 텐데... 매일 같은 말을 반복하고 같은 공간에 서 있는 것도 쉽지 않을 텐데... 작아 보이지만 결코 작지 않은 그들의 존재와 사명감이 참 멋있게 느껴졌다. 젤리 가게와 베이커리를 거쳐 주유소에 은행까지 정말 옛 마을 그대로를 재현한 곳에서 나이가 지긋하신 할머니, 할아버지의 설명을 들으며 과거로 여행하는 기분이었다.



뙤약볕 아래에서 한참 걷고 구경하다 보니 아이들이 지쳐갈 무렵이라 아이스크림도 먹고 쉴 겸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카페 안에서는 어떤 아이의 생일파티가 한창이었고 거리에는 부케를 들고 분주히 움직이는 들러리 복장의 여성도 보이는 걸 보니 다양한 이벤트가 자연스러운 공간인 듯싶었다.


아이스크림을 먹고 일어서는데 계속 큰딸이 안 보인다. 어디에 있나 두리번거리며 걷다 보니 팔찌 만드는 곳에 서서 열심히 나무줄기를 물에 적셔 꼬아 만들고 있었다. 한 줄기를 세 가닥으로 나눠 돌린 후 다시 두 가닥씩 꼬는 작업인데 아무리 공짜라도 딱히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비주얼은 아니었는데 워낙에 이런 체험을 좋아하는 큰 딸은 부지런히 만들고 있다. 다 끝내고 할머니께 보여드리고 너무 잘했다고 칭찬받자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의외로 팔찌로 탄생한 나무줄기는 그럴싸했다.


출구로 내려오는 길에 학교가 있었고 그 아래에 줄넘기 줄, 막대기 등 놀거리가 있다. 아마도 예전 그 시대에는 이런 놀이를 하고 놀았겠지... 아이들이 막대기를 딛고서서 걷는데 쉽지가 않다. 걸으려다가 다시 땅에 내려오고를 반복하다가 겨우 몇 발자국 걷고 있는데 딸과 함께 온 어떤 캐나다 아저씨가 겨드랑이에 나무를 끼우더니 성큼성큼 여유 있게 걸어 다닌다! 그걸 본 우리 아이들이 서둘러 그 방법으로 서서 해보더니 꽤 오래 버티기 시작했다. 팔다리가 너무 이쁘게 긴 금발의 소녀가 와서 줄넘기를 하는데 기대보다 엉성했다. 한국에서 줄넘기 상도 받았던 둘째에게 "쌩쌩이, 2단 뛰기 이런 거 얼른 보여줘 봐" 하고 부추겼더니 슬쩍 가서 줄넘기를 돌리는데... 우리네 줄넘기 줄과 다르단다. 여긴 끈으로 되어 있어 쌩쌩이가 안된단다. 한 번도 성공 못하고 어설프게 계속 걸리는 와중에 그 이쁘게 길쭉한 소녀는 가던 길을 이어 가버렸다.  


Quen's Park

꽤 오랜 시간 빌리지를 돌아다녔더니 아이들이 이동하자고 하나둘 와서 재촉한다. 다음 목적지는 퀸스 파크이다. 주말인 만큼 잔디에서 여유 있게 피크닉도 즐기고 뛰어놀아도 좋을 것 같아서 근교 공원으로 목적지를 정하고 출발했다. Rainbow Playground 근처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들어가 보니 입구에 웬 동물원처럼 동물들이 많다. 냄새며 소리며 피크닉 분위기는 아닌 것 같아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하나 슬쩍 고민하고 있는데 동물을 지나 놀이터를 발견한 아이들이 빨리 오라고 손짓을 한다. 돗자리며 간식이며 필요한 것 주섬주섬 챙겨서 가보니 생각보다 규모가 꽤 크다. 놀이터 곳곳에 흩어진 아이들을 챙겨보다 보니 공원에서 점심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이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도 점심을 먹어야 하는데... 시간은 이미 1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나야 아침을 워낙에 든든히 먹어서 배가 고프지 않지만 히루에 네 끼를 먹는 아이들은 사정이 다르지 싶었다. 일단 근처 마트를 검색 후 아이들에게 혼자서 다녀올 테니 놀고 있으라고 했더니,   

"이모 너무 힘들잖아요"

또 이모의 마음을 심쿵하게 만드는 아들이다.


아이들을 뒤로하고 최대한 서둘러 장을 보러 갔다. 목표는 캘리포니아롤 도시락! 다행히 근처 safeway에서 기대했던 비주얼의 도시락을 발견하고는 음료와 스낵, 초코칩 쿠키에 내가 마실 아이스커피까지 피크닉 세트를 갖춰서 차로 왔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계산할 때부터 보이스톡으로 어디냐고 전화가 왔다. 곧 간다고 안심시키고 양손에 짐을 들고 아이스커피 쥐고 아슬아슬하게 걸어가는데 중간에 또 전화가 온다. 길가에 짐을 내려놓고 겨우 전화를 받아 이제 곧 출발한다고... 시동을 켜고 네비를 설정하는데 또 전화가 온다. 3분 안에 간다고... 그런데 운전하는 중에도 계속 전화가 와서 내비게이션 화면이 넘어가버리는 바람에 우회전해야 할 곳을 지나쳐버렸다. 일단 하염없이 직진하는데 도착시간은 점점 늘어나고 마음은 조급하고 차를 돌릴 곳은 안 나오고... 그렇게 흘러가다가 겨우 좌회전 후 차를 돌려 왔던 길을 다시 와서 좌회전하려는데 하필 좌회전 금지구역이다. 결국 safeway까지 다시 와서 차를 돌린 후  출발했다. 이 와중에도 계속 전화가 와서 어디냐는 물음에 버럭하고 말았다. 내비가 중간에 멈춰서 짐작 가는 방향으로 움직이다 보니 출발했던 주차장이 아닌 다른 주차장에 다다랐다. 일단 차를 세우고 짐을 한가득 들고 놀이터로 갔는데 아이들이 없다. 놀이터 한가운데에 짐을 내려놓고 전화를 하는데 넷 다 안 받는다. 이 짐을 들고 처음 주차장으로 걸어가야 하나 아니면 마냥 서서 기다려야 하나 왜 이 아이들은 나눠있지 않고 이렇게 몰려다녀야 하는 걸까 온갖 생각이 짜증과 범벅될 무렵 전화가 왔다. 어디냐는 물음에 놀이터라고 얼른 오라고 했더니 분위기를 파악했던 걸까 조용히 걸어는 모습에 괜스레 미안해졌다.

가져온 천 돗자리를 깔기에는 바닥이 너무 축축하고 깨끗해 보이지 않아서 테이블로 자리를 잡았다. 캘리포니아롤 두 팩에 샌드위치 한 팩을 샀는데 여전히 샌드위치는 내 몫이다. 양껏 먹은 아이들은 금세 놀이터로 흩어졌다.


천장이 있는 테이블로 자리를 옮겨 노트북을 꺼내고 아이스커피 마시며 슬쩍 아이들 동선 살피며 내 시간을 가지며 그렇게 몇 시간이 흘렀다. 항상 놀이터를 가면 얼른 가자고 재촉했는데 오늘은 아이들이 가자고 할 때까지 기다려줄 셈이었다.


역시 막내가 먼저 옆으로 와서 앉는다. 나란히 초코칩 쿠키를 나눠먹으며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둘째가 온다. 슬슬 가야 할 때인가 보다 싶어서 주섬주섬 짐을 챙겨서 주차장으로 가는데 아이들이 타이어 그네가 비는 걸 보더니 조금만 타다가 가도 되냐며 냉큼 달려간다.


결국 놀이터 중간에 짐을 내려놓고 걸터앉았다. 슬슬 가자 싶어서 부를랬더니 아이들이 왔다. 외국 친구가 놀자고 했는데 그냥 왔다는 거다! 아빠와 집에 가려던 대화 속의 그 친구가 눈에 들어왔다. 아이들에게 얼른 가서 같이 놀자고 얘기하라고 등 떠밀어 보냈다.


그렇게 5명의 술래잡기가 시작되었다. 다시 근처 대충 앉을 만한 곳에 짐을 내려놓고 기다림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달리다가 가서 룰을 설명하고 서로 오케이 하면 다시 달리고 그렇게 신나게 한참을 뛰어놀고는 땀이 범벅이 되어서 돌아왔다. 이제 가도 되냐고 했더니 넷 다 미련 없이 오케이다.


Dinesty Dumpling House

숙소로 오는 길에 막내는 이미 잠들었고 저녁 외식을 제안했더니 보조석에 앉은 큰딸이 구글 서핑에 들어갔다. 정말 가까운 거리에 있다던 딤섬집은 우리 숙소 1층에 위치한 중식 레스토랑이었다.

너무 졸려서 안 되겠다는 막내에게 카드키를 줘서 올려 보내고 셋을 데리고 식당으로 갔다. 자장면이 너무 먹고 싶다는 아이들에게 여긴 자장면 없다고 얘기하고 메뉴판을 펼쳤는데 고기 양념면이라고 표기된 영어 아래로 한자로 자장면으로 되어 있다. 호기심을 곁들여 자장면을 시키고 완탕, 싱가포르 프라이드 누들, 샤오롱바오 이렇게 네 개를 시켰다.


외국 자장면이 신기한 아들과 오랜만의 외식에 신이 난 큰 딸

자장면은... 역시나 우리나라의 윤기 나고 까만 소스가 아닌 두반장 베이스에 짠맛이 강한 소스에 면은 칼국수 면스러운... 그럭저럭이지만 맛있지는 않은 그런 맛이었다. 오히려 샤오롱바오의 만두소 육즙이 대박이였다. 어쨌든 맛있게 먹고 막내가 먹을 것까지 포장해서 숙소로 올라왔다.


둘째가 포장음식에 김치를 곁들여 막내상을 차려주식사가 끝나자 샤워도 할 겸 수영장으로 내려갔다. 아이들이 비운 숙소는 다시 정리의 시간... 물건 정리하고 샤워하고 나니 아이들이 올라왔다.


파스타면 w. 팔도 비빔장

비빔면을 야식으로 먹고 싶다길래 어제 미트소스 파스타를 하고 삶아둔 남은 면을 냉장고에서 꺼내서 뜨거운 물에 살짝 데친 후 찬물에 헹궈서 팔도 비빔장 소스를 버무렸더니 훌륭한 비빔면이 탄생했다. 참기름은 취향대로 쓱 둘러서 과일을 반찬삼아 오늘도 네 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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