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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rice Jul 23. 2019

[Day 7] 끝과 시작 사이의 숨 고르기

St.george School 마지막 수업

오늘은 St.George's Shcool  마지막 등교일이다. 어느덧 5일이 흘러버렸다. 감상에 젖을 법도 한 아침이지만 그럴 새가 없다. 11시까지 체크아웃이라는 거대한 업무에 마음이 분주하다. 오늘은 기필코 걸어서 가게 하리라 싶은 마음에 7시 반부터 서둘러 아이들을 깨우고 최대한 간단하게 아침을 차려준 후 도시락 작업에 돌입했다. 시니어스쿨 카페테리아에 맛있는 게 많다며 점심을 안 싸가는 친구들이 사 먹는 아이템들을 하나 둘 얘기하는 걸 보고 슬쩍 "너희도 사 먹어 보는 게 어때?" 하고 떠보았으나 돌아오는 반응은 일단 도시락은 싸가고 추가로 사 먹겠다는... 내겐 별 소득 없는 대답이었다.


한국에서 가져온 피코크 멸치볶음과 볶음 김치를 꺼내고 전날 해둔 냄비밥을 데워서 주먹밥 가루로 버무렸다. 비닐장갑을 끼고 밥을 펴서 멸치볶음을 가운데로 감싸고 세모로 성형한 후 맛김을 씌워서 삼각김밥 완성! 멸치볶음 버전과 볶음 김치 버전을 적절히 취향대로 넣어준 후 어제 남겨둔 너겟과 겨우 한주먹 남은 블루베리를 털어 넣어서 도시락을 완성했다. 랩이 비치되어 있다는 게 어찌나 감사하던지!


여기 아이들의 도시락 아이템 중 당골이 락앤락 통에 담긴 블루베리란다. 그 영향인지 아니면 캐나다 블루베리가 입에 맞는지 평소 블루베리를 잘 안 먹던 두 녀석도 한주먹씩 입에 털어 넣는다. 덕분에 내 몫이겠거니 하고 여유 부렸던 블루베리 한 박스가 맛볼 새도 없이 금세 동이 나 버렸다. 칫! 장 볼 때 과일 많이 산다고 나를 그렇게 구박하더니... 블루베리 한 박스를 끌어안고 밥처럼 퍼먹겠다던 내 소심한 포부 한 개가 그렇게 또 조용히 사라졌다.


다시 시작된 캐리어 4개 싸기 미션

지각시키지 않겠다는 의지로 얼른 가라고 등 떠밀고 숙소로 돌아와 보니 이삿짐 준비가 온전히 내 몫이 되었다는 게 실감되었다. 일단 커피 머신에서 내린 영혼 없이 시커먼 물에 남은 우유 부어서 완샷 후 2층을 타깃으로 올라갔다. 화장실부터 침실까지 훑고 내려와서 다시 1층에서 소파 정리하고 설거지하고 대강 마무리가 되자 11시가 다 되었다. 혹시나 해서 아까 12시 체크아웃을 묻는 메시지를 보냈는데 오늘 체크인하는 팀이 있어 미안하다는 답이 와 있었다. 여유 부렸으면 난감할 상황이었을 텐데 다행히 정각에 체크아웃하고 나오면서 메시지를 남기는 여유도 가질 수 있었다. 짐을 줄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트렁크 가득이다.


아쉬움에 발걸음 남긴 Dunbar Starbucks

차를 학교 정문 앞 좋은 자리에 주차해놓고 막내 공연에 입을 옷을 학교 사무실에 들려주고 슬렁슬렁 걸어서 동네 스타벅스로 왔다. 오늘은 막내의 공연을 보러 학교에 가야 해서 자유시간이 한 시간 남짓이다. 뭘 먹을까 고민하다가 결국 또 브랙퍼스트 세트로... 왠지 모르게 여기에서는 에스프레소가 너무 강하다. 그냥 멀겋게 우려내서 벌컥벌컥 들이는 커피가 훨씬 맛있게 느껴졌다. 평소 안 먹던 brewed coffee를 매일 마시게 될 줄이야.

오늘은 늦게 와서인지 테이블 빈자리가 없어서 창가 쪽 하이체어 끝으로 자리를 잡고 앉아서 노트북을 펼쳤다. 스타벅스 유리창 앞으로도 길가에 의자들이 놓여있는데 의외로 그곳은 늘 붐빈다. 뚜껑 없이 김이 오르는 커피잔을 들고, 또는 프라푸치노에 빨대 꽂아서 햇살 쏟아지는 길가 의자에 앉아 오가는 차들과 사람들을 보거나 그냥 눈감고 음악을 듣는다. 우리나라에서는 식당 웨이팅에서나 쓰일 법한 의자들인데 실내보다 햇살이 더 익숙한 이들에겐 훌륭한 공간인 듯싶어 신기하기도 하고 용기 내보고 싶다는 생각을 여전히 창안에서 하고 있다.


섬머 캠프 공연

예정된 시간이 다 되어 자리에서 일어나 주차한 차에 가방을 넣고 다시 카메라 가방으로 바꿔 메고 학교로 향했다. 체육관에는 이미 의자들이 세팅되어 있었고 아이들은 무대(?) 좌측에 대기하고 있었다. 아이들 대표 3명이 나와서 재밌게 봐달라는 귀여운 멘트를 나누며 공연이 시작되었다. 막내반은 리드믹 짐나스틱스라는 음악이 곁들여진 춤과 체조의 중간 느낌의 수업이다.


5일이라는 짧은 기간에 하루의 일과도 다양한데 아이들은 훌라후프, 루프 등의 도구를 사용하면서 대열도 만들어가면서 정말 제대로 잘 해냈다. 설명을 알아듣기 힘들었을 텐데도 동선에서 벗어남 없이 아주 잘 해낸 막내가 너무나 대견했다. 이어서 댄스 댄스반까지 공연을 마쳐서 즐겁게 구경하고 슬슬 나가려고 준비하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세상에! 공연 시간이 애매한 12시 반이다 싶었더니 공연을 끝으로 수업이 끝났단다! 3시 반에 하교해야 할 아이를 1시에 데리고 가다니!! 뭔가 억울한 느낌이 들었지만 이미 알고 있다는 듯 자연스러운 표정으로 너무 잘했다고 다독이며 데리고 나왔다.


새로운 숙소, 새로운 여정

체크인을 미리 해두면 오후에 아이들과 일정을 보내기에 여유가 있을 것 같아 막내를 데리고 새 숙소로 향했다. 생각보다 거리도 있고 차도 막혀서 40분이 걸렸다. 새 숙소는 도심에 위차 한 호텔형 레지던스.  

규모도 크고 깨끗해서 맘에 들긴 했지만 기존에 오가던 동선과는 거리가 멀어서 좀 낯설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좋은 건 수영장이 있고 조식이 무료이고 매일 방청소를 해준다는 것!

생각보다 좁긴 했지만 도심에 위치한 데다 무려 7층이라(여태 2층 이상 올라가 보지 못했음) 호텔느낌 물씬 나서 애들이 흥분하기에 충분한 조건들이었다.

element vancouver metrotown (7/19~22)

짐을 정리하다 보니 어느덧 픽업을 가야 할 시간이라 다시 서둘러 출발했다. 40분은 역시나 멀다. 계속되는 직선거리를 자주 바뀌는 신호에 맞춰 멈췄다 가다를 반복한다. 우리나라에선 주황 불에 빠르게 넘어가도 되지만 이나라는 주황 불이면 무조건 멈추고 다음 신호를 기다린다. 처음엔 적응 안돼서 답답하고 속도가 애매할 땐 슬쩍 넘어가기도 했는데 이젠 미리 멈춰서는 여유도 생겼다.


Vancouver Central  Public Library

숙소로 돌아가는 길이 멀다 보니 중간에 어딘가 들를만한 곳을 찾다가 도서관에 가보고 싶다던 큰 딸의 말이 생각났다. 어느 도시를 여행 가던 그 도시의 도서관을 구경하는 게 일종의 필수 코스가 되었다. 아이들에게 친절하고 무료로 오픈되어 있어 우리 같은 여행자들에겐 최고의 쉼터이다. 도심 한가운데 있는 도서관을 찾아는 왔는데 주차장으로 들어서면서 여기가 도서관이 맞나 싶을 정도로 건물이 거대하고 침침했다. 다행히 library라는 표지판이 이끄는 대로 올라오다 보니 밝게 빛나는 도서관을 마주하게 되었다. 역시... 입구를 보자마자 흐뭇한 미소가 번진다. 지하에 위치한 어린이책 코너에는 아이패드로 체험할 수 있는 시설에 여기저기 편하게 앉아서 볼 수 있게 되어있었고 책도 다양했다. 구글에서 도서관 앞 카페에 버블티가 맛있다는 후기를 보고 온 터라 엄마의 깜짝 선물 버블티 서비스까지 이어지니 아이들의 만족도가 급상승!!! 문 닫는다고 사서가 우리를 떠밀어 보내지만 않았다면 한참을 더 놀다가 와도 좋을 곳이었다. 다음에 또 가자는 약속을 받아내고서는 저녁을 먹으러 거리로 나섰다.   


Brooklin Pizza

도심이라 맛집이 검색되긴 했는데 미리 예약해야 하거나 웨이팅이 길어서 5 식구가 기다려서 먹기가 쉽지 않을 듯했다. 라멘집 앞에서 대기하는데 우리보다 늦게 온 2명, 3명 팀들이 계속 들어가자 아이들도 나도 서서히 지쳐가자 뭔가 결단이 필요했다. 영국에서 맛있게 먹었던 Five guys가 있길래 가자고 했더니 막내가 햄버거를 완강히 거부한다. 일단 걸으며 찾아보자며 대기선을 벗어나서 걷기 시작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무방비로 나온 터라 얼른 먹고 차로 돌아가야겠다 싶었는데 마침 피자집이 눈에 들어왔다. 맛집을 판단하는 기준 중 하나가 단일 메뉴!!! 여기도 단출히 세 가지 피자를 놓고 조각으로 바로 살 수 있어 믿음이 갔다. 빈 테이블이 없어서 바에 옹기종기 모여 피자 세 조각을 놓고 맛있게 흡입했다. 역시 예상대로 담백한 화덕피자 맛집으로 인정!   


다시 오크리지 센터 Okridge Centre

학교로 데리러 가는 길에 오크리지 센터 사거리를 지나길래 숙소로 오는 길에 아이들과 들러도 좋겠다 싶어서 도서관에서 출발해서 중간 여정으로 잠깐 들렀다. 늘 아이들이 학교 있는 동안 혼자 왔었던 곳이라 언젠가는 다 같이 오고 싶어서 맘에 두고 있었다. 늘 가던 푸드코트에 들러 먹고 싶은 걸 골라보랬는데 반응이 별로다. 결국 내가 먹고 싶은 걸로 그레이비소스에 치즈를 얹은 프라이를 시켰다.

2000년 초 강남역 지하상가를 가면 분수대 옆 음식점들 사이로 NYF(Newyorkfries)가 있었다. 제일 좋아하는 메뉴가 poutine이었는데... 언젠가부터 사라져서 그 맛이 그리웠는데 이렇게 다시 만나다니! 혼자서는 먹을 용기가 안 났는데 일행이 있으니 맘 놓고 시켰는데 아이들에겐 그냥 그런 감자튀김인가 보다. 소스에 푹 적셔 먹어야 맛있는데 소스 인심이 좀 야박한 집이었다. 역시 추억의 음식은 맛이 아닌 추억으로 먹는 걸로!^^



밴쿠버에서의 불금

해가 중천인데 숙소로 돌아오는 건 늘 뭔가 어색하다. 왠지 해야 할 걸 다 못 마치고 일찌감치 들어가는 느낌? 그런데 벌써 시계는 8시다. 엘리베이터 안내지에 수영장이 11시까지라는 문구를 보더니 숙소에 들어오자마자 수영장으로 가겠다고 분주하다.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몽땅 나가고 난 후 다시 짐 정리가 시작되었다. 둘째 딸이 나가기 전에 오자마자 저녁 먹을 거니까 미리 준비해달라는 주문을 하고 간 터라 서둘러 짐 정리에 샤워에 음식 준비까지 하고 대기하고 있으니 아이들이 신나게 놀고 기분 좋게 올라왔다. 저녁인지 야식인지 그렇다면 피자와 감자가 저녁이 아니라 간식인 건지 그러면 왜 푸드코트에서는 저녁을 안 먹겠다고 한 건지... 아무튼 이상한 바이오리듬 속에 매일 네 끼를 의심 없이 챙기고 있다.  

수영장 전세 낸 아이들, 얼려둔 다진 소고기에 마트에서 세일에 득템한 1달러 파스타소스와 1달러 파스타면의 콜라보


최고의 당도였던 복숭아와 청포도를 반찬으로 파스타 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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