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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rice Jul 21. 2019

[Day 6] 점점 스며들어가는 밴쿠버 그리고 일상

학교 앞에 살면 지각한다?


7시 알람을 보내고 뒤척이다 8시 알람에서야 겨우 몸을 일으켰다. 이름만큼 cozy 한 숙소이지만 베개가 창문 바 밑이라 새벽부터 온 얼굴로 햇살을 견디고 있었다. 주섬주섬 1층으로 내려오면서 아이들을 깨웠으나 요지부동... 어제 먹고 남은 냄비 속 날아가는 쌀로 도시락을 싸야 하는데 앞이 캄캄하다. 퍼석하게 굳은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하나... 일단 코스트코에서 사 온 만두를 프라이팬에 구우면서 수프를 끓이기 시작했다.


20년 전 호주 여행을 갔을 때 친구의 지인 집에 잠시 머물렀었는데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들이 있었다. 만두나 김밥 등을 도시락으로 가져가면 친구들이 다 가져갈 정도로 인기가 많다고 했다. 그 당시 대학생이던 나는 떠나기 전 그 꼬마친구들을 위해 마트에서 장 봐서 김밥 도시락 싸주고 왔었다. 그때 생각에 야심 차게 도시락의 히든카드로 만두를 집어왔던 터~ 만두를 네 통으로 나누자 인당 4개 들어가고 공간이 너무 남는다(일부는 인덕션 불 조절 실수로 타서 못 넣음) 순간 난감... 밥을 그 담 수는 없고.. 결국 캐리어에서 김밥김과 장갑을 꺼내서 소시지를 굽고 소고기 고추장을 꺼내고 대대적 작업에 들어갔다.


날아가는 밥은 역시나 도움이 안 된다. 꾹꾹 눌러말아도 모래처럼 흩어져버렸다. 시간은 없고 모양은 안 나오고... 어렵사리 자르기까지 성공해서 담았는데.. 역시나 공간이 또 남는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과일도 없고(자몽은 아이들이 전날 도시락부터 외면 중이라) 결국 젤리 샌드위치를 다시 만들어서 작게 잘라서 채워 넣고 마무리!



시간은 이미 9시였다. 여행 6일 차에 머리끈 봉지를 꺼낸 막내. 늘 머리 묶어줄 겨를이 없어서 산발로 보낸 게 미안했기에 늦더라도 빗질하며 열심히 묶어주었다. 어제 교실 찾느라 헤매서 그런지 머리 묶자마자 언니 오빠를 제치고 먼저 학교로 가버렸다(숙소에서 주니어 스쿨까지는 불과 50미터). 남은 큰 아이들을 준비물 챙겨서 다녀오라고 인사하고 돌아서는데 차를 태워달라며 다시 들어온다. 결국 세수도 안 한 잠옷 차림으로 신발 끌며 차를 세워둔 도로로 나와 시니어스쿨까지 내려주고 다시 숙소에 왔다.

뭔가 한국 일상의 데자뷔 같은 느낌...


일단 전쟁터 같던 부엌을 정리하고 아이들이 널어놓은 물건들 정리하고 외출 준비를 하고 시계를 보니 어느덧 11시...


창으로 스며오는 선선한 가을바람도, 나뭇잎에 일렁이는 햇살도 침대에 걸터앉아 가만히 집안을 둘러보는 것만도 충분히 행복했다.


49th Parellel Coffee Roasters

이제 커피 한잔을 곁들이면 딱 좋겠다 싶은 마음에 집 앞으로 걸어 나갈까 하다가 맛있는 브런치 집을 찾아 나서야겠다 싶어서 검색에 들어갔다. 딱 내가 좋아하는 민트 컬러가 메인인 49th Parellel Coffee가 눈에 들어왔다. 가볼만한 거리라 살랑이는 원피스를 꺼내 입고 카메라와 노트북을 챙겨서 길을 나섰다.

이젠 운전에도 여유가 생겼고 여전히 불편한 구글맵도 적당히 익숙해졌고 길거리에 눈치껏 주차하는 요령도 생겼다.


카페는 생각보다 빈 테이블들이 있어 안심이었으나 익숙한 한국말이 곳곳에서 들려왔다. 아마도 절반은 한국인인 듯... 역시 한국 여행 앱에서 추천한 곳이라 그런걸까... 속으로 다 같은 마음이구나 싶어 웃음이 났다.



캐나다에서 제일 인기 있는 도넛 집이라는 명성만큼이나 도넛이 다양했다. 계산대 직원에게 네가 젤 좋아하는 도넛 추천해달라고 했더니 설레어하며 고심 끝에 3가지 고르길래 (한 개만 사려다가) 3개를 다 사버렸다. 실은 한입씩만 맛보고 싶은 마음에 아이들 간식으로 싸가겠다는 핑계를 곁들여 당당하게 충동구매하였다.  


도넛은... 예상되는 맛이었지만 퀄리티가 높았다. 물론 여기서만 먹을 수 있는 독특한 메뉴들이라 한 번은 먹어볼 만하다 싶다.

내가 좋아하는 플랫화이트가 있어서 고민 없이 주문했는데 커피는... 역시 도넛엔 아메리카노라는 공식이 다시 한번 상기되는 순간이었다.


오후 4시, 간식과 이른 저녁

싱글 여행족 마냥 가벼웠던 외출을 끝내고 집으로 왔다. 어제 산 초밥 라이스로 냄비밥 올리고 고기를 굽고 있는데 아이들이 들어온다.

시니어 스쿨은 운동장에 모든 학생이 반별로 모인 후 인사를 하고 하교를 한다. 큰 아이들이 둘째를 데리고 나와서 셋이서 직선코스로 800미터 떨어진 주니어 스쿨까지 걸어온다. 강당에서 기다리는 막내는 보호자가 와야 하교가 가능해서 큰 아이가 사인하고 데리고 나와서 넷이서 잠깐 놀이터에서 놀다가 50미터 거리의 집으로 걸어온다.

걸어서 등하교가 가능한... 아이들에게도 내게도 최고의 숙소다.


일단 집에 오면 점심이 어땠는지 다른 친구들은 뭘 싸왔는지 수다가 탁구공처럼 부엌을 여기저기 분주히 움직인다. 냉장고를 열어 탐색하는 아이, 시리얼에 우유를 말아먹는 아이, 과자를 집어 드는 아이 등 정신없는 와중에 식탁 위에 놓여있던 도넛 상자의 뚜껑을 야심 차게 열었다.


"이거 밴쿠버 대표 도너츠래. 일부러 가서 사 온 거야. 얼른 먹어봐"


한입 먹어보던 아이들의 반응이 의외로 서늘하다... 게다가 던킨이 아니라 실망이라는 충격적인 대답에 남은 도넛은 오롯이 내 몫이 되겠다는 걸 직감하고는 조용히 뚜껑을 덮어 식탁에서 퇴장시켰다.


오늘의 방과 후 프로그램은 조금 먼 여정이라 저녁밥을 먹고 출발하려고 밥과 함박스테이크에 김치까지 간단히 저녁상을 차렸다. 아직 배가 고프지 않다는 아이들을 재촉해서 부지런히 먹인 후 서둘러 목적지로 출발했다.  


Capilano Suspension Bridge


렌터카가 있을 때 가야 할 장소 중 하나인 데다 주말은 왠지 복잡할 것 같아서 주중을 노리고 있었는데 내일은 금요일이라... 불금의 밴쿠버 도로 역시 복잡할 거라는 생각에 목요일인 오늘로 결정! 오후 5시 이후 30프로 할인이라 저녁을 먹고 여유 있게 출발했다.



약 40여분을 달려 도착하고 보니 저녁 6시. 8시 폐장까지 2시간 남았다. 왠지 다 둘러보기엔 빠듯할 것 같아 마음이 급해졌다. 그런데 하필 입구에 기념품샵이 있어 잠깐 보고 나오겠다던 아이들이 나오지를 않는다. 나 역시 입으로는 가자고 재촉하면서도 눈에 띄는 아이템이 있나 슬쩍 둘러보다가 정신을 부여잡고 겨우 밖으로 나왔다.

가까운 곳부터 시작하자며 무작정 들어간 첫 코스가 하필 Cliff walk! 일단 한발 딛긴 했는데 아무렇지 않게 앞장서는 아이들이 점점 멀어지는 걸 보면서 순간 갈등이 시작되었다.


"내가 굳이 같이 가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갈수록 더 무서워지는 건 아닐까?"

"그런데 중간에서 아이들에게 문제가 생기면 어떡하지?"


결국 뒷동선에 밀려 일단 걷기 시작했다. 제일 중요한 카메라 가방을 힘껏 끌어안고 한 손으로 가드를 닦듯이 밀며 걸어가는데 한숨과 감탄사와 심호흡을 섞어가며 엉거주춤한 자세로 겨우 코스를 통과했다.    


사진 좀 찍고 둘러보다 보니 어느덧 다시 서스펜션 브리지 입구에 다다랐다. 다리가 생각보다 심하게 좌우로 흔들리길래 또 심호흡을 하며 들어서는데... 맞은편에서 넘어오는 초면의 누군가라도 붙잡고 갈만하냐고 묻고 싶었지만 왠지 담담해 보이는 그들의 얼굴에 살짝 무안할 것 같아 다시 용기를 내고 걸어갔다. SF 영화를 많이 본 탓일까... 온갖 이런저런 상상을 더하다 보니 어느덧 다리 중반에 다다랐다. 아이들이 걸어오는 모습을 찍어주려고 일부러 안 움직이고 있었는데 끝까지 간 아이들이 다시 돌아오지를 않느다. 손을 저으며 오라는 표시를 해도 요지부동.. 결국 그렇게 대치하다가 아이들이 다시 건너왔다. 어드벤처 코스가 건너편에 있어 다리를 건너야 한다는 요지. 결국 남은 다리를 건너서 트리탑까지 마치고 다시 왔던 다리를 건너오는데... 너무 수월한 거다. 아예 다리를 좌우로 힘차게 흔들며 오는 여유까지 생겼다. 역시 경험이란 위대하구나... 상상을 내려놓으니 이렇게 수월한 것을...



이제 해야 할 코스를 다 끝낸 안도감에 아까부터 눈여겨보던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산속에서는 뭘 먹어도 맛있는 법! 그런데 감자튀김에 미트볼 파스타에... 아이들이 선뜻 동의하지 않는다. 저녁을 먹고 와서 더 안 당겼을 듯. 나 역시 맥주나 와인 한잔을 곁들이고 싶은 데 운전을 해야 하는 처지라 레스토랑을 뒤로하고 카페로 향했다.

와플과 아이스크림, 아이스커피, 핫초코에 집에서 싸온 요구르트와 과일을 곁들여 먹으며 잠시 쉬다가 다시 길을 나섰다.

나오는 길에 도장을 다 찍으면 받는 증서도 챙기고~



가솔린, 디젤?

돌아오는 길에 보니 기름이 1/4 정도 남았다. 더 미루면 안 될 것 같아서 숙소에 아이들을 내려놓고 근처 주유소로 향했다. 주유구에 맞춰 주차는 잘했는데... 뚜껑을 열면 나올 줄 알았던 기름 종류가 안 쓰여있다! 예전에 호주에서 주유할 때 디젤을 넣어야 할 렌터카에 가솔린을 넣어서 식겁한 적이 있어서 그 트라우마로 뒤에 간 하와이에서는 아예 주유를 안 하고 반납하기도 했었다.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심정으로 꾸역꾸역 오긴 했지만 기름 종류를 모르니 호주 생각이 나서 함부로 넣을 수가 없었다.

인터넷 검색을 하고 있으니 편의점 직원이 와서 뒷 차가 기다린다고 차를 일단 빼란다. 고개를 들어보니 편의점 안에서 할머니가 나를 계속 쳐다보고 계시는 시선이 느껴졌다. 직원에게 이 차 기름 종류를 모르겠어서 못 넣고 있다. 혹시 아냐고 했더니

"보통은 가솔린인데? 확신은 못하겠어" 하고는 가버린다.


헐 어쩌라고... 확신이 없으면 안 되는 상황이라 차를 빼서 구석으로 옮기고 차를 뒤지기 시작했다. 다행히 콘솔에서 보험증서찾았고  차 정보란에 "가솔린"을 딱!!! 발견했다.

당당히 다시 주유 라인에 섰는데... 이젠 무슨 기름을 넣어야 할지 모르겠다. 마침 계산하고 오는 건너편 아저씨에게 렌터카인데 무슨 기름을 넣는 게 좋겠냐고 물었더니

"아 렌터카? 젤 싼 거 넣어"

하고 명료하게 웃으며 대답을 해줬다.

명료한 답이 너무 반가웠다.


이제 다 됐다! 싶어서 결제하려는데 다시 아뿔싸... 몇 리터 넣을지 선택 버튼이 100, 150, 200 이런 식이다. 다시 고민을 하다가 또 어설픈 도전은 안 되겠기에 직접 결제를 포기하고 편의점으로 향했다. 가득 채워달라고 하고 카드를 주니 70 달러를 결제한다. 가득 채우는 게 70달러인지 어떻게 아냐고 물었더니 영수증 보면 나와. 이런다. 미심쩍어하며 가서 주유를 하는데.. 정말 70달러까지 들어가고 딱 멈췄는데 기름 게이지가 위까지 찼다! 아직도 이유는 모르겠다.


야식, 떡볶이에 군만두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기름을 넣고 숙소로 와보니 세상에!!! 아이들이 샤워를 다하고 일기를 쓰고 있다. 평상시에 집에 오자마자 샤워실로 보내는데 내가 없어도 이렇게 잘할 줄이야... 기특하고 대견해서 배고프다는 아이들말에 얼른 부엌으로 달려갔다.


오늘의 야식은 분식~ 한국에서 가져온 실온 떡볶이에 코스트코 군만두! 그리고 하루를 열심히 보낸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 맥주 한 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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