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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rice Jul 20. 2019

[Day 5] 새로운 우리 동네, Dunbar

핫초코가 생각나는 쌀쌀한 아침

숙소를 옮기는 날이라 어젯밤부터 마음이 분주했다. 일단 미리 챙길 수 있는 걸 최대한 챙기고 잠들긴 했지만 역시.. 늦게 자는 것보다 힘든 게 일찍 일어나는 일이다. 7시에 겨우 눈을 떠서 팬에 버터를 두르고 며칠째 인기가 없는 당근을 잘게 잘라서 볶다가 아침식사용으로 아이들이 사놓았던 소시지를 얇게 잘라 볶았다. 전날 먹고 남은 날아가는 쌀(Jasmin Rice)을 넣어 섞은 후 마지막 남은 계란 2개를 풀어 적당히 뭉치게 한 후 마지막 간은 전날 코스트코에서 아이들이 집어온 소금과 후추로 마무리! 도시락용 볶음밥이 완성되었다.

오렌지로 착각하고 안고 온 아이는 오늘 아침에 보니 자몽이였다. 왠지 내가 다 처리해야할 것같은 불안감ㅠ

아이들이 아침을 먹는 동안 부엌 정리를 마무리하고 서둘러 주차장으로 향했는데 이미 시계는 8시 반을 넘고 있었다. 렌터카 뒷 트렁크는 밀어 넣은 짐들로 가득했고 그렇게 정신없이 출발했으나 비가 내려서인지 차는 더 더디게 달려야 했다.


오늘도 지각... 오늘따라 뒷좌석 막내의 원성이 크다. 2분 간격으로 시간을 얘기하며 재촉하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표현이 와 닿지 않아도 어쩔 수 없는 일... 그래도 등교를 서둘러주는 것만도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열심히 달렸다. 내비게이션을 보지 않아도 길이 익숙해질 즈음 이사를 가는 게 아쉽긴 했지만 또 다른 새로운 환경과 생활이 있을 거라는 기대감에 차 안에서 아이들과 하교 후 뭘 할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시니어스쿨에 도착했다. 먼저 가는 언니 오빠를 급하게 따라가려고 내리다 넘어질뻔해서 훌쩍이는 둘째를 보고 있노라니 마음이 짠한데... 막내를 주니어 스쿨에 데려다줘야 하는 미션이 남아서 얼른 차를 돌렸다.


혼자 가겠다는 막내를 멈춰 세워 차를 주차하고 따라나섰는데.. 역시나 혼자 갔으면 큰일 날뻔했다. 원래 강당에 도착해서 각 반별로 인솔하는 봉사자가 아이들을 이끌고 교실로 가는데 이미 모두 흩어진 후였다. 교실을 물어 312호로 갔는데 텅 비어서 2층 사무실로 가서 다시 물어 4층으로 갔는데 역시나 비어있다. 다시 물어 다른 담당자를 만났고 마침 가는 길이라며 데려다주겠다기에 안심하고 아이를 맡기고 내려왔다.


비를 맞으며 차로 걸어가는데 한기가 들 정도로 춥다 보니 점심에 수영을 하는 둘째가 생각이 났다. 집업 후드라도 갖다 줘야겠다 싶어 큰애들 것까지 한아름 챙겨서 학교로 갔는데 체육관에서 이런저런 공놀이를 하는 아이들이 보였다. 둘째를 찾아 두리번거리자 선생님이 나를 알아보고 다가왔다. 옷을 전달해달라고 얘기하고 뒤돌아서는데 무리 지어 움직이는 아이들과 그들을 멀찌감치 앉아서 팔짱 끼고 쳐다보는 선생님들의 분리된 공간이 신경 쓰였다. 영어에 노출시키고 싶어서 데리고 온 여정인데 왠지 의도와 다른 수업 같아서 찜찜해하며 나왔다가 다시 차를 돌려서 학교로 갔다.


뭐라고 이야기할까... 아이가 조금 다쳐서 스포츠 수업을 못하게 되어서 수업을 변경하고 싶다고 할까... 아니면 솔직하게 이야기를 꺼내야 하나.. 혼자 고민하며 체육관에 갔는데 아까 그 아이들 무리에 둘째가 없다. 선생님이 다가오길래 아이가 아침에 컨디션이 안 좋아 보여서 걱정돼서 확인하러 왔다고 했더니 윗층에서 다른 수업을 하고 있다며 나를 윗층으로 안내해줬다. 교실에 앉아 수업을 하던 둘째가 나의 호출로 잠시 나왔다. "도자기나 과학으로 수업 옮기는 게 어때?"라고 물었더니 펄쩍 뛴다. 너무 재밌어서 계속할 거라고... 너무 명료한 대답에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서 인사를 하고는 선생님과 다시 내려가는데 선생님의 이야기기가 마음에 훅 들어왔다. Sally가 너무 좋단다. 친구들에게 자상하고 멋진 아이란다. 다소 조용하긴 하지만 익숙해지면 곧 더 나아질 거라 생각한다며 혹시 다음 주 수업도 참여하냐길래 이번 주가 마지막 이랬더니 아쉬워하신다. 고작 하루 본 아이인데... 게다가 나는 선생님과 아이들이 분리되어 생활하는 듯한 느낌에 달려간건데.. 선생님과 이야기하며 내 기우라는 걸 알았다. 둘째도 선생님도 충분히 최선을 다하고 있었고 둘째가 이번 여정을 끝내며 어떤 걸 남겨오던 나는 그저 기다려주면 되는 거였다. 항상 대화가 끝날 때마다 엄지 척을 하는 덩치가 산만한 선생님 따라 나도 언제부턴가 기분 좋게 웃으며 엄지 척으로 화답하고 있었다.


마음이 정리되자 쌀쌀하게 흐리고 바람 부는 날씨에 어디라도 얼른 들어가서 따듯한 차를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동네 탐방도 할 겸 주변을 둘러보다가 스타벅스로 들어섰다. 테이블이 몇 개 안 되는 정말 작은 공간이었고 이 곳 동네 사람들이 오며 가며 들르는 마실 공간 같은 느낌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브랙퍼스트 세트 메뉴를 시켰다. 가게가 다르니 같은 메뉴라도 좀 다르지 않을까 하면서... (글로벌 체인점에서 뭘 기대한 건지)   

왠지 정이가는 작은 동네와 작은 스타벅스


대로변에 2시간 주차 가능 구역에 주차한 것도 내내 마음에 걸리고 합석이 자연스러운 이 나라 문화에도 살짝 불편해질 즈음 다시 차로 돌아가고 있었다. 일단 숙소가 어딘지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에 근처에 주차하고 두리번거리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현관으로 가니 청소하시는 두 분이 반갑게 맞아주셨다. 전날 얼리 체크인을 물어보는 메일을 보냈더니 적어도 2시는 되어야 한다고 했던 답장이 생각나서 2시쯤 서성였는데 다행히 청소가 곧 끝난다고 반갑게 맞아주셔서 음식이 걱정된다고 양해를 구하고 급한 냉장고 음식부터 옮기기 시작했다. 청소하시던 아저씨께서 친절하게 물건을 다 받아서 넣어주시고 캐리어도 2층에 올려주신 덕분에 수월하게 짐을 옮기고 아이들 픽업 전에 여유 있게 숙소 세팅을 완료할 수 있었다. 전 숙소인 아파트의 경우 정말 딱 필요한 몇 개의 도구만 있었는데 여긴 일반 가정집 마냥 갖춰진 게 많아서 보고만 있어도 흐뭇했다.



밥을 하려고 냄비를 찾아 찬장을 여는데 밥솥이 딱!!! 너무 반가워서 꺼내 올려서 뚜껑을 열었는데... 내솥에 흠집이 너무 많다. 골동품처럼 세월의 흔적이 느껴졌다. 다시 고스란히 있던 자리에 넣어놓고 냄비를 씻었다. 날아가는 밥(자스민쌀)은 뜸 고민도 없이 간단하다. 끓어오르면 불을 최대한 줄여 뜸을 길게 들이면 끝! 캐리어를 열어 필요한 걸 대강 꺼내서 세팅을 해놓고 시계를 보니 아이들이 나올 시간이다. 서둘러 주니어 스쿨에 먼저 가서 막내를 놀이터로 데리고 나온 후 시니어 스쿨로 가서 세 명을 데리고 왔다.


주니어 스쿨 놀이터에서 놀다가 오겠다는 아이들에게 대강 숙소 위치를 설명해주고 집으로 왔다. 약 20여분 지났을까.. 아이들이 몰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번지수도 잘못 이야기하고 코너 돌아 노란 집이라는 정도의 설명만 했는데도 아이들은 금세 찾는다.


역시나 아이들은 새 숙소가 맘에 쏙 드는 눈치다. 신이 나서 구경하고 노는 동안 전날 코스트코에서 산 갈비찜 스타일 스튜를 레인지에 데우고 한국에서 가져온 무섞박지를 꺼내고 밥과 김을 담아서 저녁을 차렸다. 고봉밥으로 맛있게 먹은 아이들을 태우고 오늘의 방과 후 나들이를 떠났다.


APEX Adventure Plex

한국의 바운스와 비슷한 방방이 시설인데 규모가 상당하다는 정보만 가진채 이 곳을 방문했다. 역시나... 시설이 굉장하다. 다양한 높이의 다이빙 대와 농구대, 커브 동선 등 한국에 없는 다양한 시설들을 보면서 감탄을 하고 있는데 아이들은 이미 입구에서부터 들떠서 얼른 들어가고 싶다고 난리다. 2시간을 결제하고 들어갔는데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머리카락이 흠뻑 젖을 정도로 뛰다가 온 아이들은 차를 타러 나오는 내내 최고였다고 엄지 척을 하며 난리가 났다. 혹시나 해서 한국 바운스 양말을 챙겨갔는데 입장 시 그곳 전용 양말을 신어야 된 데서 우리 양말을 주고 새 양말을 샀는데 아무래도 찜찜해서 나올 때 다시 물어보니 기존 양말을 반납하던 아니던 이곳 양말의 구입 요금은 동일하다는 거다. 결국 반납했던 양말을 찾아서 집으로 돌아왔다(한국에서 또 쓸지 모르니 버리기엔 아까웠다)


라면 야식

낮부터 탐나던 동네 슈퍼마켓이 있었다. 집에 오는 길에 잠깐 들러 우유와 주스, 수프를 샀다. 내일 아침메뉴는 구운 베이글에 따듯한 수프! 숙소에 오자마자 딸 셋이 샤워실을 점령하자 아들 녀석이 외로워 보였다. 침대로 변신 가능한 쇼퍼가 눈에 들어와서 이불을 가져오라고 시킨 후 쇼퍼 변신 작업에 들어갔다. 가져온 이불을 넓게 깔고 베개까지 세팅 완료! 폭신한 전용 침대를 만들어 주니 금세 신이 났다. 라면은 너구리로 결정! 두 개를 끓여서 김치와 밥까지 동원했는데도 마지막 국물까지 깔끔히 먹는 아이들. 이 여정 중 한국에서 가져온 라면은 일종의 구원투수 같은 역할이다.  오늘도 긴 하루의 매콤 개운 한 마침표를 찍은 아이들은 일기로 하루를 마무리하고 잠이 들었다.

고생한 하루를 격려하는 맥주, 내사랑 I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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