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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rice Jul 19. 2019

[Day 4] 여행은 새로운 일상을 만들어 내는 과정

" 엄마, 외국학교를 지각한다는 건 말이 안되죠. 내일부턴 가까운 곳으로 이사 가야겠어요."


등굣길 차 안에서 딸이 언성을 높여가며 진지하게 주장한다.

밴쿠버도 아침 출근시간 교통체증이 꽤 심하다. 평소 15분이면 충분한 거리가 30분이 걸린다. 게가 머뭇거리다가 늦게 나오는 날엔 마음이 더 초조해진다. 심지어 핸드폰도 충전 안 하고 잠드는 바람에 배터리가 아슬아슬하게 남아서 간신히 내비게이션을 볼 정도였다. 도착할 때까진 꺼지지 않겠지... 하면서도 내심 불안해서 거리가 좀 남은 직선 길에서는 잠시 화면을 꺼두기도 했는데... 아뿔싸! 너무 많이 직진해버렸다.


결국 다시 학교로 돌아가느라 더 늦어버리고... 동생들을 주니어 스쿨에 먼저 내려준다고 교문을 지나쳤더니 큰 애가 뿔이 났다. 왜 항상 주니어 스쿨을 먼저 가냐고... 사춘기가 시작되는 나이라 그러려니 하려다가도 괜스레 서운하다.


둘째가 수업을 주니어에서 시니어로 바꾸는 날이라 사무실에 같이 갔다. 마침 하고 싶던 운동이 있는 슈퍼 스포츠 수업이 자리가 있어서 옮겨서 등록하고 도서관으로 가니 담당 선생님이 아랫반은 모두 남자아이들이라고 윗반으로 가는 게 나을 것 같다고 친절히 안내해줘서 운동장에서 윗반 선생님을 만나 가볍게 인사하고 둘째를 인계하는데 다시 아뿔싸! 오후에 수영 수업이 있다고 수영복을 갖다 달란다.


쿨하게 알겠다고 하고 돌아서는데 다시 집에 갈 생각하니, 아슬하게 한자리수로 버티고 있는 핸드폰 배터리를 생각하니 발걸음이 무거웠지만 라이딩 미션을 서둘러 끝내야 내게도 자유시간이 오니까! 서둘러 차에 올라탔다. 혹시나 꺼질지 몰라 방향이 바뀌는 곳들 거리 이름 기억하며 다행히 숙소에 다시 도착! 아침에 정신없이 나가느라 미처 정리 못한 물건들 정리 좀 하고 필요한 것 챙겨서 다시 학교로 왔다. 사무실에 수영복을 갖다 놓고 나오는 길에 운동장에 서 있는 둘째가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슬쩍 다가가서 선생님께 인사를 하고 수복 잘 갖다 놨다고 얘기하고 돌아서는데 뒤통수로 "안녕하세요"라는 한국말이 들린다. 다시 아뿔싸! 반갑게 인사를 받아주고 돌아서는데 마음이 편치 않다.

머나먼 캐나다까지 영어 좀 써보겠다고 캠프에 들어왔는데.. 또래 외국인 친구 사귀라고 수업도 바꿨는데... 결국 여자 친구 2명이 있다던 수업의 그 친구들은 한국인이었던 것... 가다가 다시 돌아니 셋이 앉아서 수다를 떨고 있길래 둘째에게 영어로 얘기하라고 무언의 바디랭귀지로 신호를 보내는데 옆에 있던 친구들이 다시 내게 배꼽 인사를 한다. 웃으며 인사하고 돌아서는데 속으로 차라리 중국 아이들이라도 괜찮은데... 싶었지만 둘째의 운명이겠거니 싶다.


4.59 달러와 자유시간

어제 스타벅스의 상냥한 아줌마도 보고 싶고 커피에 샌드위치도 생각나는 아침이라 다시 오크리지 센터로 향했다. 역시나 가는 길이 너무 이쁘다.


가끔씩 내가 이 곳에 있구나 하고 실감하게 되며 가슴 벅차오르는 순간이 있다. 창문 열고 운전하면서 두 눈에 들어오는 풍경과 바람의 냄새... 특히 나는 냄새로 그 공간을 기억하는 습성이 있다. 가끔은 여행 일정이 빠듯하거나 뭔가에 집중하다 보면 막상 현지에 있을 때는 오롯이 여행을 느끼지 못하고 한국에 돌아와서 사진을 보고 그랬구나... 싶을 때가 있다. 그래서 최대한 현실의, 이 공간 속의 나를 느끼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천고가 낮아 불안했던 어제와는 다르게 비교적 자신 있게 주차장을 들어섰다. 여전히 고개를 움츠린 채로... 위층으로 더 올라가지 않고 가까운 곳에 주차를 하고 쇼핑몰 입구도 금세 찾았다. 푸드코트까지 걸어가는 동선도 이미 알고 있는터라 지도를 보거나 두리번거릴 필요 없이 자연스럽게 걸어갔다. 가 좋아하는 현지인 콘셉트로.


스타벅스에는 어제의 그 상냥한 아줌마가 카운터를 지키고 계셨다. 반가운 마음에 미소 지으며 같은 메뉴를 골랐는데!! 그 상냥한 아줌마는 어제와 같은 설명을 녹음기 틀 듯 똑같은 내용을 역시나 상냥하게 해 주신다. 같은 빵을 같은 이유로 권해주시길래 차마 이틀 연속은 자제하고 싶었기에 어제 이걸 먹었고 오늘은 이걸로 하겠다고 이야기했다(그래도 모르시는 듯..;;)  마지막에 이름이 뭐냐고 물으셔서 킴이라고 대답하니 그제야 약간 기억이 나시는지 계속 킴을 다정하게 부르셨다. 뭐 그럴 수도 있지... 라며 쿨하게 음식을 들고 어제 기둥 옆 콘센트가 있던 자리를 다시 찾았다.



노트을 꽂고 핸드폰 충전도 하려는데 이런... 충전 케이블이 없다. 결국 노트북만 쓰는 걸로~

자리에 앉은 지 얼마나 됐을까... 자유시간은 오늘도 금세 동이 났다.

마칠 시간이 얼마 안 남아서 마트를 들러 음료수와 간식을 사서 학교로 돌아와서 시니어스쿨에서 큰 아이들을 픽업 후 주니어 스쿨에서 막내를 픽업하고 차에 올랐다.



코스트코

한국에서 출발 직전 재발행하며 챙겨 온 카드도 쓸 겸 생수도 트렁크에 쟁여놓을 겸 목적지인 리치먼드 놀이터로 가는 길에 들를 수 있는 위치라 코스트코를 첫 목적지로 정하고 달렸다. 가는 길에 이쁜 놀이터를 발견하면 항상 멈춰 서야 하는 법! 우물에서 물 마시고 가듯 그렇게 아이들에겐 동네 놀이터 도장깨기 같은 습관이 있다.

한 20분 놀고 협박과 재촉을 번갈아서 겨우 차에 태우고 다시 출발했다. 그런데... 네비 상으로 20여분 달리면 되는 것 같아 보였는데 중간에 사고 난 차들도 있고 막히기도 하고 이래저래 난코스였다.

겨우 도착한 후 안심도 잠시.. 주차난이 한국과 마찬가지! 여기도 나가는 차 옆에 바짝 붙어서 찜! 하며 기다리는 광이란... 결국 그 차들로 길이 엉켜서 또 정체가 있고... 암튼 이 와중에 비교적 좋은 자리에 주차를 하고 앞에서 기념사진 한 장 남기고 카트를 밀었다.


역시 미주지역은 코스트코인가... 생각보다 싼 가격에 생수만 집어 들고 나오겠다던 결심은 이미 사그라든지 오래... 고기와 과일 코너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결국 트렁크를 가득 채우고야 나올 수 있었다. 아이들은 핫도그로 간단히 요기하고 아이스크림 바 9개 만원도 안되서 운명처럼 집어 든 하겐다즈 아이스크림은 1개씩 얼른 먹고 남은 4개는 도시락 보냉백에 넣으며 운명에 맡기기로 했다(다행히 숙소 냉동실로 세이브!) 한국에서 3만 원 중반대인 무염 견과류 한 통이 2만 원, 캐나다 꿀 3개 세트가 만원, 말린 무화가가 만원 중반대. 한국 가는 캐리어에 싣고 가고 싶은 욕심에, 또 언제 여길 오겠냐는 마음에 열심히 담았다. 아직 여행 일정이 긴데 어떻게 가지고 다닐는지...ㅠㅠ


테라노바 어드벤추어 플레이그라운드(Terra Nova Advanture Playground)


Terra Nova Rural Park 안에 있는 놀이터다. 구글에서 웅장한 미끄럼틀 사진을 보고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큰딸이 여길 찜해놨다며 가자고 해서 별 정보 없이 출발했다. 다행히 코스트코에서도 14분 거리. 뭔가 섬의 가장자리 길을 따라 달리고 있다는 생각은 했는데 도착지에 다다르니 풍경이 너무 이뻐서 깜짝 놀랐다.

게다가 노을질 저녁 시간이라 구름, 하늘, 바다, 노을에 한적함까지 아무것도 안 하고 벤치에 앉아 마냥 바라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따듯해지는 그런 공간이었다. 차를 주차하고 내가 풍경에 취해있는 동안 아이들은 금세 놀이터로 사라졌다.

놀이터의 다른 일행들을 보니 간식과 저녁거리를 가져와서 마련되어 있는 야외테이블에 올려놓고 느긋하게 먹고 즐기고 있었다. 특히 3대 대식구가 저녁식사를 챙겨 와서 넓게 세팅하면서 오손도손 이야기 나누는 모습이 참 정겨워 보였다.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노는 동안 노을이 내려앉는 바다를 바라보려고 벤치에 앉으려는데 등받이에 붙은 글귀가 보여 잠시 먹먹해졌다.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잠시 쉬어갈 수 있는 흔한 벤치라고 생각했는데... 한 생을 살다 간 사랑하는 누군가를 기리는 의미가 있을 줄이야... 잠깐이지만 편한 쉼을 주는 그분들께 감사한 마음이 들면서 이름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게 되었다. 생을 마감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문득 떠오르는 선택지는 무덤, 납골당, 수목장 이 정도? 선택지가 많지 않다. 만약 후대의 누군가에게 쉼이 되면서 내 이름만 가볍게 남을 수 있다면? 설령 영원한 존재가 아니라 잠시 있다 사라진다 해도 그렇게 마음의 벗이 되는 존재로 남는다면 최고로 아름다운 마침표가 아닐까...



내가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이다.

반복되는 일상과 좁은 시선과 고정된 사고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는 시간과 기회.

내게 노을 진 바다를 마음에 담을 쉼을 주신 그분들께 감사하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무언의 토닥임을 받고 발걸음은 가볍지만 마음은 따듯하게 차오르는 그런 저녁이다.


함박스테이크와 소고기 고추장

코스트코의 다진 소고기는 가성비 갑 아이템! 특히나 동그랗게 성형되어 있어 바로 굽기만 하면 돼서 너무나 탐났다. 그런데 숙소에 가져와보니 막상 내일이 체크아웃이라 뭔가 해체작업이 필요했다. 결국 두덩이는 버터 둘러 팬에 굽고 한 덩이는 으깨서 볶은 후 참기름, 꿀, 고추장을 넣어 소고기 고추장을 만들었다. 흰밥에 이 고추장만 있으면 한 그릇이 금세 사라진다.

feat.한국서 엄마가 넣어준 명랑핫도그 케첩! 캐나다에 왠 케찹이냐고 시쿤둥했는데 이렇게 요긴하게 쓰일 줄이야 역시 연륜이 최고^^

나머지 패티는 지퍼백에 이쁘게 넣어서 냉동실로 직행! 냉장고 음식들이 내일 무사히 새 숙소 냉장고로 이사 가야 할 텐데... 체크아웃이 아침 8시, 체크인이 오후 3시라 살짝 걱정이지만... 뭐.. 괜찮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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