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책의 장르와 주제와 평론과는 상관없이 주저하지 않고 선뜻 구매할 수 있는 일은 흔치 않다. 최근에 누가 내게 ‘책을 구매하게 되는 세 가지 기준’에 대해 물어봤는데, 그 첫 번째가 이거다. 초판 1쇄를 손에 넣는 느낌은 짜릿하고, 나만 알고 있다는 기분이 썩 나쁘지 않다. 아끼고 아껴서 며칠에 걸쳐 조금씩 뜯어먹었다.
- 기왕이면 등을 보이며 돌아서는 쪽이 나는 아니었으면 했다. 잘 배웅하는 것 또한 사랑일까? 정말 사랑했다고 느끼는 사람에게 정말로 사랑을 느끼게 해 주었는지, 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사랑이었는지, 처음에 있었던 성공과 끝에 남았던 실패까지 그 모든 게 사랑이었는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설명해 주고 싶은 마음이 사랑인지, 어떻게든 증명하고 싶던 순간이 사랑인지. 무형의 것을 감각하는 것은 어렵다. 사랑하기로 선택한 순간 어설퍼진다. 우습지는 않지만 웃기긴 하지?
- 요즘은 스스로에게 솔직하지 못한 날이 많다. 느껴지는 것들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해석하고 싶지만 용기가 없다. 내게 찾아온 감정의 흐름이 정말 내 것인지 모르겠다. 나도 잘 알지 못하는 나지만 누군가에게는 꼭 털어내고 싶다. 나도 모르는 나를 누가 이해해 줄까? 아니, 이해와 공감은 다르다. 말은 입에서 뱉어지는 순간 칼날이 되기 쉽다. 고작 몇 마디 단어와 두어 개 남짓의 문장이 한순간에 위선이 되는 일을 많이 목격했다. 내가 따뜻하다고 생각했던 것도 종종, 아주 잘, 차갑게 변질된다. 고로 완벽한 이해란 존재할 수 없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이해는 사실 어렴풋이 짐작하(려)는 것에 가깝다.
- 이만하면 됐다고 자위하는 삶은 매력적이지 않고 캄캄하다. 밀도 높은 성찰은 삶을 의미 있게 만들어준다. 어떤 작물은 주기마다 옮겨 심어야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했다. 인간에게도 분갈이는 필요하다.
- 특정 어느 것에 미칠 줄 아는 사람들이 부럽다. 시간이 가는데 시간이 가는 줄 모를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취미는 지치는 삶을 살아갈 이유에 대해 설명한다. 그럴 수 있을 때 비로소 다채로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