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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다리 준 Oct 17. 2021

뷰클랜드 (Björklunds)

옛말에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는 말이 있다. 누군가 들어와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때는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잘 몰라도, 그 사람이 떠나고 난 빈자리를 보면 괜스레 허전하고 쓸쓸하게 느껴지는 마음을 빗댄 말이다. 혼자 사는 사람이라면 친구들이 놀러 왔다 각자 집으로 돌아갔을 때 한 번쯤은 느껴봤을 기분이다.
도시라고 해서 다르지는 않다. 도시가 커지며 부흥을 이루면 자연스레 사람들이 모여든다. 거리에 사람이 넘치고 가게는 손님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북적북적하게 서로 살을 부딪히며 살다 보면 그게 당연한 삶처럼 여겨진다. 그러다 점점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지고 자리 잡고 살던 이들이 하나둘 떠나기 시작하면 오래지 않아 도시에는 적막함이 흐르게 된다. 오래된 도시라면 그런 부침의 시기가 한두 번은 찾아오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오랜 시간 그 지역에 뿌리를 박고 살아온 주민들이 명맥을 이어가며 도시를 아름답게 가꿔가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에서 1시간여 거리에 있는 베스테로스(Västerås)가 바로 그런 도시이다.

베스테로스는 스웨덴은 물론 북유럽에서도 가장 오래된 도시들 중 하나이다. 11세기 무렵에는 스웨덴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로 성장했으며 18, 19세기에는 오이 농사가 붐을 이루며 ‘오이 도시(Gurkstaden)’라는 별명을 얻어 지금까지도 이 별명을 유지하고 있다.


20세기에 들어오면서 커피는 베스테로스 지역에서 문화적으로도 중요하지만 비즈니스적으로도 큰 부분을 차지하는 품목이 되었다. 100년도 전인 1918년에 처음으로 커피 로스터리가 문을 열었던 만큼 꽤나 유서 깊은 커피 역사를 자랑한다.

지금은 사라진 베스테로스의 커피 기업 Luxus 같은 커피 브랜드의 고향이자 각종 커피 비즈니스가 꽃피웠던 도시였지만 커피 제품의 발달과 시대적 변화에 따라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쇠락해갔다. 그러던 중 2013년 커피 로스터리 뷰클랜드(Björklunds Kafferosteri)가 지역 친화적인 로스터리를 지향하며 나타났다.


뷰클랜드는 베스테로스에서 잠시 잊혔던 커피 문화를 되살리기 위해 힘쓰고 있다. 하지만 이전의 커피 비즈니스가 가졌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사업의 크기를 키우고 더 유명해지고, 더 많이 판매하려 하기보다는 지역의 명물로 존재하고, 지역 사람들이 맛있게 즐길 수 있는 커피를 만들기 위해 더 노력한다. 품질 좋은 커피로 조금씩 이름을 알리면서도 그는 다른 도시로 진출하려는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심지어 수도인 스톡홀름까지 1시간이면 닿을 수 있으면서도 말이다. 이런 그의 성향은 각종 인터뷰에서도 잘 드러나는데, 자신은 로컬로 남고 싶다며 베스테로스 사람들을 위한 로스터리이고 싶다는 말을 하기도 하고, 뷰클랜드 커피를 왜 스톡홀름에 진출시키지 않냐는 물음에는 ‘왜 그래야 하느냐’고 반문한다. 그는 그저 맛있게 내린 좋은 커피를 주변 사람들 그리고 그의 좋은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고 행복하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는 서로 끌어당기는 건지 행복하고자 하는 마음이 맞은 스웨덴과 대한민국의 친구가 만나고 행복함에 더해 그저 가만히 있기만 해도 되는 사색의 공간, 카페 뷰클랜드를 송리단길 끝자락에 열었다.




뷰클랜드 서울의 사장은 어린이 공원이 있는 바로 옆의 주택에서 카페를 시작하기 위해 무려 1년을 기다렸다고 한다. 서울에서 가장 복잡하고 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잠실, 그 바로 앞의 송리단길에 있으면서도 이런 어지러운 모습과 대척점에 있는 듯 고요하고 정적인 뷰클랜드의 모습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정신없는 동네이기에 더욱 쉼표와도 같은 공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아름다워지는 곳’이라는 컨셉에 맞게 뷰클랜드는 송리단길에서도 한 블록 들어온 조금 한적한 곳에 있다. 주택을 개조하여 만들어서 일까. 가만히 보면 집의 구조를 거의 그대로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층은 거실과 방으로 나뉘어 있는 듯 벽이 세워져 있어 공간과 공간 사이가 다소 답답해 보일 수 있음에도 전면으로 커다란 통창이 나 있어 비좁거나 답답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2층으로 가면 상업용 시설로 지어지지 않았다는 걸 여실히 느낄 수 있을 만큼 계단이 상당히 가파르다. 조금 아슬아슬하게 올라가고 나면 높은 천장이 반겨주는 거실 같은 공간이 나온다. 벽과 천장을 모두 목재로 인테리어 해서 마치 스웨덴의 숲 속에 들어온 듯 편안한 기분을 들게 한다.


커피를 내리는 원두의 이름은 북유럽의 지명에서 따왔는데 로스팅 상태에 따라 구분해놓은 것이 꽤나 재미있다. 라이트 로스팅은 오슬로인데 노르딕 로스팅의 얼굴이기도 한 팀윈들보가 있는 오슬로의 이름을 따서 그런지 라이트 로스팅에 딱 알맞은 이름처럼 보인다. 다크 로스팅에는 쿵스레덴이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쿵스레덴은 말 그대로 왕의 길이라는 뜻이다. 스웨덴에 있는 트레킹 코스로 장엄한 대자연의 풍광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다. 이름만으로도 뭔가 엄숙함이 느껴지는 것이 무거운 다크 로스팅의 맛과 어딘가 어울리는 것 같지 않은가. 그 외에도 미디엄 로스팅에 붙인 뷰클랜드의 고향 이름인 베스테로스, 스페셜티 50% 블렌드로 만든 라곰과, 휘게 등이 있다.

아쉬운 점은 이제 뷰클랜드에서 수입해 온 원두가 소진된 후에는 자체 블렌딩한 원두로 커피를 제공할 것이라는 점이다. 코로나 등 내외적인 문제로 인한 결정이라고 하니 아쉽기는 하지만 비록 자체 블렌드를 사용한다 하더라도, 뷰클랜드가 추구하는 목적을 공유하는 두 카페는 커피의 맛에 있어서도 다른 듯 또 같은 방향을 바라보지 않을까.


한두 번 방문하다 보면 뷰클랜드가 카페라기보다는 명상 테라피를 하는 곳처럼 느껴지기도 해서 커피나 차는 잠시 뒤로 미룬 채 멍하니 생각에 잠기게 된다. 조용한 이 공간에서 사색에 잠겨있다 보면 자연스레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가지게 될지 모른다. 누군가의 삶을 살아가기에 바쁜 요즘의 우리에게 무엇보다 값진 순간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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