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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다리 준 Oct 19. 2021

맷카페(Matt Cafe)

이탈리아 피렌체. 역사와 예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본고장이자 위대한 예술가들이 활동한 문화, 예술의 도시일 것이다. 혹은 그 부유함으로 인해 13세기부터 17세기까지 정치, 경제 모든 면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미쳤던 메디치 가문을 떠올리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피렌체는 대성당(두오모)의 쿠폴라로 기억되고 있다. 소설 ‘냉정과 열정사이’를 읽었다면 분명 그럴 것이다.

2000년 경 출간한 냉정과 열정사이는 일본의 소설가 츠지 히토나리와 에쿠니 가오리가 헤어진 후 다시 만나게 되는 연인의 이야기를 남자와 여자의 입장에서 각각 집필하여 하나의 엔딩을 이루는 신선한 스타일의 러브 스토리였다. 2001년 영화화되면서 이탈리아 피렌체의 아름다운 풍경을 스크린 너머로나마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내 서른살 생일날, 피렌체의 두오모, 쿠폴라 위에서 만나기로, 어때?”라는 여주인공 아오이의 말이 이 이야기의 시작이자 끝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스토리가 전개되는 내내 대성당을 중심으로 피렌체의 아름다운 골목과 풍경을 카메라로 아낌없이 담아냈다. 소설과 영화의 흥행이 이루어지며 소설이 출간된 일본을 비롯한 한국의 관광객 비율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아직까지도 피렌체 대성당은 연인의 성지로 잘 알려져 있다.


이렇듯 르네상스, 메디치 가문, 대성당으로 유명한 피렌체이지만 이 역사적인 도시에서 예술적인 에스프레소 머신을 개발한 회사가 탄생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바로 에스프레소 머신의 명가 라마르조코다.

세계적으로 내로라하는 에스프레소 머신은 수도 없이 많지만 여기서 상업용 하이엔드 모델만 추려낸다면 그 수가 꽤 줄어들 것이다. 바리스타나 로스터 등 커피를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라면 머릿속에 바로 떠오르는 브랜드가 몇 있을 텐데 거기에는 라마르조코도 있을 것이 분명하다.


1927년에 설립되어 90년이 넘는 오랜 시간 동안 사랑받아 온 라마르조코는 1988년부터는 전 세계 스타벅스에 에스프레소 머신을 독점 공급하기 시작했고, 2000년부터 2008년까지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십(WBC)에 에스프레소 머신 공식 스폰서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렇게 인정받은 이유는 오랜 시간 라마르조코에 헌신한 피에로 밤비(Piero Bambi) 명예 회장의 말로 대신할 수 있을 것 같다. “기술을 배우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열정을 키우는 건 스스로의 일에 대한 헌신, 사랑, 자부심, 그리고 존중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1]




내가 머신을 사용해서 커피를 내려 마시는 것도 아닌데 굳이 어느 브랜드 것인지 알 필요가 있나 할 수도 있다. 맞다. 전적으로 맞다. 소비자 입장에서 내 입에 들어오는 커피가 맛있으면 그걸로 된 거지 어떤 머신으로 내렸는지가 뭐 중요하겠는가. 그저 안면을 좀 익혀놓자는 정도로 생각하면 좋겠다. 타지에 나가 한국 말이 들리면 반가운 것처럼 어느 브랜드의 머신인지 알고 마신다면 괜시리 반가운 마음이 들지도 모르니까. 어쩌면 조금은 아는 체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길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카페에 들러 주문을 할 때면 에스프레소 머신을 한 번 살펴보자. ‘La Marzocco’의 이름이 새겨진 머신들을 생각보다 쉽게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기계에 대한 정보를 알아보려면 통상 그 브랜드의 본사나 지사에서 직접 설명을 듣는 게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이다. 그렇다고 일부러 에스프레소 머신에 대한 설명을 듣자고 이탈리아까지 날아가는 건 커피를 업으로 하는 바리스타라 하더라도 쉬운 일은 아닐 거다. 그러니 관심이 있다면 라마르조코의 한국 지사를 찾아가 보자. 머신 하나 알아보자고 회사까지 찾아가는 건 시간 낭비처럼 보일지 몰라도 맛있는 커피 한 잔을 하는 김에 추가적인 정보도 얻어 온다고 생각하면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논현동에 위치한 라마르조코 한국 지사는 지사의 역할과 함께 라마르조코의 모든 에스프레소 머신 라인업을 살펴볼 수 있는 쇼룸과 두 개 층 규모의 카페 공간인 맷 카페(Matt Cafe)가 어우러진 복합 공간이다. 주택가 골목을 따라 쭉 걷다 보면 거대하면서도 깔끔한 회색 건물을 볼 수 있다. 카페에 들어서기 전에 보이는 건물의 외관도 웅장하지만 입구 양쪽을 지키고 있는 사자상의 자태가 사뭇 압도적이다. 피렌체의 상징이자 라마르조코의 로고로 사용되는 이 사자상의 이름이 바로 마르조코다. 즉 이 사자상에서 회사 이름을 따온 것이다.


카페를 둘러보면 층마다, 공간마다 그 컨셉이 확연하게 다른 것이 눈에 띈다. 입구를 기준으로 양쪽 공간이 마치 다른 공간인듯한 인테리어가 재미있다. 입구 왼쪽 편은 마치 도서관에 온 듯 벽면이 책으로 둘러싸여 있다. 장식되어 있는 책을 보다 보면 라마르조코에서 발행하는 연보(Year book)를 볼 수 있는데, 영어로 되어 있는 책이지만 은근히 보는 재미가 있다. 글보다 사진이 많고, 수준 높은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카운터를 지나 오른쪽 공간으로 가면 샹들리에 같이 거대한 조명이 반겨주는 살롱 같은 공간이 나온다. 1층을 슬쩍 둘러봤다면 카운터에서 커피를 주문하자. 검은색 셔츠에 정장 바지를 입고 깔끔하게 머리를 올린 멋있는 바리스타들이 주문을 받아줄 것이다.

주문 후에는 커피가 나올 때까지 지하 1층을 구경해보자. 지하 1층 공간은 각 벽면이 눈에 띄는 컨셉으로 이루어져 있다. 한쪽은 마치 영화 ‘화양연화’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듯한 붉은 커튼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다른 쪽 벽면은 벽 안쪽으로 공간을 만들어 바닥을 제외한 벽과 천장을 모두 거울로 덮어놓아 마치 거울의 방에 온 듯한 느낌이 들게 한다.

카페 내부를 다 둘러볼 때쯤이면 주문한 커피가 완성되어 진동벨이 울릴 테니 카운터에서 커피를 받아 마음에 드는 공간에 자리를 잡자. 날이 좋을 때면 분수 앞 야외 자리에도 앉을 수 있으니 그늘 아래서 나무와 꽃을 보면서 커피를 마셔도 좋을 듯하다.


이탈리아 에스프레소 머신 브랜드의 쇼룸인 만큼 에스프레소의 수준이야 말할 필요가 없다. 기본적인 에스프레소부터 에스프레소 콘 파냐, 에스프레소 마키아토 모두 진하면서도 부드럽게 즐길 수 있다. 에스프레소 원두도 취향에 따라 산미가 있거나 고소한 원두 중에 고를 수 있게 준비되어 있다.

이탈리아에서 온 브랜드라고 해서 꼭 에스프레소 베이스의 커피만 마실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필터 커피로 즐길 수 있는 스페셜티 원두가 있는데 모두 마그마 커피(MAGMA COFFEE)에서 공급받고 있다.

이 커피를 맛보기 전에 가장 먼저 테이스팅 노트와 원두 봉지의 커버가 눈에 확 들어올 것이다. 생생한 색감에 원두마다 특징을 살린 일러스트 덕에 노트를 감상하는 재미도 꽤나 쏠쏠하다. 원두 자체의 품질도 훌륭하고 독특한 맛과 확실한 센서리를 전달하여 어느 것을 선택하든 후회하지는 않을 듯하다.


싱글 오리진 원두의 종류는 시즌에 따라 조금씩 변화하지만 기본 원두로 제공되는 에트나와 칼라 릴리는 큰 변화 없이 자리를 잡은 것처럼 보인다. 이 중 칼라 릴리는 원래 겨울 시즌 한정으로 소개된 상품이었지만 지속적인 인기로 인해 정식 라인업에 포함된 원두라고 한다. 향을 맡는 순간 그 인기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강렬한 꽃향기가 콧속을 간지럽히며 순식간에 매료되었다. 에스프레소로 즐길 때도 산뜻한 산미 덕에 마지막 한 방울까지 깔끔하게 마실 수 있었다.

취향에 맞는 맛이라 집에서도 즐기고 싶은데 홈카페 용품이 없다면 그래도 괜찮다. 컵과 뜨거운 물만 있으면 즐길 수 있는 드립백 제품도 준비되어 있다. 바로 그라인딩한 원두가 아니라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드립백으로만 즐겨도 충분할 만큼 확실한 센서리는 봉지를 뜯는 순간 당신을 사로잡을 테니까.


커피 머신 제조사 중 최초로 한국에 지사를 설립한 회사인 만큼 한국 시장에 들이는 관심과 공이 얼마나 큰지 맷카페에서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할 수 있다. 커피를 향한 뜨거운 열정과 열정을 실현하는 냉정한 판단력으로 전 세계 커피 머신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라마르조코의 커피를 경험해보자.



[1] "You can learn a technique, but you can only develop passion through dedication, love, pride and respect in your work."

Industry pioneer and La Marzocco co-founder,

Piero Bambi

출처 Marzocco’s Excellent Adven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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