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키다리 준 Oct 20. 2021

카페 무세띠(Caffe Musetti)

점심시간 끝자락 사람들이 카페로 하나둘 모여든다. 언제나 그랬다는 듯 바리스타에게 “커피 한 잔 줘요(Un caffè per favore)”라며 주문한다. 1분도 되지 않아 진한 에스프레소 한 잔이 준비되어 나온다. 바에 팔을 걸친 채 에스프레소를 한 입 털어 넣은 다음 1유로 동전을 놓고 빠르게 카페를 빠져나간다. 아마 이들은 아침에 이미 카푸치노 한 잔씩은 하지 않았을까.


이런 장면은 우리가 이탈리아의 카페에 대해 가장 흔하게 상상할 수 있는 모습이다. 이탈리아 커피 하면 역시 에스프레소가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처럼 이탈리아의 카페라고 하면 떠오르는 스테레오 타입이 몇 가지 있다.

먼저, 사람들이 빠르게 에스프레소를 한 잔 마시고 갈 수 있는 바이다. 이탈리아의 카페라면 그 규모와 관계없이 거의 모든 카페에 카운터와 연결된 ‘바’가 존재한다. 느긋하게 시간을 보낼 사람이야 테이블에서 주문하고 자신들의 시간을 보내면 되지만 대부분의 이탈리아인들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카페에서 오랜 시간 뭉그적거리지는 않는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탈리아에서 커피를 마시는 휴식 시간은 ‘una pausa’라고 하는데, 영어의 ‘pause’와 같은 단어로 ‘잠시 멈춤’ 정도의 뜻이기 때문이다. 즉 하루 일과에서 ‘잠시’ 쉬어가는 시간인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멋지게 슈트를 차려입고 머리를 단정하게 올린 바리스타의 모습이다. 하얀색 와이셔츠에 정장 바지. 때로는 보타이에 검은색 조끼를 걸친 마치 고급 바의 바텐더 같은 모습이 연상된다. 어찌 보면 당연한 모습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바리스타라는 단어 자체가 이탈리아어로 ‘바 안에서 만드는 사람’이라는 뜻이고 영어 바텐더와 같은 의미이기도 하니까. 그래서일까 베네치아로 여행을 가면 꼭 들러봐야 할 장소라는 카페 플로리안(Caffè Florian)이나 그에 못지않게 오랫동안 피렌체에서 자리를 지켜 온 카페 질리(Caffe Gilli) 같이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이탈리아의 카페들은 여지없이 바리스타의 복장에도 신경을 쓰는 모습을 보인다.


스테레오 타입이라고 해서 부정적으로만 생각할 것은 아니다. 정형화된 모습이 떠오른다는 건 그만큼 오랜 시간 전통을 지켜왔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새로운 것은 언제, 어디서나 나타난다. 하지만 1, 2년도 아닌 수십 년 혹은 백 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전통을 지켜나가는 모습을 찾는 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오랜 전통과 문화를 안내하기 위해 카페 무세띠(Caffe Musetti)에서 서울에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었다.

카페 무세띠는 1934년 이탈리아 북부의 피아첸차(Piacenza)에서 탄생했다. 밀라노에서 약 1시간여 거리에 있는 이 도시는 이전에는 밀라노와 볼로냐 사이의 주요 도시였다고 한다. 밀라노에서 가까운만큼 관광을 하고자 하면 가지 못할 장소는 아니지만 한국 사람들에게 그다지 알려져 있는 도시는 아니었다.

하지만 23년 전 사라졌던 구스타프 클림트의 명화 ‘여인의 초상’이 피아첸차 한 갤러리의 구석진 건물 벽 속에서 발견되면서 한때 미술계에서 크게 화재가 된 적이 있었다. 그 덕분에 적어도 미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피아첸차라는 지명 정도는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오래 머물며 시간을 보내기에는 다소 작은 마을이지만 잘 보존된 중세 시대의 건축물과 클림트의 작품을 감상하며 하루를 보내기에는 더할 나위가 없는 장소이다.




작은 마을에서 탄생한 브랜드라고 그 전통과 맛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한국에서 경험할 수 있는 이탈리아 카페 중 분위기나 스타일이 가장 이탈리아스럽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카페 무세띠 서울 플래그십 스토어는 방배동의 주택가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다. 한적한 이 주택가에 정통 이탈리아 커피와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점이 의아할 정도다. 총 두 개 층을 사용하는데, 1층은 카페로 일반 고객에게 무세띠의 커피와 이탈리아의 커피 문화를 공유하는 공간이고, 2층은 바리스타 트레이닝 센터로 사용되고 있다.


골목길을 따라 쭉 내려가다 보면 건물 외관에서부터 살짝 이탈리아의 향기가 나기 시작한다. 카페에 들어서면 이탈리아의 한 카페에 도착한 듯한 기분이 든다. 대리석 테이블에 라탄 의자를 매칭하여 마치 한 여름, 이탈리아 밀라노의 카페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바닥과 벽면의 타일, 장식되어 있는 소품 하나까지 신경 써서 배치해놓았음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여느 이탈리아 카페처럼 카운터에서 빠르게 에스프레소 한 잔을 하고 갈 수 있게 길게 뻗은 대리석 모양의 바가 있어, 간단히 커피 한 잔을 마시고 바로 가고 싶은 손님이라면 이탈리아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애용할 수 있는 공간이다.


한국에 있는 카페인만큼 아메리카노나 카페 라떼도 메뉴판에서 볼 수 있지만 굳이 이곳까지 찾아와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건 절대 추천하고 싶지 않다. 맛이 없어서가 아니다. 맛보고 경험해볼 만한 커피 리스트가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에스프레소 기반의 음료들(에스프레소, 에스프레소 콘 파냐, 에스프레소 마끼아또, 카푸치노 등)도 볼 수 있지만, 이탈리아 커피 전문점이 아니고서야 보기 힘든 카페 마로끼노(혹은 마로치노라고도 함)나 여름에 시원하게 마실 수 있는 샤케라또와 카푸치노 프레도 등이 준비되어 있다. 그 외에도 이탈리아에서 사랑받는 스프리츠와 리몬첼로 같은 식전주도 구비되어 있다.

메뉴판을 자세히 보면 바(BAR)와 테이블(TABLE)의 가격이 다르다. 이탈리아 카페들이 운영하는 것과 동일한 방식을 취하고 있어서 빠르게 에스프레소 한 잔 하고 가는 사람들이라면 싼 가격으로 바에서 가볍게 한 잔 하고 갈 수 있고, 여유가 있는 사람이라면 테이블을 잡고 천천히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금액의 차이는 자릿세나 서비스세와 같은 명목으로 추가적인 금액이 붙는 이탈리아의 방식을 그대로 따른다고 생각하면 된다

.

요 몇 년 사이 한국에도 전문적인 에스프레소 바가 여럿 생겨나는 추세다. 아메리카노와 필터 커피가 대세로 굳어져 가는 듯했던 한국의 커피신에 전통적인 커피 문화가 새로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카페 무세띠에서 경험하는 커피는 이 새로운 전통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달콤한 한 잔이 되어줄 것이다.


이전 13화 맷카페(Matt Cafe)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