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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다리 준 Jun 23. 2022

카메라 수난사 Part3 - 무소유 대신 풀소유

화질구지 주의

1편과 2편을 먼저 만나보세요.

[카메라 수난사 Part1 - 추격자 https://brunch.co.kr/@jzjz0219/28]

[카메라 수난사 Part2 - 카메라는 돌아오는 거야! https://brunch.co.kr/@jzjz0219/29]


멜버른 툴리마린 공항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시드니로 가는 비행기가 9시쯤 출발해서 아침부터 준비하느라 눈은 좀 감겼지만 가 볼 일 없다고 생각했던 도시를 방문하는 거라 마음이 들뜨기도 했다. 마음이 들뜨면 안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참 철이 없다. 왜 가는지 한 번만 더 생각해보면 머리를 쥐어박아도 모자를 판인데 놀러 가는 것 마냥 신이 나 있으니 환장할 노릇이긴하다.

이야 공항이다. 신난다...!

왜 가냐고? 질긴 인연을 이어가던 나의 캐논 400D가 결국 자유의 몸이 되었다. 혼자 가기는 외로웠는지 지갑과 여권 등이 들어있던 가방까지 통째로 자취를 감췄다. 카메라만 잃어버렸다면 시드니까지 갈 일이 없었겠지만 여권을 잃어버린 마당에 재발급을 받으려면 대사관을 찾아가야 했다. 오페라 하우스도 볼 겸, 필리핀 기숙사에서 함께 공부했던 동생들이 시드니에 머물고 있으니 얼굴도 볼겸 그렇게 시드니행 항공기를 예약했던 것이다.


카메라와 이별하게 된 그날은 호주에서 만난 친구들과 가까운 해변가로 여행을 가던 날이었다.

슬슬 봄으로 넘어가기 시작하는 11월이었다. 6명이 모여서 바비큐 파티를 하기로 했다. 아침부터 장을 보기 위해 울워스(Woolworths)로 갔다. 한국으로 치면 이마트 같은 곳이라 바베큐용 음식을 사기에 적절한 장소다. 고기, 소세지, 맥주, 야채 등 먹어보고 싶었던 재료들은 다 쇼핑카트에 집어넣었다. 양손에 바리바리 짐을 들고 열차에 올랐다. 30분은 가야하는 곳이라 서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창 밖을 넋을 놓고 바라보며 멍 때리기도 하다가 보니 곧 도착했다. 짐을 들고 열차에서 내려 걸어가는데, 어깨가 허전했다.


아... 또 없다. 이번엔 가방이 통째로 없다. 주변 누구도 내 가방을 들고 있지 않았다. 그 와중에 열차는 저 멀리 달려가고 있었다. 열차만 바라봐 봤자 답이 나오질 않았다. 주변을 둘러봤는데, 작은 역이라 그런지 역무원도 보이지 않았다. 개찰구 쪽에 있던 열차 회사 전화번호를 보고 바로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너머 직원이 가방의 형태와 지나간 열차 시각 등에 대해 상세히 물어봤다. 전화하는 내내 정신이 없었지만 급하면 초인적인 능력이 나온다고 하던가. 그렇게 잘 안 나오던 영어가 머리를 거치지도 않고 술술 풀려나왔다. 기다리면 연락을 주겠다는 직원의 말에 통화를 끊었다. 오늘은 놀러가기로 한 날인 만큼 일단은 바베큐라도 먹으면서 진정해야겠다 싶어, 걱정하는 친구들에게 괜찮다하고 해변가로 걸어갔다.

이렇게 바다가 펼쳐진 해안가에서 기분 좋게 바베큐를 하려고 했는데...

단순하면 행복한게 맞다. 배를 채우고 나니 가방을 잃어버려 가라앉았던 기분이 좀 좋아졌다. 그때서야 몸 이곳저곳이 쓰라린 것을 알 수 있었다. 순간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었는지, 왼쪽 손등에는 깊게 패인 손톱 자국이 나 있었고 입술 안쪽에는 이로 꽉 깨물어 파인 상처가 있었다. 그때 '어쩌면 가방도 카메라도 영영 못 찾을 수 있겠다'하고 느꼈다.


역시 가방은 돌아오지 않았다. 열차 회사 직원은 열차를 확인해보았지만 비슷한 형태의 가방은 찾지 못했고, 분실물 센터에도 신고된 바가 없다며 'I am sorry'라고 위로했다. 멜버른 시내로 돌아왔다. 친구들은 모두 돌아가고 나는 경찰서에 들러 분실신고서를 작성했다. 이것도 나름 경험이라 생각하고 다시는 이럴 일이 없겠지 했는데... 10년도 안되어 더 크게 털린 채 경찰서를 가게 될 줄이야 상상이나 했겠는가.


분실신고서를 작성하고 나오니 마음이 허전했는데 이제부터 준비해야 할 것이 많다는 것이 머릿속에 떠오르면서 다시 화가 치밀어 올라왔다. 여권을 재발급하려면 시드니를 가던가 캔버라를 가야 하는데 어디로 가지? 카메라도 없는데 그럼 사진은 어떻게 찍지?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먼저 카메라부터 어떻게 할지 결정했다.

여기서는 카메라가 비싸니 대신 아이팟을 구매하기로 마음 먹었다. 사실 음악도 듣고 싶고 새로 나온 아이팟 기기가 워낙 이뻐서 눈독을 들이기도 했는데, 넘어진 김에 쉬어 간다고 겸사겸사 손에 넣었다. 시드니까지 가는데 사진도 안 찍고 돌아올 수는 없는 일이니까 하하하. 그렇게 아이팟과 함께 시드니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다행이 국내선은 여권 검사를 따로 하지 않아서 비행기를 타는데 문제가 없었다. 아니었다면 열차를 타고 12시간은 가야했겠지.


가방을 잃어버린 덕분에 좋은 경험을 했다고 할까. 계획에 없던 새로운 도시를 방문하기도 하고 대사관에도 방문 했다. 이거 완전 8년 후와 똑같다는 생각이 불현듯 든다. 이런 일을 굳이 또 겪을 필요는 없었는데 싶기도 하다.

여하튼 시드니는 내 호주 계획에 들어있지 않던 도시였다. 어딘가 다른 도시를 가보고 싶다는 생각은 했지만, 시드니는 이상하게 피하고 싶었다. 그래도 시드니를 선택했던 이유는 당시 캔버라와 시드니에만 여권을 발급할 수 있는 대사관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고, 필리핀에서 함께 지낸 배치 동생들이 머무는 곳이기도 해서였다. 몇 개월 간 못 보긴 했지만 서로 잊지 않고 지속적으로 연락하고 지냈다. 보고 싶은 동생들도 보고 새로운 도시도 방문하고 일석이조였으니 나쁠 게 없었달까.

LA 아리랑 아님

배치 동생들의 살가운 환대와 배려 덕분일까. 방문을 피하고 싶었던 마음이 무색할만큼 너무나도 즐거운 2박 3일을 보냈다. 여권을 신청한 후에는 관광객답게 각종 여행지를 둘러보았다. 하이드 공원과 세인트 메리 대성당을 시작으로 TV에서나 봤던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와 하버 브지리를 직관하는 호사도 누렸다. 멀리서 보이는 오페라 하우스의 모습은 꽤나 웅장했는데 가까이 가보니 때가 묻었다고 해야 하나 먼지라고 해야 하나 다소 얼룩덜룩한 모습에 멀리서 본 모습만 마음에 담아 가기로 했다.


돌아오는 길에 퀸 빅토리아 빌딩에서 쇼핑을 하던 중 한 스포츠웨어 브랜드에서 재미있는 직원을 마주쳤다. 동남아에서 온 듯한 청년이었는데 본인을 최강창민과 닮은 꼴이라며 소개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언뜻 둘의 모습이 겹쳐보여 나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자세히 보니 그렇게까지 닮은 건 아니었지만 이목구비가 시원시원한 게 잘 생긴 건 확실했다. 셀럽을 마주친 기분으로 겸사겸사 함께 기념사진을 남겼다.

화질이 구려서 미안...

짧은 여행을 끝내고 멜버른으로 돌아온 후, 몇 개월도 되지 않아 결국 참지 못하고 캐논 500D를 구매해 오랜시간 사용했다. 결과적으로 카메라와 아이팟까지 모두 손에 넣은 풀소유를 만끽하게 되었는데 일부러 그런 큰 그림을 그린 건 절대 아니었다… 다행이 새로운 카메라는 마지막까지 잃어버리지 않고 한국으로 돌아와 중고로 판매했다. 7년 정도가 지난 후 캐논 80D를 구매했고, 단 5개월 정도만 사용했다. 내 카메라 수난사의 대단원의 막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이야기는 80D와 함께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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