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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다리 준 Jun 26. 2022

카메라 수난사 Part4-1 - 대단원의 막!

이겠지...?

1, 2, 3편을 먼저 만나보세요.

[카메라 수난사 Part1 - 추격자 https://brunch.co.kr/@jzjz0219/28]

[카메라 수난사 Part2 - 카메라는 돌아오는 거야! https://brunch.co.kr/@jzjz0219/29]

[카메라 수난사 Part3 - 무소유 대신 풀소유 https://brunch.co.kr/@jzjz0219/30]


이 정도면 데자뷰 아닐까?

카메라가 없다.

그것도 가방과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다른 캐리어와 짐은 아무 문제없이 차 트렁크에 있는데, 이건 도대체 무슨 일이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트렁크는 물론 시트 밑까지 싹 뒤져 보았다. 호텔 앞에서 바르셀로나 엘프라트 공항으로 엑셀을 밟았다.


직장인이 된 뒤로 10일 정도 여행을 떠난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신혼여행이었다. 스페인만 가려던 본래 계획을 수정해서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4일, 스페인에서 5일을 지내기로 했다. 리스본에서의 여정은 거의 완벽했다. 음식은 다소 짠맛이 강했지만 먹을만했고, 파두 공연장에서 경험한 파디스트들의 라이브는 온몸에 전율을 선사했다. 세계의 끝이라는 호카 곶에도 다녀왔다. 먹을 것, 볼 것, 즐길 것까지 하나 빠질 것 없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4일은 너무 짧았다. 며칠 더 머무를 걸 하는 생각이 컸지만 이미 항공기, 호텔 등이 다 예약되어 있어 바르셀로나로 넘어가야만 했다. 오후 8시 45분, 바르셀로나행 항공기에 탑승했다. 엘프라트 공항에 도착하니 저녁 12시가 다 되었다. 수속을 마치고 SixT에서 예약한 렌터카를 수령하기 위해 리셉션으로 갔다. 저녁 12시가 넘어서인지 공항은 꽤나 한산했다. 화려하게 불을 켜놓고 여행객을 유혹해야 할 면세점들도 문을 닫아 어둡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리셉션에는 남자 직원 하나, 여자 직원 하나가 우리를 반갑게 맞이했다. 익숙한 듯 각종 서류 절차를 설명하고 신원 확인을 완료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차 키를 받아 들고 렌터카가 있는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렌터카만 있는 주차장임에도 상당히 넓었다. 겨우겨우 차를 찾았다. 직원이 나와서 확인을 할 만한데 아무도 없길래 혹시나 싶어 핸드폰으로 차 외관을 촬영했다. 여기저기 긁힌 자국이 꽤 있어서 안 찍어놓았으면 자칫 덤터기를 쓸 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 차를 촬영하고 있는데 그때서야 렌터카 직원이 다가왔다. 야광 안전벨트를 두르고 급하게 뛰어 온 남자 직원은 영어는 그다지 못하는지 짧은 영어와 스페인어로 자신이 차를 점검해주겠다며 확인하기 시작했다. 차 외관을 한 번 쭉 둘러보더니 내부 운전석까지 체크했다. 차량 보닛을 열어 확인하던 직원이 우리를 불러서 배터리 문제로 차량이 서거나 시동이 걸리지 않을 때에는 여기를 돌려주라며 알려주고 보닛을 닫았다. 모든 점검이 끝나고 우리는 호텔로 차를 몰았다. 새벽 1시가 다 되어서인지 호텔까지 가는 길에는 차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 호텔에 거의 도착해서야 드문드문 이동하는 차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도착했다! 라고 생각했는데...

내비게이션이 가리키는 일방통행 길을 따라 호텔 주위를 한 바퀴 돌아 정문에 주차했다. 직원들이 나와 짐을 내려줬다. 트렁크에서 캐리어를 하나하나 내렸는데 내 카메라 가방이 없다. 뒷좌석에 놓은 건 아닌지 살펴봤지만 없다. 식은땀이 났다. 렌터카 주차장에서 짐을 실을 때 바닥에 놓은 채로 잊어버리고 왔던가. 일단 있는 짐은 호텔 안으로 옮겼다. 새색시는 먼저 입실하게 한 다음, 엘프라트 공항으로 차를 몰았다.


공항으로 가는 길은 차 한 대 보이지 않았다. 미친 듯이 밟았다. 눈으로는 도로를 보고 있었지만 머릿속에는 오만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먼저 가방에 무엇이 들었는지 되뇌어 보았다. 촬영할 장비만도 카메라에 드론, 아이폰, 삼각대 등으로 가득했다. 카메라는 산지 1년도 안되었고, 드론은 이제 2개월밖에 안되었다. 또 뭐가 있었지. 지갑이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까. 신혼여행 자금 대부분은 각시가 가지고 있었다. 나는 비상금으로 30만원 정도만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사실 그게 다가 아니었다. 행여 뭐라도 사고 싶은 게 있을까 돈이 부족하지는 않을까 싶어 100만원 정도를 따로 챙겨 왔다. 거기에 각종 신용카드들이 들어 있었는데 그 카드들도 다 정지시키려면 그것도 일이었다.


또 뭐가 있더라 머릿속에서 가방을 뒤져보다가 여권이 떠올랐다. 각종 기기도 기기지만 여권에 생각이 미치자 머리가 지끈했다. 행여 가방을 못 찾는다면 여권을 재발급받아야 했다. 그런데 스페인에서 여권을 재발급받을 수 있는 대사관은 마드리드에만 있다. 바르셀로나에서 약 650킬로미터. 차로는 9시간 넘게 가야 하는 길이다. 신혼여행이라고 날마다 계획을 짜 놓았다. 세세하게 어디를 갈지 어떤 걸 볼지 무엇을 먹을지 열심히 알아보았다. 마드리드까지 다녀온다면 적어도 이틀은 시간을 버리게 된다. 오랜 시간 비행기를 타고 왔는데, 그렇게 시간을 버려야 할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가방을 잃어버린 일 자체보다도 더 마음이 괴로웠다.


드디어 공항이 눈에 들어왔다. 헤매는 일 없이 렌터카가 주차되어 있던 자리를 찾았다. 차를 세우고 주변을 샅샅이 뒤져봤다. 없다. 실낱같던 희망이 꺼지는 것 같았다. 어떻게 할지 고민하다 일단 렌터카 리셉션으로 향했다. 여전히 남자 직원 하나, 여자 직원 하나가 피곤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직원들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렌터카를 수령한 것, 직원이 와서 확인해준 것, 가방이 사라진 것 등. 남자 직원은 갑자기 표정이 어두워지더니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우리는 12시가 넘으면 주차장에 직원이 없습니다." 난 이게 무슨 말인가 했다. 직원이 와서 체크해줬는데 직원이 오지 않는다니. 그럼 내가 본 그 직원은 뭐란 말인가. 내가 말을 잃고 가만히 있자 여자 직원이 뭔가 기억이 났다는 듯 입을 열었다. “내가 들었던 이야기와 같은 수법인 거 같은데, 작년에도 한 번인가 두 번인가 이런 일이 있었던 것 같아요. 우리가 새벽에는 차량 관리 요원을 두지 않기 때문에 그걸 이용해서 관광객들을 터는 일이 있었어요. 일 년에 한두 번 있는 일이라 저희도 잘 기억을 하진 못해요.” 내가 그 한두 번의 한 번이라는 사실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래도 여자 직원은 혹시 모르니 공항 내 분실물 센터와 경찰에게 가 보라며 위치를 알려주었다.


마음이 급한 건지 공항이 넓은 건지, 공항 내 경찰서까지 가는데 꽤나 시간이 걸렸다. 벨을 누르고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에 들어가니 살짝 벗겨진 회색 빛깔 머리에, 콧수염을 기른 풍채 좋은 경찰 아저씨가 접수를 받고 있었다. 그 새벽에 일을 당한 건 나뿐인 건지 다른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경찰에게도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경찰은 덤덤한 표정으로 경위서를 작성하라며 서류를 전달해주고 보험 처리를 위한 분실신고서를 전달해주었다. 서류를 작성하고 한국으로 전화하여 카드를 정지시켰다. 그렇게 1시간여를 보냈다. 작성한 서류들을 확인하던 경찰이 갑자기 이런 일이 종종 벌어진다며 말을 건넸다.


경찰로써 또 바르셀로나 사람으로서 기분 좋게 관광 온 여행자에게 일어난 불운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걸까. “변명 같이 들리겠지만 난민들이 들어오면서 이런 일이 좀 더 많아졌어요. 범인을 잡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잡고 나서보면 공항에서 이런 일을 벌이는 건 거의 다 난민들이더라고요. 당신이 물건들을 잃어버리고 여행을 망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나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그래도 바르셀로나를 너무 미워하진 말아요. 여기는 좋은 곳이고 좋은 사람이 많습니다. 이런 일이 벌어진 건 미안하게 생각해요.” 듣고 나니 도난 당시 들었던 말이 제대로 된 스페인어가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다. 당시에 그걸 깨닫지 못했던 나를 자책하자. 오히려 다행이란다. 거기서 이상함을 느껴서 다툼이 일어났다면 물건만 분실하는 게 아니라 사람이 다쳤을지도 모른다고.


좋게 말하면 담담하고 나쁘게 말하면 딱딱해 보였던 얼굴에서 미안함이 섞인 위로를 듣자 마음속에 넘치던 분노가 조금 사그라들었다. 그의 말이 스페인을 떠날 때까지 넘치는 화로 여행을 망치지 않게 하는데 한몫을 한 것 같다.

서류 작업을 모두 마치고 호텔로 돌아왔다. 몸도 마음도 피곤했다. 마드리드로 가려면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야만 했다. 복잡한 고민은 잠시 접어두고 잠을 청했다.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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