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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다리 준 Jul 07. 2022

님아 그 택시를 타지 마오

태즈매니아 스토리 Part2

빨갛게 빛나는 택시 미터기 숫자가 계속해서 올라갔다. 한 자리에서 춤추던 숫자가 금세 두 자리로 올라서더니 결국 3자리를 수를 돌파했다. 호주 택시 요금이 보통이 아니라는 건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미터기 숫자가 올라가는 속도를 눈으로 보고 있노라니 경악을 금할 수가 없었다. 1시간 여를 신나게 달리던 택시가 선착장에 들어서며 속도를 줄였다.


호주에서 타지 말아야 할 차가 2대 있는데, 하나는 구급차요 다른 하나는 택시라고 했다. 워킹 홀리데이나 유학생 신분으로 온 친구들은 진담 반 농담 반으로 내가 쓰러진다면 온 몸에 No ambulance(구급차 안 타요)라고 써달라고 했다. 그만큼 비싸다는 뜻인데, 실제로 구급차에 타본 것은 아니라서 얼마나 비싼지 눈으로 본 적은 없다. 그저 풍문으로 들었을 뿐이지만 구급차를 타고 실려가면 수백만 원이 청구되는 건 일도 아니라는 말이 농담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택시비는 일본이나 몇몇 국가와 비교하면 소스라치게 놀랄 정도는 아닐 수 있다. 하지만 한국 사람에게 호주의 택시비는 가볍게 여길만한 수준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여행지에서 택시를 탈 수밖에 없던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태즈매니아 여행을 온 첫날, 숙소에 짐을 놓고 나오자마자 들른 곳이 호바트 시내에 있는 태즈매니안 관광안내소(Tasmanian Travel & Information Centre)였다. 태즈매니아에 대한 정보가 다소 적은 건 둘째 치더라도 갑자기 여행을 가자 라는 생각만으로 아무 계획 없이 비행기표를 질러버린 탓에 자세하게 관광 자료를 찾을 시간도 별로 없었다. 멜버른의 페더레이션 스퀘어(Federation Square)에 있는 관광안내소는 자료도 방대하고 각종 패키지 투어나 시내 관광에 대한 정보가 많았다. 직원들도 여행자를 위한 정보에 박식했고 무엇보다 친절하고 꼼꼼했다. 그래서 더 계획 없이 태즈매니아로 날아간 것일 수도 있다. 다행히 호바트의 관광안내소도 좋은 의미에서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규모는 멜버른에 비하면 작은 편이었지만 각종 여행 정보 책자와 전단지가 벽면에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정보로 가득한 벽면을 하나둘 훑어보다 꽤나 매력적으로 보이는 일일 패키지 투어 2가지를 발견했다.

하얀 백사장의 모양이 와인 글라스와 꼭 닮았다.

하나는 크루즈에 탑승해 태즈만 아일랜드(Tasman Island) 지역의 이국적인 야생 환경을 감상하고 유네스코 문화유산인 포트 아서(Port Auther)를 둘러보고 오는 투어였고, 다른 하나는 와인 글라스 베이(Wine Glass Bay)라는 해변을 보고 오는 투어였는데 나중에 보니 이 와인 글라스 베이는 2013년에 CNN에서 선정하는 세계 최고의 해변가 100에서 7위에 뽑혔더랬다.

두 개 패키지 모두 하루 안에 끝나는 일정이라 태즈만 아일랜드와 포트 아서를 돌아보는 일정은 둘째 날로 정하고 와인 글라스 베이는 넷째 날로 예약했다.


이튿날, 픽업해주러 온다는 미니밴을 기다렸다. 아침 8시쯤 픽업하러 온다고 해서 두리번두리번거렸는데 한참이 지나도록 감감무소식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건가, 사기를 당한 건가 싶었지만 설마 관광안내소에서 소개해준 패키지 투어가 사기는 아니겠지 하며 기다렸다. 의심이 깊어지려는 찰나에 투어 회사에서 전화가 왔다.

안 그래도 현지인과 대화하는 게 쉽지는 않은데 뭐가 그리 급한지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냈다. 길게 뭐라고 설명을 하긴 했는데 요는 제시간에 픽업을 해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벤에 문제가 있어 갈 수가 없으니 대신 콜택시를 불러 픽업을 해주겠다는 내용이었다. 크루즈를 타는 선착장까지 오면 그곳부터 벤을 타고 이동할 수 있으니 선착장이 있는 이글 호크 넥(Eaglehawk Neck)까지만 오라는 말을 듣고 전화를 끊었다. 이미 콜택시가 오고 있었던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지붕 위 표시등에 UNITED TAXIS라고 적힌 콜택시가 도착했다.

게임을 시작하지...

그런데 막상 택시를 타고나니 택시비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정작 택시비를 어떻게 하겠다는 말을 듣지 못한 것이다. 택시비 전액을 내야 하나, 반을 내야 하나, 얼마 되지도 않는 패키지 비용에 택시비까지 내주지는 않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들면서 자연스레 택시기의 미터기에 눈이 고정되기 시작했다. 호주 택시 미터기에는 말도 달리지 않는데 뭐 저렇게 숫자가 자비 없이 올라가는지… 숫자가 세 자리에 들어서자 약간 자포자기하는 심정이 되었다. 출발한 지 1시간쯤 지났을 즈음 택시가 목적지인 선착장으로 들어섰다. 택시비에 대해 물어보는데 뜻밖에도 패키지를 운영하는 업체에서 전액 지불한다는 것이다.

사실 상당히 놀랐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당시 패키지 비용이 100 달러 남짓이었는데 택시비가 거의 150 달러 이상 나온 것으로 기억한다. 어떻게 봐도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금액일 텐데 당연하다는 듯이 손해를 감수한 업체가 새삼 대단해 보였다. 하루 짜리 패키지라 업체 이름은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사진을 뒤져보다 보니 패키지가 끝나고 호바트로 돌아왔을 때 찍어 놓은 벤 사진이 있었다. 벤 옆에 sealife experience라고 업체 이름이 붙어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업체의 홈페이지를 들어가 봤는데 도메인이 팔려있었다. 아쉽게도 문을 닫은 듯했다.

타즈매니아주 다도해 국립공원

크루즈를 타고 나서부터는 모든 일정이 일사천리처럼 이루어졌다. 바다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장엄하고 일순 기품이 느껴지기도 했다. 사실 어린 시절 방문했던 다도해 해상 국립공원이 떠오르기도 했지만… 큰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야생동물을 관찰할 수 있다는 점이랄까. 펭귄이나 바다표범, 운이 좋으면 돌고래까지 볼 수 있다고 하니 한껏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쉽게 돌고래까지 보지는 못했지만 펭귄과 바다표범을 보기는 했다. 봤는데… 보기는 했는데 너무 멀었다. 콘서트장으로 치면 무대가 보이긴 하지만 나의 록스타는 새끼손톱만 하게 보일랑 말랑 할 정도의 거리랄까?

물개가 보인다면 당신의 시력은 2.0

애매한 거리에 다소 실망할 때쯤 슬슬 추위가 엄습했다. 처음에야 날도 선선한 듯하고 야생동물을 본다는 생각에 별 추위를 느끼지 못했지만 크루즈가 중간중간 속도를 내며 얼굴에 부딪히는 바람이 강해졌다. 그와 비례해서 몸의 온도도 급격하게 내려갔다. 오해의 소지가 있어 덧붙이지만 배의 명칭이 크루즈인 건 맞다. 그런데 럭셔리한 크루즈 선박을 생각했다면 그건 오해다. 약간 큰 모터보트 정도라고 생각하면 딱 적당한 수준이다. 그러다 보니 바람막이도 없이 거칠게 부딪혀오는 바람을 온몸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었다. 이제 그만 따뜻한 곳으로 좀 데려다 달라는 말이 턱 끝까지 차오를 때쯤에야 크루즈 여행은 끝이 났다.

크루즈라고 쓰고 모터보트라고 읽는다.

선착장부터 포트 아서까지는 벤으로 이동했다. 포트 아서는 감옥이라기보다는 작은 마을 같았다. 그만큼 부지가 넓었고 무엇보다 아름다웠다. 남겨진 유적지가 워낙 아름답게 관리되고 있다 보니 당시 수감자들의 고통이 어땠을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목가적인 삶을 살았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물론 아직 남아있던 당시의 감방 모습이나, 독방, 수감자들이 차고 다니던 쇠사슬 등 이곳이 죄수들이 지내던 곳이라는 것을 상기시키는 증거들을 보며 조금은 실감이 났지만.

여기가 한때 감옥이었음을 알려주는 듯한 방 번호.

아쉬운 점은 고스트 투어를 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물론 그런 투어가 있다는 것도 가서야 알았지만. 역사적으로 그 장소만이 주는 으스스한 느낌이 있나 보다. 포트 아서 고스트 투어(Port Arthur Ghost Tour)라고 해서 전문 가이드가 참가자들을 데리고 포트 아서를 돌아다니며 그 시작과 끝에 대하여 이야기해주는 프로그램이었다. 미리 알았으면 아마 근처에서 1박을 해서라도 신청했을지도 모르겠다. 짧은 여행이라 1박을 할 시간이 없어서 아쉬움만 남겨둔 채 떠나야 했다.


사람이 참으로 간사한 것이 출발할 때는 택시비 문제로 마음을 그렇게 졸였으면서 업체에서 지불한다는 점을 알자마자 돌아가는 길도 택시로 가면 참 좋겠다 하는 생각을 했다. 벤도 좋지만 편안하게 택시 뒷자리에 앉아 가고 싶기도 했고, 마음이 불편한 와중에도 택시가 꽤나 편했기 때문이다. 외제차라 그랬을까? 하하.


호바트 시티로 돌아오고 나서 생각해보니 이상했던 것이 패키지 투어라고 하긴 했지만 실상은 그냥 이동 수단에 불과하긴 했다. 가이드가 함께 다니며 설명해주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관광지 사이를 이동할 때 데려다주는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오히려 그게 좋았던 것 같다. 가이드를 따라다니며 정해진 코스로 돌아다니기만 하는 것보다는 자유롭게 원하는 곳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기웃거리는 것이 더 취향에 맞았나 보다.


당시 기억을 되살려보기 위해 비슷한 패키지가 있을까 싶어 검색해봤더니 Tasman Island Cruises([https://www.tasmancruises.com.au])라는 사이트를 찾았다.

당시에 경험했던 패키지 상품과 거의 동일한 듯 보였다. 언젠가 다시 보러 가고 싶다. 그때는 조금 더 가까이에서 동물들과 눈 맞출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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