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교육에는 좌나 우가 없다.

사람다운 삶을 위한 교육

by Dr Jang

말 그대로다.

며칠 전 후배와 이야기하다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선배는 전에는 우측을 이야기했는데 이번에는 좌측을 이야기하네요."

약간은 신기하다는 듯한 그의 말에 나는 이렇게 말했다.

"근데, 환경은 좌나 우가 없어."


말 그대로다.

이념이나 신념이라는 것은 세상을 해석하는 틀이다. 그 프레임은 경험에서 나왔던 이론이나 배움에서 나왔던 수많은 세상일을 이해하기 위해 만들어진 해석의 기준점이 된다. 중요한 것은 그런 틀이 나온 것은 좀 더 잘 살기 위한 노력의 결과라는 점이다. 그러나 20세기 일어난 좌우 진영의 대립은 잘 살기 위해 만들어진 이념의 틀이 오히려 인간 삶을 망가뜨리는 역할을 했다. 이념의 대립으로 일어난 폭력은 수많은 사람들을 희생시켰다. 물론 1,2차 세계대전은 제국들의 경제적 이익 다툼에 의해 일어난 극단적인 폭력이지만 연합국은 물론이고 독일조차도 자신들이 옳다는 이념을 만들어 국민들의 전쟁 의지를 고취시켰다.


환경문제는 따지고 보면 인간 활동의 결과다.

인간 활동 대부분이 먹고사는 문제(=경제 활동)라고 본다면 그 사람이 속한 사회의 주된 이념체계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환경문제도 인간 사회 구조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환경문제를 접근하면 사회 구조의 개선의 환경문제의 해결이라는 답을 도출해 낼 수 있다.

하지만 사회 구조가 지극히 평등하고 자유롭고 이상적인 사회라고 해서 환경문제가 일어나지 않을까?라는 가정에는 의문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사회 구조라는 것은 인간 관계성에 관한 문제로 만일 모든 평등한 사람들이 직접 민주주의 과정을 거쳐 자연 자원을 수탈한다고 동의하여 모두가 잘 사는 사회를 이룬다는 의제가 결정된다면 어떻게 될까?(물론 그런 사회에서 이런 결정을 하지 않을 것이지만)


이 문제는 결국 인간이 자연에 종속되어 살며 자연 생태계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기에 자기 멋대로 생각하는 경향성과 연결되어 있으며 이념이라는 것이 자연 그 자체와는 아무런 연관성을 가지지 못한다는 것을 말해 준다.

다시 돌아가서 보면 인간이 자연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좌나 우라는 이념이 결코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다. 오히려 이런 이념보다는 각각의 인간을 중심에 두고 어떻게 하면 인간이 저지른 기후위기라는 역사적인 실수에서 살아남을까를 고민해야 한다. 늘 그랬듯 이런 과정 속에서 인간들은 아마도 살아남기 위해 다른 생물들이 보기에 온갖 구질구질한 노력을 무척이나 경건한 것처럼 할 것이다. 어쨌든 이런 움직임 속에서 문제 해결의 노력은 계속되어야 하며 무엇이 문제해결이냐는 것에 대해 또다시 생각들이 충돌할 것이다. 창밖에서 열심히 울고 있는 매미와는 전혀 상관없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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