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환경교육 워크숍에서 한 강사의 이야기가 귀에 들어왔다.
강사는 자신이 환경교육을 하면서 어려웠던 점을 이야기하면서 환경교육 수업 준비가 녹록지 않음을 말했다.
비교적 최근에 환경교육을 열심히 하기로 마음먹은 다른 교사의 이야기도 전날 워크숍에서 들은 바가 있어 옆에 있는 선배 교사와 잠깐 나눴다. 결국 떠오는 낱말은 '지구력'이었다.
환경이라는 것은 이제 누구나 관심을 가지는 분야다.
환경이 중요하다는 것은 이젠 상식에 속하고 있고 다양한 방법으로 환경을 지켜 미래를 도모하자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이런 환경의 중요성에 맞춰 환경교육가들도 열심히 미래 세대에게 환경을 가르쳤다.
하지만 십수 년 넘게 환경교육계를 본 결과, 지구력 있게 환경교육을 끝까지 하는 이는 많지 않다.
왜 그럴까?
한 가지 에피소드가 있다.
십수 년 전 환경교육 학회에 가면 늘 참석하던 식품과 교수님이 계셨다.
잘은 몰라도 진정으로 환경을 사랑하여 노래도 지어 부르고 진짜 생태적인 삶을 사시는 분 같았다.
한 번은 그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머니께서 아들이 늘 헌 옷만 입고 있는 것을 안타까워하시는 것 같아요.
시간이 오래되어 자세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후에 뵙게 되지는 못했다.
짐작하건 데 환경에 대한 열정만큼이나 지구력이 뒷받침되질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환경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열정적으로 자신이 깨닫게 된 점을 아이들에게 알려준다. 진정으로 열정적인 모습이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면 많은 이들이 나가떨어진다. 가장 큰 원인은 혼자서 그 많은 것을 준비하려니 할 때마다 힘이 들었고 나중에는 지쳐버린다는 것이다.
인간의 인식을 바꾼다는 것은 지극히 힘들뿐더러 교육을 통해서 그런 일을 하려면 어마어마한 노력이 필요하다. 하물며 환경에서 요구하는 생태적 삶은 현재 삶의 희생과 고통을 요구한다. 몇 번 실천해 보면 생태적인 삶이 어렵다는 것은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개인의 한계이며 개인에게만 요구해서는 안된다는 것인데 이것이 환경교육가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환경을 독립적으로 다가가다 보면 오히려 실제 삶과 떨어진 나만의 성을 짓게 된다.
예를 들어 입시에 생태적 접근이 어떤 이점이 있을까? 핫플레이스를 찾는 젊은이들의 모습은 환경과 어떻게 조화되어야 하며 프로야구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환경은 어떻게 다가가야 할까?
결국, 실제 삶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면 지친다. 늘 반환경적인 것과 싸우다 보면 초반에는 열정을 가지다 풀썩 주저앉게 된다.
해결책은? 글쎄다. 좀 거칠게 표현하자면, 환경운동가가 아니라 삶을 사는 아이들의 능력을 올려주는 교육에 집중한다면 환경은 정말 좋은 교육 소재다. 그런 환경교육이 된다면 아이들이 행복해지게 되고 역량이 올라가게 되며 환경에 대한 고려가 전 사회에 퍼질 것이다.
아무튼 지구력이 필요하다. 그렇게 복잡한데 단거리 경주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