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를 대부분 떠나보내고, 아, 전부는 아니다. 아이들 집으로 들고 간 녀석들 중 아직은 살아 있는 녀석도 있으니까. 무를 열심히 키우고 있다.
이름도 붙이고 날이 추우니 실내에서 키우니 모종 포트에서 힘겹게 살던 녀석들이 기가 살아서 무럭무럭 자란다. 근데 어쩌나, 겨울 방학 전까지만 주어진 기간이다. 방학이면 교실의 모든 전기를 꺼야 하니 식물등도 켤 수가 없다. 과연 그때까지 얼마나 자랄지 궁금하기도 하지만 저렇게 애써 자라고 있는 모습을 보면 애처롭기도 하다.
그런데 나의 이런 맘과는 다르게 아이들 입장에서 좀 심심한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동물처럼 움직임이 있는 것도 아니고 화초처럼 꽃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 단지 잎이 자라는 모습을 보는 건데 그게 드라마틱하지는 않다. 무라는 것이 땅속에 묻혀 부분이니 고추나 토마토처럼 크는 모습을 볼 수도 없다.
아침마다 들여다보는 아이들 중에는 좀 지루한 면을 느낀 녀석들도 있었을 것이다.
무를 살피는 데 화분 주위에 약간의 흙이 떨어져 있다.
바람이 불어서 그런가 싶었는데 그게 아니다. 가끔 창문을 열어 두면 센 바람이 불어 흙이 날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근데 그건 아니었다.
흙이 무 이파리를 덮고 있다.
이건...!
하하, 귀엽다. 심심하니까 흙으로 자기 무에게 장난을 친 것이다.
올해 우리 반 아이들은 수더분하여 그냥 보고만 있는 게 용하다 싶었는 데 그 뻗쳐 나오는 본능을 잠시 누르지 못한 모양이다.
생각해 보면 흙장난이야 말로 별 도구 없이 어릴 적 손쉽게 할 수 있는 놀이였다. 흙이 더럽다 혹은 벌레가 많다는 위생교육의 오개념으로 인해 아이들은 흙에 대해 부정적인 느낌을 가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은 세대를 뛰어넘어 흙장난을 한다. 아침에 출근하다 보면 전날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흙을 가지고 논 흔적이 보인다. 언젠가 한 번은 운동장 한가운데를 판 흔적을 본 적이 있다. 마침 그곳은 운동장에 물을 뿌리는 살수장치가 있는 곳이다. 아마도 아이들은 지구를 뚫을 심산으로 그 주변을 신나게 파서 보물이 있나 확인한 모양이었다.
화분 주변을 정리하고 흙에 반쯤 묻힌 무잎을 떨어내며 픽 웃음이 났다.
교실이라는 공간에서 흙이라는 본능을 자극하는 장난감을 보고 용케도 잘 참았다 싶었다.
자신들이 가꾸는 무가 말을 걸고 움직인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도 이런 상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