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DGs 2목표에 대한 단상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좋아도 배고프면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인생을 잘 사는 여러 가지 조건 중에 배고픔 극복이라면 지금 우리나라의 보통 사람들로선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아프리카나 다른 제3세계 지역의 배고픔은 그들의 무지나 게으름의 문제이지 우리의 문제는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고요.
하지만 우리도 불로 50~60년 전에는 배고픔이 있었습니다. 미국에서 주는 구호물자를 반겼고 밀가루 음식들을 개발하여 만들어 먹었습니다. 예전 우리나라 최고의 외식 메뉴인 짜장면은 바로 이러한 시대에 유행한 음식이죠.
지금이야 짜장면은 짬뽕에 밀려 매운 것을 먹지 못하는 아이들 메뉴이지만 한 때는 대단한 음식이었습니다.
우리나라가 배고픔을 면한 것은 사실, 경제적인 성장도 있었지만 농업의 발달과 함께 수입 곡물이 대량으로 들어오면서입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통계로 본 세계 속의 한국 농업’에 따르면 최근 3개년(2016/17~2018/19) 평균 전 세계 곡물자급률은 100.8%이며, 한국은 최하위 수준인 22.5%에 그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호주의 곡물자급률은 251.7%, 캐나다 177.4%, 미국 124.7%로 세계 평균을 웃돌고 있으며 중국과 일본은 각각 98.9%, 26.7%로 세계 평균보다 낮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 (농축산 신문, 2020. 6. 19)
따라서 우리나라는 언제든지 식량안보가 위협받을 수 있습니다. 식량을 수출하는 나라들은 어떠한 위기가 생기면 자국 위주로 식량정책을 운용할 것이며 이는 식량을 주로 수입하는 우리나라와 같은 처지의 국가에게는 치명적인 일이죠.
여기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식량안보나 이런 문제는 아닙니다.
인생을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배고픔이 없어야 하는 데 우리나라는 절대적인 빈곤은 거의 사라졌습니다. 정말로 배가 고파서 괴로운 사람은 없다는 뜻이죠. 오히려 너무 먹어서 비만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으니까요.
다만, 상대적으로 배가 고픈 것은 문제입니다.
상대적 배고픔의 사회 구조적 문제는 관심을 가지고 차차 바꿔나가야 합니다.
문제는 인생에 있어 가장 힘든 부분이 바로 남과의 비교인 것이죠. 상대적 배고픔입니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입니다. 사회 문화적인 영향을 많이 받고 이러한 영향이 신체적인 부분에까지 영향을 받는 존재입니다. 사회적인 동물은 그래서 다른 존재와 비교를 합니다. 특히 절대적인 배고픔이 사라지면 그 순간부터 비교를 합니다. 이는 영장류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도 드러납니다. 배고픈 순간에 받은 오이는 맛나게 먹지만 오이보다 더 맛있는 것을 먹는 동료를 본 원숭이가 자신이 받은 오이를 내동댕이치는 모습은 상대적 배고픔의 좋은 예입니다.
인생을 잘 살려면 상대적 배고픔을 조심해야 합니다. 상대적인 배고픔을 느끼는 순간 사람은 자신이 가진 것이 초라하게 보이며 상대방이 가진 것이 좋아 보입니다. 그것은 100억 부자가 1000억 부자를 부러워하는 것과 같은 것이죠. 자신의 가진 것을 존중하며 목표를 향해 나가는 것과는 다른 삶입니다. 상대적인 배고픔을 극복하려고 하면 욕심이 생기고 욕심은 지혜의 눈을 가려 힘든 구덩이로 빠지게 할 수 있습니다.
인생을 잘 살려면 많은 것이 필요합니다. 앞으로도 하나씩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