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조금은 지났다.
여러 번의 실망으로 인해 더 이상 병원을 알아보기 어려웠다.
무엇보다 명의라고 소문난 사람은 대략 찾아봤던 것 같았다.
그러다 한 가지 시술 방법을 알게 되었다.
우연히 검색하다 알게 된 시술법이었다. 이름은 pipeline stent.
말처럼 파이프 모양의 스텐트를 집어넣어 혈류 방향을 조절하는 것이었다. 아직은 사례수가 많지 않았다. 아마 몇 년이 지나 사례수가 많아지면 우리도 해당될 수 있겠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알아보는 것이 좀 소홀해졌다. 무엇보다 여러 가지 자료를 찾아보다 보니 뇌동맥류의 연간 발병률 즉, 혈관이 터질 수 있는 확률이 1~2%였다. 단순하게 생각해도 10년간 누적시켜도 30%가 채 안될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동맥류의 사이즈별로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수술 실패율도 그쯤 되니 셈셈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시간은 갔다.
얼마간 시간이 지나니 적응이 되어서 그런지 조금씩 병을 잊게 되었다.
딱히 증세가 나타나지 않는 병이니 일상생활에는 문제가 없었다.
환자 자신도 그러했던 것 같다.
직장에서 팀장으로도 일을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허나 운명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어느 날 친구들과 배구를 배우고 있던 오후였다. 갑자가 체육관으로 체육관 관계자가 뛰어 와서 나를 찾았다.
모처럼 신나게 운동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그런 방해가 달갑지 않았지만 전해받은 내용은 뜻밖이었다.
‘사모님이 지금 많이 편찮으셔서 병원에 실려갔다고 합니다.’
펄쩍 뛰었다. 그리고 차를 몰고 가면서 생각했다. 그 순간이 왔구나, 어떡해야 하지.. 침착하자.. 등등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하지만 보호자는 침착함을 잃지 말아야 한다. 몇 번의 큰일을 겪으며 느낀 바였다. 보호자의 판단이 중요한 것이다.
응급실에 도착해 보니 장인 장모, 아이들도 와 있었다.
큰 아이는 당시 다리 깁스를 하고 있었는데 아내가 119에 의해 병원에 실려올 당시 직장 동료들이 쥐어준 과자를 들고 있었다. 엄마가 아픈 비운의 동정 대상이 된 것이다.
아내를 만나고 상황을 들어보니 일하던 중 갑작스럽게 극심한 어지러움증이 왔고 이어서 구토를 했다는 것이다. 아내의 병을 아는 직장에서는 119를 불렀고 직장 근처 이 병원으로 온 것이었다.
119에서는 저혈당 쇼크가 의심된다며 입에 사탕을 물려 놓았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그때 아내는 의식이 또렷했는데 자꾸 사탕을 먹여 불편했다고 했다.
신경외과 의사를 만났다.
아내의 병명을 이야기하고 여러 가지를 물어봤지만 명쾌한 대답을 듣지 못했다.
의사가 생각하는 병명도 없었다.
일단 MRI를 찍어보자고 했다.
결과는 금방 나왔다. 근데 해독을 해야 할 아까 만난 신경외과 의사는 퇴근하고 없었다.
대신 응급의학과 의사를 만났는데 신경질적이었다.
자신이 보기에는 증상이 나타난 것이라고 했다.
동맥류가 커졌는지 물어봤지만 별 다른 말이 없었다. 아마도 판독에 자신이 없었거나 잘 몰랐을 것이다.
어쨌든 결론은 큰 병원에 가라는 말이었다. 중소규모 병원에서 일과 시간이 지난 다음 이런 환자는 별 뾰족한 처치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처음 조영술을 한 Y대 병원을 먼저 떠 올렸지만 그들의 수준이 좀 의심되었다.
판단은 빠르고 정확해야 한다. 이건 보호자의 미덕이다. 내가 느끼기엔 그렇다.
서울 Y 병원으로 가기로 했다. 지난번 상담받은 것도 있고 수술도 한 번 생각해 본 병원이라 그래도 가장 만족할 만한 결과를 보여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구급차를 불렀다. 이런 환자를 이송하는 경우에는 사설 구급차를 이용한다고 했다. 이후 난 사설 구급차를 적대시하는 버릇을 버렸다. 급한 경우도 있는 것이다.
서울까지는 현금 40만 원이라고 했다. 간호사 인지 간호조무사인지 한 사람이 동승했다. 아내는 눈을 가만히 감고 있었다.
거짓말하지 않고 서울을 두 시간 몇 분 만에 도착했다. 사이렌을 울리며 고속도로를 미친 듯 달렸다. 간호사는 몇 번 혈압을 재어보았다. 중간에 한 번 기름을 잠깐 넣고는 서울까지 논스톱으로 갔다.
도착하기 전 생각했다. 혹시 난장판인 응급실을 만나거나 진료를 거부당하면 어떡하지?
예전 어머니와 아버지가 편찮으실 때 그런 응급실을 만났다. 지옥 같았다. 그것이 반복될까 두려웠다.
구급차 기사에게 돈을 쥐어 주었다. 잘 치료하시길 바란다는 짧은 인사와 함께 그는 뒤돌아 갔다. 어쨌든 그에게 지불한 돈이 아깝다는 생각을 들지 않았다.
생각보다 응급실 내부는 조용했다.
직원이 몇 가지를 물었다. 병원 진료 기록이 있으니 그렇게 번거롭지 않았다. 증상만 이야기하고 자리로 이동했다.
조금 있으니 신경외과 전공의가 왔다.
몇 가지 물어보고 상태를 살펴봤다. 주된 물음은 이러했다.
질문1. 세상이 한쪽으로 도는 것처럼 어지러운지 혹은 전체적으로 어지러운지
질문2. 사물이 도는 것 같은지 내가 빙빙 도는 것 같은지
둘 다 어려운 질문이었다.
이후에 온 각과의 전공의들도 비슷한 질문을 했다.
신경외과에서는 자신들의 소관이 아니라고 했다. 신경과를 불러준다고 했다.
좀 있으려니 신경과 전공의가 왔다.
그도 몇 가지 질문을 하더니 자신들보다는 이비인후과에 의뢰하는 게 맞다고 했다.
왜 머리 쪽이 아니냐고 하니 일단 의식 저하가 없다고 했다.
머리(뇌)에 이상이 생기면 의식이 저하되는 데 내가 봐도 아내의 의식을 또렷했다.
그러던 중 맞은편에 정말로 심각해 보이는 남자 환자가 들어왔다. 비교적 조용하던 응급실은 갑자기 분주해졌다. 그래도 혼란스럽지는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비인후과 전공의가 왔다.
그는 여기 저리 보더니 자신들의 진료 분야라고 했다. 조금 있으면 아침 진료가 시작되니 교수님 진료를 받는 게 나을 거라고 했다.
어느새 밤이 지나 새벽이었다.
아침이 되자 응급실에서 비교적 먼 이비인후과 진료실로 실려 갔다.
교수는 이 정도면 지방에서도 가능할 것 같은 데 왜 왔냐고 했다. 난 이렇게 선택한 이유를 이야기하며 동맥류 이야기도 덧붙였다.
눈동자를 관찰하며 어지러움증 검사를 했다.
모니터로 보는 아내의 눈동자는 고개를 좌우로 돌리니 왔다 갔다 하며 눈알이 제자리를 찾지 못했다. 마치 예전 코미디어 이경규가 눈동자 돌리기를 하는 듯한 반응이었다.
진단명은 간단히 나왔다.
전정신경염
회전과 균형을 담당하는 전정기관에서 뇌로 연결되는 신경에 염증이 생긴 거라 했다. 대량의 스테로이드를 쓰고 안정을 취하면 낫는다고 했다. 단, 염증이 생긴 쪽은 100% 회복은 되지 않는다고 했다.
다행이었다. 머리가 아니었다.
이후 병원 생활은 순조롭게 이어졌다. 일주일 좀 지나 퇴원했다.
약간의 어지러움증은 남아있었지만 그래도 회복을 잘했다.
이러한 어지러움증을 대상으로 하는 운동이 있는 데 회복이 잘 되다 보니 처음에는 잘하다 곧 그만두었다. 가끔 아내는 어지럽다고 하지만 원인을 아니까 별로 두렵지는 않았다.
그렇게 소동을 겪고 난 후 뇌동맥류는 서서히 잊혀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