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 끝에 B병원을 다시 갔다.
의사는 담담했다. 고민한 것을 알고 있었다는 눈치다.
어떻게 아느냐고 물어보니 한 번 진료 보고 한참 있다 온 것이 그 증거라고 했다.
S병원에서 찍은 조영술을 보더니만 잘 찍었다고 하면서 이리저리 돌려봤다.
궁금하여 물어봤다.
“혹시 시술이 가능할까요?”
그의 대답은 약간은 퉁명스러운 뉘앙스를 띈 단순한 대답이었다.
“ 가능했다면 S 병원 교수님이 하셨겠죠.”
별 뾰족이 대답할 말이 없었다.
맘속으로는 이곳에서 수술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부드러운 말투로 잘 왔다고 이야기하며 수술의 방법에 대해 저번에 이야기한 것처럼 대체적으로 이야기했다. 숫자로 알고 싶은 수술에 따른 각종 가능성에 대해 그는 그냥 부작용을 최소화할 것이라는 원론적인 말로 대신했다.
보호자인 “나”는 맘에 드는 대답이었지만 환자는 그렇지 못했다.
안절부절못한 모습이 역력했다.
머리를 밀고 두개골을 열어 수술한다는 것이 얼마나 부담스러운 것인지 사실, 보호자는 알지 못한다. 그냥 짐작할 뿐이다. 그게 보호자와 환자의 차이다.
며칠 후 마지막으로 A병원에 갔다.
아내는 가능하면 수술하지 않고 이곳에서 시술을 받았으면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약간 찜찜한 것이 조영술을 S병원에서 받을 것이냐 A병원에서 받을 것이냐를 두고 지난 12월 크리스마스에 무척이나 고민을 했다. 결국 수술과 시술을 둘 다 하는 의사에게 받자고 하였지만 결과는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수술법 이야기만 듣고 왔는 셈이다. 패를 하나 잃은 것이다.
진료실에 들어가니 의사와 전문간호사로 보이는 사람이 있었다. 지난번과 동일했다.
그는 우리가 가져간 조영술 CD를 보더니만 대뜸 의료쇼핑에 대해 뭐라 했다. 차표 한 장만 들과 이 병원 저 병원 다니는 것은 의료의 질을 떨어뜨리는 행위다. 또한 그는 아내에게 왜 자꾸 증상이 없다고 하느냐, 자신이 보기에는 이런 말을 하면 좀 실례가 될 것 같지만 정신과에 가서 진단을 받아봐야 한다. 불안해 보이는 게 눈으로 보인다는 식을 말을 했다.
분위가 냉랭하였다.
순간 나도 화가 났다.
하지만 곧 태세를 바꿨다. 그와 싸워봐야 얻을 것도 없었다.
그는 우리가 가져간 조영술에 자신이 원하는 사진이 없으며 지난번에 왜 여기서 찍지 않았는가 하는 것에 대한 질책과 더불어 자신이 원하는 것은 혈관을 잠시 막았을 때 막은 혈관 뒤쪽으로 다른 방향에서 흐르던 혈액이 오는지 그렇지 않는지를 파악하는 것이라 했다.
그 말까지 듣는 순간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왜냐하면 그가 조영술을 찍어야 한다고 했을 때 어느 누구도 이런 식으로 어렵고 복잡한 방식으로 혈액의 흐름을 확인하는 것이라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게 설명해 줬다면 나는 100% 여기서 조영술을 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우리가 가져온 조영술 내용을 부실하다고 했다. 자신이 보고 싶은 것이 없다는 말이었다. 남이 찍은 것을 판단하기는 매우 어렵다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그것도 매우 신경질적으로 말이다.
불쾌함과 당혹감이 밀려왔다. 낭패감도 들었다. 감정이 복잡해졌다.
하지만 보호자는 정신을 차려야 했다.
약간은 멍한 시간이 흐를 때 그는 간호사 보고 뭐하냐고 호통을 쳤다. 다음 환자를 들여보내 라고 했다.
난 일어서며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의 판단을 듣고 싶습니다.”
그는 S병원에서 조영술 영상이 빠진 것 같다는 말과 함께 그것을 받아와서 보충해 준다면 의견을 주기로 했다. 그리고 쫓기듯 진료실을 나왔다.
나중에 아내는 그의 말 중 증상이 있을 것 같은 데 자꾸 없다고 하느냐라는 대목에서 정곡을 찔린 것 같다는 말을 했다. 자신도 가만히 생각해 보니 오른팔이 저리거나 떨리는 증상, 머릿속에 골프공 같은 것이 달랑거리는 느낌이 있었던 것이다. 편두통을 포함한 두통도 그랬다.
지금 보니 이런 증상은 거대뇌동맥류가 주변을 누르면 나타날 수도 있을 만한 증상인 것이다.
진료실을 나오는 데 얼굴이 달아오르며 뭔가 실패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게임처럼 여러 가지 수가 있어 게임을 진행했는데 진퇴양난에 빠지며 물릴 수가 없는 경우처럼 느껴졌다. 조영술을 A병원에서 받았어야 했던 것이다. 아무도 설명해 주지 않았던 조영술의 방식! 어찌 보면 운명일 수 있는 것이다.
다시 시간을 내서 서울 S병원에 가서 조영술 CD를 받아 A병원에 등록했다.
며칠 뒤 전화가 왔다.
아내 전화로 연락이 온 것이다.
심한 말과 함께 성질을 한껏 부린 그 의사는 그렇지만 의사로서 소임과 환자를 배려하는 점에서는 최선을 다한 느낌이었다.
그는 다시 진료를 보러 오기 힘드니까 전화를 한다고 했다.
집사람은 알아듣기 힘드니까 녹음을 하였는데 나중에 그 내용을 들어 보니 이러했다.
정보가 불충분하기도 하고 조영술도 정보가 없다. 자신이 생각하기에는 한 곳만 막으면 될 것 같은 데 후유증이 생길 수도 있다. 이는 신경과에 전과해서 관리할 것이다. 수술도 나쁜 선택지는 아니다. 다만 수술도 위험이 있다.
내용을 간단하지만 무척이나 고민을 했던 것 같았다. 결론적으로 가능은 하지만 확신을 못하겠다. 수술도 괜찮은 선택지다.라는 것이 전화의 핵심이었다. 그이 어법은 but also였다. 그렇지만 역시 이러한 문제점이 있다. 전형적인 전문가의 말투였다.
그는 사실, 처음 진료를 볼 때는 혈관문합술을 비판하며 나중에 늙어서 혈관에 부담이 생기면 어떡하냐고 했다. 아마 그의 이런 말이 수술을 주저하게 한 요인 중 하나인 것은 분명했었다.
생각해 보고 연락을 주기로 했다.
불확실하니 모든 것에 가능성을 두고 발을 걸쳐 두었다.
그리고 수술이냐 시술이냐 결심을 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