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 입원 전

by Dr Jang

막상 정해 놓고 보니 여러 가지 할 일이 있었다.


가장 맘에 걸리는 것이 보험이었다.

예전 아내가 들어 놓은 생명보험이 있었지만 실비보험은 직장의 것을 사용하고 있었다. 생명보험을 보니 약관에 뇌혈관도 진단비가 나오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고지의 의무가 적용되는지 불투명했다. 당시 보험설계사에게 말을 하니 될 것 같다고 하여 계약한 보험이기 때문이다.


생명보험을 들 때 아내가 전정신경염으로 입원한 사실이 있어 일부 계약은 제외되었기 때문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조그마한 꼬투리라도 잡히면 지급을 거절하는 곳이 보험회사이기 때문에 맘이 조마조마한 것은 사실이었다. 이 부분은 카페에서 보험 관련 글이 도움이 되기는 했다.

그리고 실비보험은 작년에 직장보험을 들지 않고 새로 들었는 데 이것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직장보험으로 실비를 하면 지급을 받을 수 있는 데 괜히 작년 연말에 새로 가입했나 싶었다. 실비보험이 바뀐다는 이야기를 듣고 새로 계약을 했는데 말이다.

그보다 약 2주간의 공백이었다.


가까이 사는 장모의 도움을 받기로 하였다. 큰 아이는 고등학생이니 밥만 차려주면 되지만 작은 아이는 초등학생이라서 외가에서 학교에 다니기로 했다. 수술 날짜가 3월 초라 새 학기가 신경 쓰였다. 적어도 아내는 말이다.


보호자인 나는 별로 신경 쓰이지 않는 부분이었다. 아내가 후유증이 없이 낫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데 그런 부분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장모에게는 시술을 한다고 하였다. 아직도 처갓집에서는 그렇게 까지 크게 절개하여 수술했는지 모른다. 걱정 끼쳐 드리고 싶지 않고 싶은 이유도 있지만 걱정해봐야 도움 될 일도 아니었다.


입원 전 주말에 성모당에 갔다.


아내의 마음이 편하다고 하면 해야 할 일이었다. 종교란 팔팔하고 행복한 사람보다는 어렵고 힘들며 고난에 부딪힌 사람에게 기운을 주는 것 같았다. 예전 어릴 적 어머니를 따라 간 이후에 이렇게 성모당에 오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초를 밝혔다. 아내는 아이들 몫까지 초를 켜고 기도를 했다. 그런 마음을 나는 쫓아가지 못했다.

입원하기 전날 밑반찬을 열심히 하는 아내의 뒷모습을 사진을 찍었다.


약간은 울컥했다. 자신이 어떤 모습으로 돌아올지도 모르는 데 새끼들 먹이느라 분주하게 움직이는 아내의 모습이 안쓰럽기도 했다.


둘째 녀석은 학기초 방과 후 신청을 컴퓨터로 해야 한다며 안내장을 내밀었다.


시간을 보니 아내가 수술방에 들어가 있을 시간이었다. 노트북을 가져가 내가 하기로 했다.

삶이란 그런 것 같다.

수많은 일들이 얽혀 있다.

얽힌 일들은 어떠한 논리도, 이성도, 법칙도 없다.

그냥 진행될 뿐이다.

그렇게 살아갈 뿐이다.

다음 날 새벽 일찍 일어났다.


전날 받아 놓은 코로나 검사 결과는 음성이었다.


큰 아이가 자는 방을 지나 짐을 들고 차로 향했다.

감정이 복잡했지만 잘 끝내고 오는 것이 최우선의 과제였다.


그렇게 차의 시동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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