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다시피 학교에는 여러 가지 위원회가 많다.
학교에서 결정하는 일에 대해 학부모의 의견을 듣고 결정에 참여시키자는 의미다.
예전에 권위주의 시절에 교장의 독단에 대한 견제 장치로 봐도 무장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 대해 공감할 수도 있겠지만 위원회의 운영을 담당자의 입장에서는 많이 성가신 게 사실이다.
우선, 운영위원회 위원에게 의사를 물어봐야 한다.
전화번호를 입수해 일일이 전화를 걸어본다.
전화번호 자체가 낯선 번호니 한 번에 받는 일은 드물다. 운이 좋으면 부재중 전화번호 때문에 전화가 걸려오기도 하지만 그런 일은 열에 하나다.
어렵게 전화 통화가 되면 사정을 읍소해야 한다.
뭐, 대부분의 학부모 운영위원들은 으레 약간 난감해하면서도 응해 준다. 고맙다. 왜 고마운지 모르겠지만 고맙다. 담당자로서 가장 큰 난관이 위원의 섭외인데 그게 해결되니까 말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모든 사람들 즉, 위원 모두 모이는 날짜를 조정해야 한다. 학교에 있는 교원 위원이야 교사니까 동원하기 쉽다. 출장이나 개인적인 일로 연가 등이 없으면 된다. 하지만 학부모는 사정이 다르다. 각자 일이 있고 사정이 있으니 미리부터 일정을 준비해야 한다. 그게 담당자로서는 여간 스트레스가 아니다. 위원수가 많은수록 이 작업은 더욱 어렵다.
그래서 생각해 낸 방법이 날을 정해 여러 가지 위원회를 한꺼번에 하는 것이다. 학부모 위원은 수가 한정되어 있는 데 위원회가 여러 개면 그들도 여러 번 학교에 와야 한다. 담당자도 위원도 성가신 일일 것이다. 반면 성격이 비슷한 위원회를 몰아서 하면 한 번 출석에 여러 위원회를 만족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일단 위원회 날짜가 정해지면 담당자는 바빠진다.
위원회에서 결정해야 할 사항을 서류로 정리해야 한다.
위원회 구성 공문 기안부터 위원회 개최 계획, 그리고 나중에는 결과 보고 공문까지 필요하다.
아, 간담회비가 예산으로 잡혀 있으면 그것도 기안을 해야 한다. 어떤 음료수 혹은 다과를 준비할 지도 결정해야 하며 심지어 각 위원의 메뉴도 조사하여 반영한다. 회의실도 비어 있는지 확인한다. 중복되면 곤란하다. 워낙 위원회가 많으니 에듀파인에 기안된 계획들을 검색해 본다. 얼른 해 치우고 싶은 일이다.
만약 강사나 업체를 정할 일이 있으면 그들의 일정도 조율해야 한다.
강사나 업체가 많으면 그것도 골치다.
그래서 담당자는 이런 경우에는 회의실과 대기실을 늘 뛰어다니며 다음 분 준비해 주세요라고 해야 한다.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지만 막상 담당자가 되어 자신의 일이 되면 과제하듯 열심히 처리하게 된다. 이 절차를 무시하면 감사 등에서 지적을 받게 되는 데 돈과 관련된 일은 문제가 커지기 때문이다.
어쨌든 모든 과정이 진행되어 위원들이 별 토를 달지 않으면 끝난다. 며칠간 수업 끝나고 오후에 뛰어다닌 결과다. 뭐, 월급 받는 것이 실감이 나는 행위다. 수업과는 별개다.
앞서 진행되고 있는 위원회가 끝나기를 회의실 밖에서 기다리는 데 은근히 긴장이 된다. 담임이 아니다 보니 담임으로서 학부모와 가지는 약간의 연대 의식이 없는 학부모이기 때문에 무슨 소리를 할지 모른다. 다행히 이 학교 학부모들은 학교 일에 협조적이고 긍정적이다. 더운 여름 복도에서 회의실에서 나오는 소리를 귀를 기울여 들어보려 하는 데 생각보다 시간이 걸린다. 맘이 급해 조금 일찍 준비해서 왔는데 덥다. 오고 가며 청소하는 여사님과 자꾸 눈이 마주친다. 몇 번 고개를 숙여 인사했지만 자꾸 그러니 서로 민망하여 그냥 지나친다.
앞 회의 담당자 선생님이 나오는 데 정신이 없어 보여 언제 끝나는지 못 물어봤다. 그러고 보니 아까 행정실에 앉아 있던 사람이 방과 후 강사 지원 자였나 보다. 그 사람을 데리고 회의실로 들어간다. 언뜻 보니 채용 관련 서류가 한참 쌓여있다. 저거 준비하느라 저 담당 선생님도 꽤 여러 날 준비했을 것이다.
내가 진행하는 위원회는 별로 결정할 일이 없기 때문에 금방 끝날 것이다. 교감에게도 바로 이어서 회의를 한다고 했고 교무부장에게도 점심 먹다 그 이야기를 했다. 한 가지 일을 진행하려면 관련된 사람 여러 명에게 이야기를 해서 협조를 얻어야 했다.
뭐 별다른 질문이 없이 위원회를 끝냈다. 준비한 회의자료는 간단한 것이지만 그냥 들어가면 맹숭할 것 같아 컬러로 뽑았다. 예쁜 서류판에 끼워 참석한 사람들에게 쭉 돌렸다. 우리 부서가 하는 일을 최대한 어필했다. 사실, 운영도 내가 생각하기에는 잘한 편이기 때문에 알리고 싶었다.
예상되는 대답을 듣고 잠깐 생각이 나서 교감에게 의견을 물었다. 내가 빠뜨린 부분을 이야기했다. 안 물어봤으면 큰일 날뻔했다. 흐흐
한 주 동안 고민하던 일이 끝나니 평화가 왔다. 그래, 난 초등 선생이다. 주어진 일만 열심히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