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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범 Sep 19. 2017

#18. 당신은 중요한 사람인가요? - (2)

관계적 관점에서 나의 역할

불현듯 스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이건 뭐지? 내가 돈 버는 기계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재미있는 일이 있는 것도 아니...... 일상가치를 발견하지 못하면 그냥 돈 버는 기계로 끝나는 거 아닐까"


그래서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어떤 역할을 하는 사람인가?”

“그 많은 역할들 중에서 내가 중요하다고 인정하는 역할은 무엇인가?”


다소 철학적 질문일 수 있지만 진지한 고민이 필요했습니다.

관계, 일 그리고 기타의 관점으로  카테고리를 설정한 후 14개의 원을 그린 다음 채워 보았습니다.

쓰고, 지우고 또 쓰고 지우고......

그렇게 수도 없이 반복하면서 추출한 역할 중 "관계적 측면"부터 열거해보겠습니다.


먼저 부모의 역입니다.

자녀를 이 세상에 내어 놓은 책임은 쉽게 외면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의 부모가 그러했듯 내 몸을 통해 태어난 생명엔 숭고한 그 무엇이 전해지고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하나의 핵심 역할 중 하나는 자녀의 역할입니다.

부모님이 생존해있으니까요. 

언젠가 들었던 이야기 하나가 생각납니다.

부모의 은혜를 갚으려면 "하얀 피 두 드럼과 붉은 피 두 드럼"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였습니다.

하얀 피와 붉은 피!

 

이미 예측했겠지만 어머니의 젖하얀 피로서 모유를 말함이고 붉은 피는 말 그대로 피(혈액)입니다. 그것은 어머니의 생명입니다. 나는 그 생명의 힘으로 이 땅을 딛고 설 수 있었습니다. 거의 모든 동물은 태어남과 동시에 스스로 일어서거나, 자신의 몸을 가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아니죠? 일정기간 부모의 보살핌이 없다면 가장 약한 포유류가 아닐지 생각해봅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하다 못해 출생 후 자기 힘으로 숨을 쉬는 것도 의사가 엉덩이를 세차게 때려서 울음을 터트려야 하니 말입니다. 

태어나기 전 어머니의 뱃속에서 누렸던 시간은 어찌 보면 가장 행복했던 시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근심 걱정 없이 어머니가 공급하는 생명의 양식을 받아먹기만 하면 되었으니까요.

출생 후엔 달랐을까요?

본능적으로 어머니의 젖가슴을 찾기 시작합니다. 그런 다음 입으로는 어머니의 한쪽 젖꼭지를 빨아 양분을 섭취하고, 또 하나의 젖가슴은 세상에서 가장 포근하고, 아름다운 정서를 선물하는 아기의 놀이기구가 되어줍니다. 우린 그와 같은 어머니의 보살핌에 힘입어 성장하기 시작했고, 아낌없이 이어지는 부모님의 사랑과 뒷받침을 통해 오늘의 내가 되었으니 이는 외면할  없는 일입니다. 우린 금수(禽獸)가 아니니까요.


또 하나의 중요한 역할이 있습니다. 그것은 부끄럽지 않은 남편이 되는 것입니다.

나를 평생의 반려자라 생각하고 따라나선 건 아내의 용기였습니다. 결혼도 하기 전, 연애 시절에 어머님이 돌아갔는데 아내는 작심한 듯 상복을 입었으니까요.

24살 어린 나이에 친어머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시어머니가 될지 안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상복을 입는다는 것이 쉬운 선택 아닐 겁니다.

여동생이 다섯 명이나 되는 장남에게, 당시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고 있었던 것도 아닌 28살 오빠에게 자신의 미래를 내 던지는 것은 용기였습니다.

그런 아내를 저는 외면할 수 없습니다.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너무 크니까요. 50줄이 넘은 지금도 조울 성 우울증을 앓고 계신 85세 아버님을 모시는 며느리의 역할은 물론이고 시집간 동생들에게 정신적 지주라 할 수 있는 친정어머니의 빈자리를 메우는 역할까지 하는 아내는, 하늘이 내게 주신 최고의 선물이기에 남편으로의 역할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위의 역할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극히 당연한 것인데 그것을 핵심 역할이라 말하는 것이 이상할 수 있겠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별 볼일 없는 내게 귀하디 귀한 딸을 내어주신 것 또한 쉽지 않은 결정이라는 것을 오래전에  들어 알고 있었기에 사위로서의 역할은 매우 중요합니다


다섯 번째는 친구의 역할입니다.

음악을 좋아했습니다. 특히 기독교 음악에 심취하여 고교 시절, 성남시 고등학교에서는 최초로 남성 4 중창단 ZION(1978년 창단)을 조직하고 성남시 고교 전체를 대표하는 중창단이 되었습니다. 후배들 양성도 게을리하지 않았고 이 같은 활동은 졸업 후에도 계속 이어지면서 급기야는 ZION OB 남성합창단으로 발전하기까지 울렸던 ZION  동문과 친구들이 있습니다. 

그 합창단이 이젠 역사가 되려 합니다. 2018년이 되면 창단 40년이 되니까요.

ZION 남성합창이라는 공통분모로 맺어진 후배들일뿐 아니라 내 인생에서 절대로  지워지지 않는 소중한 인연이자 친구들입니다. 그들은 내게 젊은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의 증인이 되어준 장본인 들일뿐 아니라 오늘날 성남시 고교 합창의 효시가 된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한 가 국민의 역할입니다.

이는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제 만나러 갑니다"를 통해 전해지는 북한의 일상적 단면을 보다 보면 가끔씩 가족들과 그런 이야기를 나누곤 합니다.  북한에서 태어나지 않은 게(아버님의 고향은 황해도) 천만다행이라고요..

아버님은 6.25 전쟁 시절, 어린 나이에 남한으로 혼자 내려온 이산가족입니다. 무엇에 홀렸는지 부모 형제를 뒤로하고 남한으로 오기 위해  바다를 건넜답니다.

그 후 피붙이 하나 없는 남한에서 생활하기 위해 요즘 재 조명이 이루어지고 있는 미군부대 산하 특수부대인  켈로(KLO) 부대에 들어니다. 특수 공작에 필요한 갖가지 교육을 받은 후 사지(死地)라고 할 수 있는 북한으로 다시 넘어가 첩보활동을 한 이야기는 스릴이 넘칩니다.

황해도 봉산과 마주하고 있는 안악군의 어느 야산으로 낙하산을 타고 내던 날, 지상에서는 이를 발견한 괴뢰군이 아버지 일당을 잡으려고 벌 떼처럼 달려들었답니다.

잡히지 않기 위해 낙하 정리를 포기하고 도망을 가야 했는데 한 살 어린 동료와 함께 안악을 빠져나가는 과정에서 험한 산을 내 달릴 땐 몸이 깃털같이 가볍게 느껴지더랍니다. 잡히면 죽는다는 생각에 초인적인 힘이 발휘된 것 같다고 회상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위험 지역을 벗어나는 과정에서 맞닥트린 괴뢰군에게 유창한 황해도 사투리(아버지 고향)로 위기를 넘긴 이야기에서는 하늘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그 자리가 무덤 자리가 되었을 거라고 말씀합니다.

이야기의 정점은 2인 1조, 16개 조로 북한에 투입된 켈로 부대원 중 단 2명(아버님 조)만 살아 돌아온 부분입니다. 중공군이 밀고 내려온 1.4 후퇴, 황해도 봉산 고향마을에서 공작 활동 중 퇴로를 확보하지 못해서 볏 집에 몸을 숨기고 어머님이 싸 준 인절미 떡과 소변을 먹으면서 버텨낸  이야기를 듣다 보면 오금이 저려 지곤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아버님은 지금도 인절미를 좋아합니다. 당신의 생명을 지속시켜준 양식이기 때문이죠.

죽을 고비를 넘긴 전쟁이 끝난 후 서울시장 밑에서 집사의 일을 하면서 어머님을 만났고, 결혼 후 버스 배차원, 기와 공장, 벽돌 공장, 요꼬 공장 등을 하면서 홀로 일군 아버님의 인생 이야기를 듣다 보면  “자유”  “가족”이라는 키워드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닫게 됩니다.


이상 6가지의 역할은 14가지 나의 역할 중에서 중요하게 느낀 관계적 역할의 이미지로 추려낸 것들입니다.


혹자는 말합니다. 그게 무슨, 누구나 경험하는 당연한 역할이 아니냐고요?

하지만 제 마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냥 알고 있는 역할이 아니라 수많은 고민의 흔적들이 정리된 산물이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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