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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범 Nov 29. 2018

#6. 자리는 바꿀 수 없지만 자세는 바꿀 수 있어요.

단순하지 않아서 너무 어렵고, 너무 영악해서 단순할 수 없는 인간

‘자리’는 바꿀 수 없지만 ‘자세’는 바꿀 수 있다.

나무의 이야기다. 씨앗은 생존을 위해 바람에 실리든, 짐승의 몸에 얹히든 어디론가 옮겨지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더 좋은 환경에서 더 넓고 큰 세상으로 더 많이 퍼져나가야 할 DNA의 지배를 받는다고 할까?

그렇게 살 자리를 위한 씨앗의 자리 찾기 여정이 끝나고 나면 주변 환경에 기대어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다. 빛이 적으면 적은 대로 수분이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환경을 탓하기보다 살아내기 위한 사투를 벌인다. 한 번 자리를 잡으면 스스로의 힘으론 자리를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나무의 특성상 햇빛을 받지 않으면 광합성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더 많은 빛을 받는 쪽으로 방향을 튼다. 그러다 보면 곧게 뻗어 올라갈 수도 있고, 여의치 않아서 구불구불 휘어짐을 감수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자리를 바꿀 수 없으니 자세를 바꾸어서라도 살아내는 나무의 지혜라고 할까? 환경을 탓하느라 햇빛에 노출되는 것을 외면하는 순간 생존이 담보될 수 없다는 것을 나무는 잘 알고 있다. 더 많은 햇빛을 받을 수 있는 곳으로 가지를 뻗어야 하기에 수시로 자세를 바꾸어야 하는 DNA인자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거센 바람에 가지가 부러지면 방향을 바꾸기 위한 새로운 싹을 틔운다. 그리고 또 햇빛을 찾아 긴 여정을 떠나는 나뭇가지의 속성을 따른다. 뿌리가 뽑히거나 나무의 몸통이 잘려나가지 않는 한, 나무의 생명은 이어진다. 그렇게 그 자리에서 백 년, 천 년을 살아낸다. 그것이 나무다.   

땅 속도 험난하긴 마찬가지다. 뿌리가 없는 나무는 없다. 수분을 끌어오기 위한 여정은 생존을 위한 이기적 투쟁을 각오한다. 뿌리는 조금이라도 더 많은 수분을 얻기 위한 몸부림을 멈출 수 없다. 수분이 공급되지 않는 나무는 생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뿌리를 뻗다 보면 수많은 난제와 부딪히게 되는데 그중 하나가 단단한 돌 뿌리다. 선택의 기로라고 할까? 뚫고 갈 것인지, 돌아갈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하지만 뿌리의 선택은 인간들처럼 복잡하지 않다. 약한 틈을 찾아내어 그곳을 비집고 갈 것인지, 여의치 않다면 돌아가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방법을 고민하느라 시간을 소비할 틈이 없기 때문이다. 수분을 얻어야 한다는 단순함에 기인한 때문인지, 때론 깊게, 또 넓게 퍼져 나가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자연재해나 짐승, 그리고 인간에 의해 파 헤쳐지지만 않는다면 뿌리는 자신을 존재하게 했던 나무의 속성을 이어간다. 그렇게 백 년, 천 년을 살아낸다. 그것이 나무를 존재할 수 있게 하는 뿌리의 본질이다.


사람은 욕심이 너무 많다. 더 많은 것을 얻으려, 더 큰 명예를 탐하려 더 높은 자리를 원한다. 자리가 곧 힘이라는 인간이 만든 기준을 따라가는 속성 때문이다. 더 나은 자리는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나무가 햇빛과 수분을 찾듯 인간은 '자리', '물질', 그리고 '명예'를 찾는 백 년 여정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렇게 인간의 욕심 여정이 이어지다 보면 역시 장애물을 만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인간은 다른 생명체와 달리 수많은 수단과 방법을 찾아내는 특별함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너무 복잡하고 교묘하고 영악하다. 이기는 방법을 찾아 자신의 특별한 뇌 컴퓨터를 가동한다. 그리고 선택한다. 그것이 옳은 방법이든 틀린 방법이든 지극히 이기적인 선택을 하고 만다. 그리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자기 합리화를 늘어놓는다. 어쩌면 그것이 인간의 본질은 아닐까?


인간은 더 나은 내일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한다. 그래서 딱히 규정지을 수도 없는 이상한 존재, 단순하지 않아서 어렵고, 너무 영악해서 단순하지 않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자리를 바꿔 않을 뿐만 아니라, 주어진 상황에 맞게 자세를 바꿀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 있는 생명체. 그래서 인간은 너무 어렵다.


...... 출근길에 유영만 교수의 『나무는 나무라지 않는다』를 읽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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