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종범 May 17. 2019

#7. 신묘한 흔적, 인간 나이테

흔적은 기록이다

고대 유물이나 화석처럼 과거를 유추할 수 있는 발견이 이루어지면, 고고학계는 물론 온세계가 로또에 당첨된 것처럼 흥분한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도 경험하지 못했던 수천, 수 억년 전에 일어난 상황을 연구할 수 있는 특별한 흔적이기 때문이다.


흔적이란 “어떤 일이 진행된 뒤에 남겨진 것”이라는 사전적 정의를 가지고 있다. 흔적은 생존과 소멸의 근거를 담고 있을 뿐 아니라, 시대적 상황까지 유추할 수 있는 힌트의 보고다. 이처럼 흔적은 나고(생명의 태동), 살고(과정), 죽는(소멸) 일련의 과정을 유추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인간의 삶도 감출 수 없는 흔적을 남긴다

어린 아기의 피부는 너무나 부드럽고 폭신할 뿐만 아니라 감탄을 자아낼 만큼 매끈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수분은 빠지고, 피부는 거칠어져 검버섯이 피어난다.


나무가 겪은 은 나이테에 남는다.

나이테는 나무의 삶을 유추할 수 있는 흔적이다. 나이테의 폭이 넓으면 충분한 수분을 공급받으며 평탄한 삶을, 나이테가 좁으면 가뭄을 버티며 치열한 삶을 살았다고 볼 수 있다.


나무도 인간도 수분을 공급받지 못하면 생존할 수 없다.

수분의 양이 나이테의 간격을 조정했다면, 인간에겐 매끈한 피부와 거친 피부를 결정짓는 요소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화장품 광고를 보면 “촉촉한 수분 공급” 이미지를 강조한다. 하지만 나이 들수록 탄력을 잃어가는 피부와 늘어나는 주름을 차단할 순 없다. 의술의 힘을 빌어 보정할 순 있어도 세월을 거스르는 정답은 니다. 때가 되면 싫든 좋든 수용해야 하는 것이 세월이 주는 흔적이다.


나무는 한 번 자리 잡으면 그 자리에서 일생을 다한다.

물론 사람에 의해 옮겨질 순 있지만 그렇지 못한 대부분의 나무는 뿌리내린 그 자리에서 일생을 보낸다.

나무는 비바람이 몰아쳐도, 뜨거운 땡볕과 북풍한설이 몰아치는 겨울이 반복되어도, 주어진 상황을 거부하지 않고 묵묵히 버텨낸다. 그렇게 수년에서 길면 천 년 이상 생명을 이어가며 흔적을 남긴다. 그래서일까, 생태 사학자 강판권 교수는 그의 저서 <나무 철학>에서 “나이는 위로 먹는 게 아니라 옆으로 먹는다”라고 말한다.


인간의 생명은 천수를 다해도 100년 남짓이다.

하지만 말과 글자로 기록되는 인간 나이테는 수 만년이 기록되는 신묘한 흔적으로 남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6. 자리는 바꿀 수 없지만 자세는 바꿀 수 있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