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신묘한 흔적, 인간 나이테

흔적은 기록이다

by 이종범

고대 유물이나 화석처럼 과거를 유추할 수 있는 발견이 이루어지면, 고고학계는 물론 온세계가 로또에 당첨된 것처럼 흥분한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도 경험하지 못했던 수천, 수 억년 전에 일어난 상황을 연구할 수 있는 특별한 흔적이기 때문이다.


흔적이란 “어떤 일이 진행된 뒤에 남겨진 것”이라는 사전적 정의를 가지고 있다. 흔적은 생존과 소멸의 근거를 담고 있을 뿐 아니라, 시대적 상황까지 유추할 수 있는 힌트의 보고다. 이처럼 흔적은 나고(생명의 태동), 살고(과정), 죽는(소멸) 일련의 과정을 유추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인간의 삶도 감출 수 없는 흔적을 남긴다

어린 아기의 피부는 너무나 부드럽고 폭신할 뿐만 아니라 감탄을 자아낼 만큼 매끈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수분은 빠지고, 피부는 거칠어져 검버섯이 피어난다.


나무가 겪은 삶은 나이테에 남는다.

나이테는 나무의 삶을 유추할 수 있는 흔적이다. 나이테의 폭이 넓으면 충분한 수분을 공급받으며 평탄한 삶을, 나이테가 좁으면 가뭄을 버티며 치열한 삶을 살았다고 볼 수 있다.


나무도 인간도 수분을 공급받지 못하면 생존할 수 없다.

수분의 양이 나이테의 간격을 조정했다면, 인간에겐 매끈한 피부와 거친 피부를 결정짓는 요소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화장품 광고를 보면 “촉촉한 수분 공급” 이미지를 강조한다. 하지만 나이 들수록 탄력을 잃어가는 피부와 늘어나는 주름을 차단할 순 없다. 의술의 힘을 빌어 보정할 순 있어도 세월을 거스르는 정답은 아니다. 때가 되면 싫든 좋든 수용해야 하는 것이 세월이 주는 흔적이다.


나무는 한 번 자리 잡으면 그 자리에서 일생을 다한다.

물론 사람에 의해 옮겨질 순 있지만 그렇지 못한 대부분의 나무는 뿌리내린 그 자리에서 일생을 보낸다.

나무는 비바람이 몰아쳐도, 뜨거운 땡볕과 북풍한설이 몰아치는 겨울이 반복되어도, 주어진 상황을 거부하지 않고 묵묵히 버텨낸다. 그렇게 수년에서 길면 천 년 이상 생명을 이어가며 흔적을 남긴다. 그래서일까, 생태 사학자 강판권 교수는 그의 저서 <나무 철학>에서 “나이는 위로 먹는 게 아니라 옆으로 먹는다”라고 말한다.


인간의 생명은 천수를 다해도 100년 남짓이다.

하지만 말과 글자로 기록되는 인간 나이테는 수 만년이 기록되는 신묘한 흔적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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