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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범 Jan 04. 2019

#82. 자세를 바꾸려면, 마음이 변해야 한다

인간의 삶은 배움(學)으로 시작해서 앎(知)으로 끝난다

“말을 알아듣지 못하면, 상대방을 알지 못한다"
부지언(不知言)무이지인야 (無以知人也)


논어의 맨 마지막 문장이다. 타인의 말을 잘 알아들으려면 두 가지 변수가 충족되어야 한다. 잘 듣기 위한 청자의 노력과, 쉽고 정확하게 전달하는 화자의 능력이다. 이 두 가지 요소중 하나라도 잘못되면, 왜곡된 이해가 발생한다.

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이 잘 듣는 사람이고 말한다. 상대방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시인하면, 무례한 사람으로 전락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잘 들으려면 내려놓고 듣는 자세와 상대를 존중하는 인격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잣대 삼아 판단하고 평가하는 사람들의 대 부분은 잘 듣지 않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상대의 경험보다 자신의 경험이, 상대의 지식보다 자신의 지식이 더 우월하다는 생각에 파묻혀 있기 때문이다.

지식도 반감기가 있다. 올해 습득한 지식은 내년이면 50% 수준으로, 후년이면 25%, 내 후년이면 20% 수준으로 반감한다. 아무리 훌륭한 지식이라도 정보화 시대에서 3~5년이 지나면 구닥다리 지식으로 전락한다. 때문에 배움에 대한 갈망이 없는 상태에서 익힌 표면적 지식은 지식이라고 할 수도 없다. 배우기 위한 처절함이 결여된 지식은 쉽게 잊히고 말기 때문에, 들은 것을 아는 것으로 포장하여 말하는 것은 상대를 기만하는 행위다. 이는 지식이 담겨야 할 그릇에 자존심을 세우기 위한 오만과 독선을 담아 놓고 고집 피우는 어른 아이의 행동이다.


듣지 않는다는 것은 배우지 않겠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듣는 사람과 듣지 않는 사람의 두드러진 차이 중 하나는 눈 맞춤이다. 동서양을 떠나 관심이 있는 사람이나 사물, 지식, 정보, 기술과 마주하면 그 대상물에 눈길이 머문다. 그리고 손길이 따라간다. 만지고 싶고, 느끼고 싶은 인간의 본능이 꿈틀대기 때문이다. 이는 앎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한 것으로, 취하고 싶은 본능에 기인한 신체적 표현이다.


인간은 배우고 생각하는 존재다. 이는 생존을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 약육강식의 세계는 힘이 세어야 먹이사슬의 정점에 오르지만, 지식 정보화 사회에서는 지식을 생산하고 다루는 기술이 강할수록 정점에 앉는다. 그 시작은 배움에서 비롯된다.


“배우고 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 불역열호(不亦悅乎)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 알고 있는 논어의 첫 문장이다. 지금은 평생학습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만큼 세상엔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들이 넘쳐난다. 지구촌에서 생산하는 수많은 정보를 앉은자리에서 습득할 수 있다. 마음만 먹으면 크게 노력하지 않고도 고급 정보를 찾아볼 수 있다.

과거엔 정보가 있는 곳으로 몸이 가거나, 그 정보가 담긴 책, 사람을 만나야 하는 수고를 해야 했다. 때문에 자신의 수고를 보상받는 심정으로 주어진 시간 동안 최선의 노력을 다해 배우고 익혀야 했다. 정보나 지식이 전파되는 속도가 늦은 만큼, 자신의 이름으로 앎(知)의 기득권을 행사할 수 있는 특별함이 존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정보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접근할 수 있다. 자신이 취한 정보를 지키고 싶어도 지킬 수 없다. 설령 자신의 것이라고 인정받아도 조만간 더 훌륭한 정보나 지식에 밀려 지식창고의 한 모퉁이에 버려지듯 쌓이는 위험이 존재하는 시대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어떤 존재일까?

배우고 알기 위한 기본자세를 인지하고 있을까?

판단하고 평가하는 것으로 자존심을 지키려 애쓰는 오만과 독선 덩어리는 아닐까?


<논어>는 배움(學)으로 시작해서 아는 것(知)으로 끝을 맺고 있다. 배웠다고 해서 아는 것이 아니라 알아듣지 못하면 모르는 것으로 끝난다는 것이다. 알아들으려면 잘 들으려 애쓰는 것이 기본이고, 그렇게 하려면 눈 맞춤이 필요하다. 귀를 빌려주고 마음으로 받는 기본자세를 체득해야 한다. 이는 인성에 기인할 뿐 아니라 어떤 경우라도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을 잃지 않으려는 발버둥에서 시작된다. 배우기는 쉬워도 익히는 것은 어렵다. 들렸다고 들은 것이 아니고, 들었다고 아는 것도 아니다.

2019년, 개인적 mission은 “자리를 바꿀 수 없다면, 자세를 바꾸자”로 정했다.

유영만 교수가 지은 <나무는 나무라지 않는다>에서 나온 글을 인용한 것으로 지금의 상황을 돌아보는데 유용한 자극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행동 강령이 중요할 것으로 판단된다.

① 편견을 걷어내고 배우는 자세

② 땀 흘려 노력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익히는 행동

③ 정확히 알기 위해, 판단하고 평가하는 못된 습관을 내려놓는 태도

④ 현재의 나를 끊임없이 반성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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