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종범 Feb 07. 2019

#85. 그냥 놔두면 다시 돌아올 것을

무언가 하려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론 하지 말고 놔둬야 해결되는 것이 있다

구피를 키운다.

2주에 한번씩 어항의 물을 갈아준다. 크지 않은 어항이라 조심하면서 어항을 옮기는데 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분비물들이 올라오면서 이내 어항이 혼탁해진다. 떠 다니는 분비물을 피해서 뜰채로 구피를 옮겨야 하는데 쉽지 않다.


전화가 왔다.

설 안부를 묻는 지인들의 전화다. 이런저런 덕담을 주고받으며 통화를 마쳤는데 어항 작업을 하던 중이라는 사실을 깜박한 채 1시간가량 흘러 버렸다. 아차 싶어 욕실로 향했다. 그새 혼탁했던 어항의 물이 깨끗해져 있었다. 분비물들이 모두 가라앉아 뜰채 작업이 수월해졌다. 구피 새끼들까지 무사히 옮겨 놓고 어항을 세척한 후 다시 구피를 옮겨 주고 어항이 있던 자리에 돌려놓았다.


"그냥 놔두면 제자리를 찾는다" 

어항을 청소하면서 얻은 교훈이다. 흙탕물이 생기는 이유는 외부에서 가해지는 어떤 힘에 의해 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흙이 뒤집히면서 발생한다. 하지만 가만히 놔두면 저절로 미세한 흙이 가라앉으면서 맑아진다. 소문도 마찬가지다. 응대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주면 제풀에 꺾이고 만다. 소문의 진상을 밝히려고 대응하기 시작하면 불에 기름이 떨어진 것처럼 거칠게 타오른다. 잡념도 마찬가지다. 꼬리에 꼬리를 물기 시작하면 본질은 사라지고 근심과 걱정만 남겨진다.


각종 스트레스를 줄이려면 적당히 외면하는 법도 익혀야 한다.

일일이 대응하거나 살피려 한다면 그만큼의 에너지 소모를 각오해야 한다. 좋은 에너지라면 모르겠지만, 문제를 야기시키는 것이라면 나쁜 에너지의 투입이 많아진다.

때론 적당히 떨어져서 바라볼 줄 아는 힘이 필요하다. 어항의 부유물처럼 그냥 놔두면 저절로 제자리를 찾아갈 텐데 빨리 해결하겠다는 조급함이 문제를 어렵게 만든다.

문제에 함몰되어 있으면 미로에 빠진 것처럼 해결의 실마리를 잡지 못할 때가 있다. 차라리 안 보았으면 좋았을 접하면서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드는 일이 허다하기 때문이다. 한 발자국 물러나서 바라보는 것이 방치하거나 외면으로 끝나는 일이 없진 않다. 하지만 핵심을 파악하는데 좋은 방법으로 해석되었으면 좋겠다.


오늘은 목요일, 설 명절을 끝내고 첫 출근한 날이다. 몸은 천근만근 무겁고 느낌은 월요일 같은 출근길이다.

사무실에 앉아 커피 한잔을 먹는데 동료의 한마디가 들린다.

“와, 오늘은 목요일, 내일은 금요일이네 그럼 또 쉰다

“그렇지 오늘, 내일 근무하면 또 이틀을 쉬는 거지”

갑자기 밝은 무엇이 가슴에 들어오는 느낌이다.


누구나 휴식은 필요하다.

무언가 얽매여서 에너지를 쓰기보다는 때론 그냥 흘러가는 데로 놓아둠으로써 떨어진 신체 기능을 회복하고 복잡했던 마음을 치유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흙탕물도 그냥 내버려 두면 맑아지듯, 조건 없이 내려놓고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지난 6일간의 설 연휴는 개인적으로 좋은 치유의 시간이었다. 나의 내면을 탐구하는 시간으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매년 두 번의 새해를 맞는다. 

두 번의 덕담과 새해 인사를 나누는 기회가 주어진다.

2018년, 몸과 마음을 힘들게 했던 것들이 자연스럽게 치유되는 2019년이 되기를 바라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84. 잡음 파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