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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범 Jan 25. 2019

#84. 잡음 파티

기준이 모호하면 조직이 시끄러워진다.

“그제 쉼표(,)를 쌍반점(;)으로 바꿨다가 오늘 다시 쉼표로 바꿨다네. 내가 얼마나 일을 열심히 했는지 알겠는가?”

프랑스의 작가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이야기다.
만족과 불만족의 차이는 무엇일까? 이는 양과 질을 대하는 인식에 따라 달라진다. 귀스타브 플로베르는 쉼표 하나를 찍어도 고심한 흔적을 알 수 있다. 그는 쉼표 하나를 바꿨을 뿐인데 스스로 만족하며 많은 일을 했다고 자찬한다.

세상은 이와 같은 작가의 생각을 얼마나 동의할 수 있을까? 모르긴 해도 작가적 관점에서 해석하기보다는 평가자의 눈으로 극히 주관적 잣대를 들이대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작가가 글을 쓰면서 어떤 것에 주안점을 두고 썼는지 모르기 때문에 평가의 눈은 왜곡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 지점이다. 평가에 앞서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고 이해하려는 지난한 작업 유무가 중요하다.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한 수순을 밟지 않고 그저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이러쿵저러쿵 평가에 준하는 말을 한다면 이는 작가의 마음에 상처를 줄 수 있다. 이는 작가의 도전 의지를 꺾는 중대한 위협이 될 수 있다.

평가는 창작의 고통만큼 어려운 작업이다. 그래서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하는 지난한 작업이기도 하다.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엎었다 뒤집기를 반복하는 평가는 평가도 아니다.

쉼표 하나를 찍기 위해 몇 날 며칠을 고민하면서 썼다가 지우기를 반복했을 땐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평가자도 작가의 의도를 이해하기 위해 몇 날 며칠을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보인 것을 가지고 자신의 추측을 더해서 빼고, 더하고, 나누고, 곱하는 모양새 갖추기 식 잣대로 재단하는 것은 평가자의 횡포로 비추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오케스트라의 악기 구성을 보면 정 중앙에 오보에 연주자가 포진한다. 그는 연주회가 시작되기 전에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자신들의 악기를 튜닝해야 하는데 그 기준이 되는 A(음계 “라”)음을 잡아 주는 역할을 한다.

오보에라는 악기는 수많은 소리가 뒤 엉켜 있어도 그 소리들의 저항을 뚫고 나올 만큼 깨끗하고 정확한 소리를 내기 때문에 역할적 측면에서 가장 중요한 악기다. 악기들의 소리가 균일하지 않다면 그 연주회는 잡음 파티로 전락한다. 그 이유는 각각의 악기가 뿜어내는 소리들이 부딪치며 파열음을 내기 때문에 듣는 이의 귀를 아프게 만들기 때문이다.

기준이 되는 음(A)이 잘못된 악기가 연주회를 망치듯, 조직도 오보에와 같은 음이 잘못되면 시끄러운 파열음이 난무한다. 만일 조직 구성원들의 불만이 공공연하게 퍼져있다면 이는 기준 음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불분명한 기준 음에 맞추려다 보니 불만이 증폭되며 시끄러워지는 것이다.


오보에의 소리는 맑고 깨끗하다. 하지만 쉬운 악기가 아니다. 니드(그림에서 앞부분 노란색)를 불어서 소리를 내야 하는데 니드를 관리하는 일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너무나 예민해서 연주자들도 니드를 다루는 일에 극도의 민감함을 보일 만큼 까다로운 악기가 바로 오보에다.


조직에서 기준을 잡는 일은 극히 까다롭고 예민한 작업이다. 그래서 수많은 저항을 뚫고 나올 만큼 깨끗하고 투명해야 한다. 기준을 만들고 이를 제대로 시행하는 일이 어려운 것은 다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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