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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범 Apr 19. 2017

#19. 긴병엔 효자가 없다

비용의 문제는 누군가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치명타가 될 수 있다

뇌졸중 환자 장모 씨. 하루 간병비가 7만 5천 원, 마비가 심하고 몸집이 크다는 이유로 추가 비용까지 지불했다. 1년 치 간병비만 자그마치 2,600만 원, 거기에 병원 진료비로 2,000만 원이 더 들어갔다
( 2013년 8월 20일 중앙일보 사회면)

매월 200만 원 이상 들어가는 간병 관련 비용을 누가 견뎌 낼 수 있을까?

기사의 내용처럼 병원 진료비보다 간병비가 더 들어가는 문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문제는 그뿐이 아니다. 간병비로 지불한 비용은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도 없다.  세액공제 대상도 아니다. 말 그대로 생돈이 들어가는 것이다. 정상적인 직장생활을 하면서 간병 수발을 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통계에  따르면 간병 수발을 위해 잘 다니던 직장을 포기하는 사람이 10명 중 8명에 달한다. 간병을 요하는 환자가 발생한다는 것은  배우자를 위한 간병 은퇴로 연결되는 예가 허다하다. 이는 소득감소, 빈곤 추락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초래한다. 급성질환자의 경우엔 <가족 간병 비율이 34.6%>로, < 간병인 사용비율 19.3%>보다 훨씬 높다. 반면에 만성질환자의 경우 가족 간병 비율은 12% 수준이다. 이는 간병인 사용비율 88%보다 현저하게 떨어지는 수치다. 이런 현실을 감안해 볼 때 비용의 문제는 누군가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치명타’가 될 수 있다.


필자의 어머니는 당뇨 합병증과 심장판막증을 앓다가 돌아가셨는데 투병기간이 무려 18년이었다. 오랜 기간 병원 신세를 지셨기 때문에 가족들이 병원에서 잠자는 일이 흔한 일중에 하나였다. 투병 기간이 길어지면서 가정경제도 무너졌다. 하지만 온 가족이 함께 쇼핑백(우린 봉투라고 불렀다)을 접는 부업을 하면서 이겨냈던 기억이 새롭다. 필자가 중학교 2학년인 15세부터 (막내 동생 5세) 시작해서 29세가 되기까지 무려 14년간 지속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새벽 5시가 기상시간이다. 막내도 예외가 없다. 등교 준비를 하는 7시까지 매일 새벽 쇼핑백을 접어야 했다. 시험기간에는 책을 무릎 옆에 두고 넘기면서 공부를 해야 했다. 그리고 하교하면 또 봉투를 접는다. 밤 11시가 넘어야 끝나는 그 일이 지겹기도 했지만 지나고 보니 우리 가족을 단단하게 묶어준 계기가 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긴 병엔 효자가 없다는 말은 하나도 틀리지 않는다’.

차라리 돌아가셨으면 하는 생각을 해 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장남으로서 해야 할 생각은 아니지만 남은 가족들이라도 편해졌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었다. 가족들의 얼굴엔 웃음기가 없었다. 유쾌하게 떠들거나 즐겁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늘 아팠고 집안 공기는 언제나 삭막했다. 그렇게 18년의 세월을 보냈다.  

그런 우리 집에 웃음꽃이 피어나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동생들의 웃음소리가 담장 밖까지 퍼져 나간 것이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벌어진 일이다. 마음을 짓누르고 있었던 어둠의 실체가 사라지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어머니를 잃은 슬픔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빨리 잊어지는 것도 신기했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말이 그래서 나온 말인가 보다. 신기하게도 어머님이 돌아가신 이후의 삶은 어둡지 않았다. 가족들의 마음 한편을 지배하던 고통의 본질이 사라지면서 그만큼의 행복이 들어왔는지도 모르겠다.


질병으로 인한 사망은 즉시 사망이라는 단어가 성립되지 않는다. 거칠게 표현하면 아픈 기간을 거친 그다음에 사망에 이른다. 아픈 기간이 길수록 가족들의 책임기간도 길어진다. 책임기간은 비용을 부담하는 기간이고, 크기의 정도에 따라 가정 경제를 힘들게 만드는 주된 요인이 되기도 한다. 간병을 요하는 아픔은 절대 단순하지 않다. 반드시 타인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반드시 지불해야 한다. 그 비용이 년간 수천 만원이라면, 그것도 수년간 계속되어야 한다면 어떻게 행복 한 삶을 이어 갈 수 있겠는가?


우린 원하지 않지만 그런 삶을 살아야 하는 주인공으로 낙점될 수 있다는 것을 늘 경계해야 한다.

그것은 인간의 선택 범위에 들어 있지 않고 신의 선택에 달린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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