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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범 Aug 05. 2020

#58. 할아버지가 되다.



"2020년 8월 5일. 새벽 4시 26분"


드디어 할아버지가 된 날이다. 그동안 아들, 아버지, 그리고 사위와 남편으로 살았는데, 오늘부터는 한 가지 역할이 더해졌다. 필자에겐 다섯 명의 여동생이 있다.

우리 6형제가 나은 자녀들은 모두 10명, 그중 나이 순으로 4번째에 해당하는 조카(첫째 여동생의 2남)가 처음으로 자녀를 생산한 것이다.


“내가 얼마 만에 할아버지가 된 거지?’


궁금해서 나이를 계산해 보니, 57세 305일 만이다. 살아온 월(month)은 704개월, 살아온 일(day)은 21,125일이다. 그러고 보니 오늘 태어난 손녀에겐 첫날이지만 필자가 태어난 날은 21,125일 전으로 까마득한 옛날이 되고 말았다.

나이는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것 중 하나다. 이제 60일이 지나면 또 한 살을 더해야 한다. '제3의 나이'를 연구하는 입장에서 이런 질문을 자주 한다


“언제 나이 든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나요?”

“자녀들이 크는 모습을 볼 때죠”


자녀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상대적으로 자신이 나이 들고 있는 것을 인지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필자도 그중 한 사람이다. 그런데 오늘은 단순하게 나이 드는 것이 아니라 한 세대가 올라간 나이 듦을 경험한 날이다. 비로소 우리 가족은 증조부부터 증손녀까지 4대가 현존하게 된 것이다. 86세 116일을 살아오신 아버님 때문이다. 필자가 할아버지가 된 만큼, 아버님은 오늘부터 증조할아버지가 되는 날이다. 역시 또 하나의 역할이 더해졌다. 자그마치 1055개월, 31,662일 만의 일이다.


황해도 봉산이 고향인 아버지는 홀홀 단신으로 남쪽에 내려온 실향민이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사이에서 6형제를 낳고, 출가시켜 열 명의 손 자녀를 얻었고, 오늘 태어난 증손녀가 더해지면서 우리 가족은 24명, 대가족으로 오늘부터는 4대가 공존하는 역사가 쓰이기 시작했다.


사실 100년 전만 해도 같은 하늘 아래 4대가 생존하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만큼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의료 과학 기술이 발달하고 삶의 질이 개선되면서, 인간의 수명은 비약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젠 100세 시대란 말이 이상하지 않을 만큼 익숙해진 것이 사실이다. 이렇게 수명 증가 속도가 빨라진다면 가까운 미래엔 5대가 같은 하늘 아래 공존하는 일이 일상처럼 전개될 것이다. 이런 현상은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를 야기시킬 것이 뻔하다. 당장 생산 가능 인구가 부양해야  대상이 급격하게 늘어나기 때문에, 생산력을 대체할 수 있는 또 다른 수단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아마도 그것은 인공지능 로봇일 확률이 크다.

인간 삶의 영역에서 인공지능 로봇이 차지하는 비율이 빠른 속도로 늘어나게 되면, 인간이라는 존재의 우월성도 새롭게 정의되어야 할지 모른다. 인간 못지않은 로봇, 아니 인공 지능 로봇을 능가하는 또 다른 물체들과 공존해야 하는 세상이 올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 태어난 손녀는 그런 세상을 헤쳐나가야 할 운명인 셈이다. 마치 자동차도 없고, 전기도 없었던 시절 살았던 사람이 지금의 모습을 보고 있다는 가정에서 느낄 수 있는 것보다, 더 충격적인 미래가 오는 것은 아닐지, 할아버지가 되어서 일까, 주절주절 생각이 많아지는 아침이다.


오늘 태어난 손녀에게 축복된 미래가 열리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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