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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범 Oct 06. 2020

코로나가 바꾼 추석,  그리고 일상

“아범아! 이번 추석엔 아무도 오지 마라 해라”


지난 8월, 어머니 기일 때도 아버지는 동생들을 오지 못하게 하셨다. 아버지는 6.25 전쟁 때 홀홀 단신으로, 남쪽으로 내려온 이산가족으로 1남 5녀의 자식을 두었다. 하루는 왜 그렇게 자식을 많이 낳았냐고 물었더니, 남쪽에 피붙이가 한 명도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자식들 만큼은 형제라도 많아야 외롭지 않을 것 같다는 뜻이다. 우리 형제들은 아버지의 바람대로 우애가 좋은 편이다. 이젠 형제들 모두 50줄에 들어섰지만 그 흔한 이혼도 없다. 건강 이상으로 위험에 처한 사람도 없다. 물론 조카들도 잘 커줘서 이젠 하나 둘, 짝을 찾아 자신들의 삶을 개척하기 시작했다. 가지 많은 나무엔 바람 잘 날이 없다지만, 그래도 우리 형제들은 무탈한 가정을 이루었다고 생각한다.

우리 가족은 아버지와 1남 5녀의 자녀들, 10명의 조카, 그리고 지난 8월 5일 태어난 증손녀까지 4대가 생존하는 24명 대가족이다. 조카들까지 모이는 것이 쉽지 않지만 그래도 어머니 기일과 추석, 아버지 생신만큼은 온 가족이 함께 모여 가족애를 나눈다. 아버지와 우리 부부, 그리고 이들, 딸과, 강아지 두 마리가 함께 사는 우리 집에, 형제들이 들이닥치면 그야말로 도떼기시장을 방불케 하는 아수라장이 벌어진다. 온 집안 구석마다 사람으로 가득 찬다. 자연스럽게 남자들은 술자리로, 여자들은 윷 놀이판으로 조카들은 연배들끼리 자신들의 일상과 고민을 털어놓으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눈다. 그렇게 못다 한 이야기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 우리 가족 추석 풍경이다. 하지만 올 추석은 코로나로 인해 함께 모여 가족애를 나누지 못했다. 지난 8월 어머니 기일 모임도 파한 상황에서, 12월 아버지 생신 모임도 내년을 기약할 만큼, 이번 코로나는 연중 세 번의 가족 모임도 훼방 놓는 고약한 놈이다


“음식 준비랄 것도 없네”


추석 차례상을 준비하면서 아내가 한 말이다. 평소 같으면 대기족이 먹을 음식을 준비하느라 정신없을 텐데, 한결 여유롭게 추석을 준비할 수 있어서다. 그도 그럴 것이 음식을 준비하는 조리도구의 크기가 달랐다. 고기를 켜켜이 재워 놓는 들통도 필요 없고, 전을 부치기 위한 대형 프라이 펜을 꺼낼 일도 없다. 맏며느리인 탓에 가족 모임이 끝나면 돌아가신 어머니를 대신해서 남은 음식들을 바리바리 싸서 보낼 일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런 말이 나올 법도 하다. 그래서 그런지 이번 추석은 명절 느낌이 들지 않는다. 모처럼 연차와 장기 포상휴가를 합쳐 16일간의 휴가를 내고 맞이한 추석이지만 동생들 내외와 술 한잔 기울이며 밀린 이야기를 나눌 수도 없고, 사랑하는 동생들과 윷놀이도 그렇고, 다 큰 조카들 인생 상담도 할 수 없으니 말이다.

2020.10.6일 AM 10:19 거실에서

16일의 휴가 중 10일이 지난 지금, 본의 아니게 종일 본가를 만끽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휴가도 세월만큼 빠르게 지나가는 느낌이다. 별반 한 것도 없는데 열흘이 지났으니 말이다. 글쓰기와 집안 청소, 테라스의 화초 거실로 들여놓기, 방문 창문 닦기,  집 뒤의 남한 산성 오르기 등 소일로 시간을 보내는 게 안쓰러운지 아내가 한 마디 한다


이제 어지간한 일은 다했으니까 요즘 젊은 애들이 핫 하다고 하는 곳에 가기로 한 거 그거 하자. 이 참에 익선동, 연남동, 북촌 한옥 마을, 그리고 얼마 전 tv에서 소개된 성수동 어때?”


좋지


남자 친구와 카톡 중이던 딸아이가 우리 부부 이야기에 끼어들며 말을 보탠다


“그럼 수요일은 나도 끼워줘, 나, 휴가 거든”


덕분에 도심의 핫 한 장소에서 소박한 나들이로 나머지 휴가를 보낼 것이다. 일만 하던 가장들이 막상 퇴직하고 나면 갈 곳이 없어 등산 가방 하나 챙겨 매고 산에 오르는 일이 많아진다는 말이 실감 나는 휴가다. 필자도 16일의 장기 휴가를 받아 놓고 보니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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