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에서 죽어야 하는 그날

그날이 오기 전에

by 이종범

Age_58

Risk_불쑥 다가온 퇴직



임금 피크 4년 차 연봉 계약서에 서명을 마친 다음 날, 교육사업 본부장으로부터 면담 신청이 들어왔다.


"강사님 오해하지 말고 들어 주세요"


면담 시작 첫마디다. 공문이 내려왔는데, 임금 피크자의 잔여 연봉보다 조금 더 받고 퇴사할 생각이 있는지 물었다. 망설일 필요가 없는 질문이었다.


"아니오"


처음 임금 피크를 수락할 때 정년으로 퇴직하겠다고 마음먹었고, 모든 사이클을 정년으로 맞추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러 가지 변수로 기업 경영이 어려워지면 충분히 가능한 제안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막상 제안을 받고 보니 씁쓸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아마도 코로나의 여파가 아닐까 생각된다. 어쩌면 임금피크자들 뿐 아니라, 4,50대 후배들도 조만간 어려운 선택에 직면하지 않을까 싶다.

“적극적으로 은퇴를 계획하지 않으면 힘든 은퇴를 하게 된다. 여가에 소질이 없다면 삶에도 소질이 없는 것이다. 삶이 지루해지기 시작하면 인생에서 퇴장해야 할 시간이 가까워왔다는 뜻이다” - 어니 J. 젤린스키


대구 수성구청에서 강의하던 때다. 식전 행사로 노래교실을 운영하는 원장님이 3곡을 불렀는데 마지막 곡이 노사연의 <바램>이다.


"내 손에 잡은 것이 많아서, 손이 아픕니다. 등에 짊어진 삶의 무게가, 온몸을 아프게 하고. 매일 해결해야 하는 일 때문에, 내 시간도 없이 살다가 평생 바쁘게 걸어왔으니, 다리도 아픕니다. 내가 힘들고, 외로워질 때, 내 얘길 조금만 들어준다면 어느 날 갑자기 세월에 한복판에 덩그러니 혼자 있진 않겠죠. 큰 것도 아니고, 아주 작은 한마디, 지친 나를 안아 주면서 사랑한다 정말 사랑한다는, 그 말을 해 준다면. 나는 사막을 걷는다 해도, 꽃 길이라 생각할 겁니다.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 저 높은 곳에 함께 가야 할 사람. 그대뿐입니다"


평소 좋아하던 노래지만 그날의 <바램>은 예전의 그 노래가 아니었다. 특히 후반부,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간다는 구절에서는 눈물샘이 터졌다. 노래가 끝나면 강단에 올라야 했기에 빠르게 눈물을 닦았지만 여기저기 눈물을 훔치는 사람이 적지 않았던 기억이 새롭다. 나이 듦을 실감해서일까, 그날따라 익어간다는 구절이 마음을 울렸다.


<국민연금법 노인> 60세 이상

<노인복지법 노인> 65세 이상


대한민국에서 중년과 노인을 가르는 제도적 구분 값 중 하나다. 노년교육 연구회 <은퇴 수업>에 따르면 역사적 업적의 35%는 60대에서 80세에 이루어졌다고 발표했다. 또, 23%는 70대에서 90세에, 80세~90 세로 함축해도 6%가량 역사적 업적이 성취되었다는 것이다.


이종범의 도해 카드

<베르나르 베르배르>의 단편소설 <나무>에 소개된 "황혼의 반란"엔 이런 구절이 있다.


“노인 하나가 죽는 것은 도서관 하나가 불타는 것입니다”


주인공 프레드가 저항 운동을 함께하는 동료 노인(콩트랑)의 장례식에서 한 말이다. 그런 면으로 보면 노인교육연구회 발표 자료는 노인의 내, 외적 가치는 사회적 통념을 훨씬 뛰어넘는 것을 반증한다고 할 수 있다.


“할아버지. 할머니라는 호칭, 이제는 금지어입니다”.


노인 복지회관 관계자들에 따르면 ‘철수 할아버지’ ‘영희 할머니’식으로 부르면 대뜸 000 씨로 부르라고 말하는 고령층이 많다고 한다. 동아 일보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절반 가량(48%)은 ‘70세’는 넘어야 노인으로 생각한다는 자료를 발표했다. 특히 주목할 연령층은 50대로(55%) 전 연령층에서 최다를 이루고 있는 상황이다. 아마도 베이비부머 세대의 생각이 다수 반영된 결과일지 모른다. 하지만 20대에서 42%가 70세 노인이라고 답한 것을 보면, 세대 구분 없이 노인을 구분하는 연령에 대한 국민 의식이 변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저 출산 고령화는 대한민국 인구 구성비의 균형을 깨트렸다. 2040년이 되면 65세 인구 비율이 32.3%로 높아진다. 공식적으로 전체 인구 3명 중 1명은 노인인 셈이다. 그렇다면 나이에 끌려가지 말고, 나이를 끌고 가는 준비가 필요하다. 그러려면 적당한 경제 활동을 축으로 취미, 여가, 봉사활동 등, 노년을 가치 있게 보낼 수 있는 균형 잡힌 일상을 계획해야 한다. 먹고살기도 힘든 판에 취미, 봉사, 여가활동 같은 일상이 사치라고 생각하는 시각이 없지 않지만 그렇다고 시간이 끌고 가는 데로 마냥 따라가면서 삭막한 노년을 보낼 순 없는 일이다. 자칫하면 노인들의 사회에서 외딴섬에 홀로 갇힌 사람 마냥, 단절된 삶을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시간은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흘러간다. 서울 올림픽이 열린 해를 계산해 보라. 2020년 기준으로 벌써 30년도 더 지난 이야기다. 어디 그뿐인가, 대한민국을, 오 필승 코리아의 함성으로 뒤덮었던 월드컵도 이미 18년이 흘렀다. 눈 깜짝할 사이에 대한민국을 뒤 흔든 역사적 이벤트가 기억 저편에 묻혀 버린 것이다. 퇴직하는 그날도 마찬가지다. 조직에서 죽어야 하는 그날은 그렇게 슬그머니 다가온다.



1. 퇴직이란 당신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나요?


2. 퇴직한 다음날, 당신의 하루는 어떤 모습일까요?


3. 퇴직 후 한 달간의 계획표를 짜 보는 건 어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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