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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범 Nov 24. 2020

움직이는 것들은 살아있는 것이다.

낙엽 떨군 감나무엔 앙상한 가지만 즐비하다. 그나마 까치밥으로 남겨둔 몇 개의 감들이, 수척한 빈 가지의 외로움을 달랜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머물기를 거부한다. 머문다는 것은 고인다는 것이고, 고인다는 것은 썩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움직임은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생명 있는 것들은 모두 움직인다.

영국 학자의 실험에 따르면, 멀리 날아가 떨어진 씨앗은 가까운 곳에 떨어진 씨앗보다 발아율이 더 높고 생존력도 훨씬 강하다는 글을 접한 적이 있다. 그 때문일까, 단풍나무는 프로펠러를 닮은 씨앗을 만들고, 민들레는 솜털처럼 부드러운 홀씨를 남긴다. 살아있는 바람에 편승하여 더 멀리 더 넓은 세상으로 날아가기 위함이다. 그러고 보면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똑똑하다 못해 영악한 것 같다.


출근길, 첫 만남의 주인공은 길냥이다. 오늘도 평소처럼 출근을 위해 테라스로 연결되는 뒷문을 열었다. 어둠이 채 가시기도 전인데, 집 나서는 시간을 알고 있는 듯, 냥이 한 마리가 소공원에서 우리 집 테라스로 넘어온다. 몸놀림은 마치 자기 집에 오는 것처럼 익숙하고 부드럽다. 사뿐하게 테라스로 내려앉으며, 야옹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내게로 다가와 다리를 문지른다. 밥 달라는 신호다. 처음엔 당황했지만 한 두 번 하는 것도 아니고, 이젠 익숙해졌다. 아마도 이번 냥이는 오랫동안 사람 손을 탄 고양이인 것 같다.


우리 집 감나무 옆엔 냥이 밥그릇과 물그릇이 있다. 밥그릇에 사료를 반쯤 담았다. 물 뜨러 간 사이, 냥이는 배가 고팠는지 허겁지겁 밥을 먹는다. 그때부터는 내 움직임엔 관심이 없다. 오로지 다른 움직임을 살필 뿐이다. 혹시라도 자기 자기 밥을 노리는 길 냥이가 없는지 경계하는 것이다. 사료 몇 개를 씹고 나면 여지없이 고개를 들고 주변을 살핀다. 그리고 다시 사료를 먹는다. 그렇게 수차례를 반복한다. 사료 먹는 모습을 잠시 지켜본다. 작은 입으로 사료 씹는 소리가 크게 들릴 만큼 조용한 아침이다.


살겠다고 찾아온 냥이를 내칠 수 없어 거두기 시작한 것은 꽤 오래되었다. 시작은 아내가 했지만 지금은 딸과, 나도 길냥이 밥을 챙긴다. 어디서 추위를 피하는지 알 수 없지만, 올 겨울을 무사히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다. 작년에도 두 마리의 길 냥이 사체를 묻어 준 경험이 있어서다. 그러고 보면 해마다 우리 집을 찾는 냥이가 바뀐다. 두 해 겨울을 계속해서 볼 수 있는 냥이는 기억나지 않는다. 올해는 꼬리 잘린 황색 냥이와 귀 모양이 쫑긋하고 독특한 어린 냥이가 우리 집을 찾는다. 아직은 견딜만한 추위겠지만 내년 봄에도 만날 수 있을진 모르겠다. 배고픔이야 우리 집에서 해결할 수 있겠지만, 추위는 또 어떻게 견뎌낼지…

그러고 보면 먹을 것이 있고 편안하게 따듯한 겨울을 보낼 수 있는 집이 있다는 것은 길냥이겐 사치다. 매일 먹을 것을 얻어야 하고, 추위를 피할 수 있는 거처를 만들고, 새끼를 낳아도 제대로 키울 수 없는 길냥이겐, 겨울이 가장 위험한 계절이다.


긴 겨울.... 어떻게든 살아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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