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잎차 한잔, 그리고 글 한 줄

by 이종범

거실로 나왔다.

아무도 일어나지 않은 이른 새벽

거실은 텅 빈 것처럼 고요하다


인기척이라곤 내 발자국 소리가 전부다.

세면장 스위치를 누른다

어둠을 넉넉히 깨울법한 빛이

문틈으로 새어 나온다


세면을 마치고 안방으로 향했다

가족들의 잠든 밤을 깨울까 조심스럽다.

발 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장롱문을 연다.

그리고 출근을 위한 옷가지를 챙겼다

다시 살금살금 거실 카펫을 밟는다

다행이다. 발자국 소릴 감춰줘서


출근 채비를 마쳤다

주방 식탁 위, 커피 포트를 데운다.

생각보다 물 끓는 소리가 요란하다

딸아이가 태국 여행 때 사 온, 잎차를 우린다

찻잎의 이름도 모른다. 그저 향이 좋다.

무엇보다 이른 아침 입 맛에 어울린다

개운한 뒤끝이 좋아서,

이 시간이면 거르지 않고 마신다.

지금처럼 추워지는 날씨엔 제격이다.


아직은 25분 정도 여유가 있다.

3독 중인 책을 꺼냈다.

법정스님의 잠언집,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다

하루를 시작하면서 접하는 법정스님의 글은,

새날을 위한 생각 리듬을 깨우고도 남는다.

그러고 보면,

법정스님의 글 한 줄과, 이름 모를 잎차 한잔은

새날을 가치 있게 시작하는,

<새벽 비타민>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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