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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olumnlist Dec 20. 2023

아스팔트를 뚫고 피어나는 꽃의 질긴 정신력으로

삶을 살아가기엔 난 너무 나약했군요

글쓰기 모임에서 도파민에 관련된 얘기가 나왔었다. 일 중독이란 회원님의 말에 수긍하는 다른 회원님이 계셨다.

"브레이크가 없는 느낌이네요."

내가 말하자 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살면 병이 난다는 다른 회원분의 우려 섞인 걱정도 있었다. 나는 솔직히 브레이크가 없는 회원 분들이 부러웠다. 엑셀이 없는 사람도 있으니까.

"브레이크가 없는 게 더 나아요. 엑셀이 없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하루를 의미 없이 보낸 날들이 많았다. 해가 떨어지길 기다리던 날,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서 유튜브만 보던 날, 자다 깨다를 반복해 머리가 아팠던 날, 그럼에도 자기 합리화를 했던 날. 나는 엑셀이 없는 사람이었다. 노력보단 요행수를, 버티기보단 포기하기를, 고생 끝에 오는 낙 대신 고생을 피하는 쪽이었다. 그러면서 내 인생은 아직 빛을 못 봐서 그렇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적확한 타이밍이 오지 않아 노력하지 않는 거라고, 손전등이 주어지지 않았기에 어둠을 뚫고 걸어 나갈 수 없는 거라고, 상황이 내 사지를 옥죄어 움직이지 못하는 것뿐이라고, 한다면 하는 놈이라고. 그렇다. 한다면 하는 놈이었다. 포기를. 싫으면 하지 말고 싫어도 해야 하는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20대 초반 누군가 내게 '너는 한량처럼 살아야 하는 성격이야.'라고 말했던 적이 있었다. 그 말이 칭찬으로 들렸었으니 얼마나 게으른 정신력으로 살아왔었는지.... 그래서인지 20대 후반의 나는 '그때 그것 좀 할걸.'이란 말과 생각을 달고 살았었다. 아무 의미 없는 말들을.  내게 부족했던 건 질타였고 내게 넘쳤던 건 칭찬이었다. 스스로를 질타하기엔 겁이 많은 사람. 남에게 질타받으면 의기소침해졌던 사람. 자기혐오가 노력으로 이어지지 못했던 사람. 합리화를 위해 머리를 굴렸던 사람. 사회의 기준으로 봤을 때 쓸모없는 사람. 


너무 늦은 나이에 삶은 자연스레 흐르는 강이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삶은 인공 호수였다. 관리하지 않으면 저 깊은 곳에서부터 썩는 인공 호수. 자신이 썩어가는지조차 모르다 어느새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 그래서 매일 부단히 질을 관리해야 하는 인공 호수. 사람은 태어난 그 순간부터 죽어간다는 것을, 시간은 한정적이라는 것을 왜 이른 나이엔 몰랐던 걸까.  

이십 대는 집행유예다. 개화의 여지가 없으면 삼십 대때 형벌이 온다. 현실을 직면하는 눈을 갖게 되는 형벌.


삶은 꽃밭이 아니었구나. 사실은 굳어버린 땅 위로 솟는 몇 송이의 꽃들만 존재했던 것이구나. 멀리서 보니 꽃밭으로 보였을 뿐이구나.


이제는 아스팔트를 뚫어내는 정신력으로 살아가야 한다. 비교는 무의미하다.

아스팔트를 뚫고, 피어나는 꽃의 질긴 정신력으로.

아스팔트를 뚫고 피어나는, 꽃의 질긴 정신력으로.

아스팔트를 뚫고 피어나는 꽃의, 질긴 정신력으로.

이제는 어디에 쉼표를 찍을지 결정해야 한다. 유예는 끝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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