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Ctrl+F, 그리고 주인공이 바뀌었다

by 이정은




나는 살아남기 위해 현실을 택했다.


웹소설 작가로 데뷔한지 2년이 되던 해였다.


그 사이 100만자에 가까운 글을 써내려 갔지만 아르바이트를 그만둘 정도의 수익은 거두지 못했다.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이대로 가다가 작가의 삶을 포기해야 할지도 몰랐다.


그건 목에 칼이 들어와도 안 될 말이었다.


그즈음 내 고민을 알고 있는 지인들은 장르 변경을 권하고 있었다.


웹소설에는 다양한 장르가 있다.


현대로맨스, 로맨스 판타지, BL 등등.


그 중 나는 BL을 쓰고 있었는데, 지인들의 이야기는 좀 더 메이저하고 풀이 넓은 장르로 변경하는 게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결단은 쉽지 않았다.


꽤 오랜 시간을 고민했지만 쉽게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익숙한 세계를 등진다는 건 다시 초심자가 된다는 뜻이었다.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당시 나는 네 번째 작품을 집필 중이었다.


계약 결혼과 임신튀-임신해서 도망친다는 설정이다- 키워드를 넣고 예상 분량의 절반 정도인 40회차를 작성 중이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눈을 뜨자마자 노트북 앞에 앉았고, 글이 풀리지 않아 머리를 쥐어뜯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내가 이렇게 어렵게 작품을 내놓아도 여전히 독자들이 외면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만약 이 작품을 현대로맨스로 바꾸면?


남남 커플도 결혼하고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판타지한 설정은 오히려 현대로맨스에서는 하등 무리 없는 일반적인 설정으로, 계약결혼이라는 키워드 역시 현대로맨스에서 메이저한 키워드 였다.


오래 고민했지만, 결단의 순간은 충동적이었다.


ctrl+f.단축키 한 번에 “윤희재”는 “윤설희”가 되었다.


길었던 고민에 비해 결정의 순간은 찰나였고, 순식간에 바뀐 주인공의 이름을 보며 약간 허탈한 마음도 들었다.


문제는 내가 웹소설 현대로맨스를 한번도 읽어보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그래도 자신은 있었다.


성별이 다를 뿐 로맨스 장르라는 것은 변함 없으니 장르적 문법만 익숙해 지면 될거라고 생각했다.


안일한 생각이었다.


허들이 높았다.


현대로맨스에서 다루는 설정이나 감성이 개인적인 취향과 맞지 않았다.


좋아하는 글만 써오던 나로서는 좋아하지 않는 글을 써야 한다는 게 고통처럼 느껴졌다.


이렇게 된 이상 어떻게든 이 장르를 좋아하고 말리라.


그날부터 나는 수십, 아니, 수백편의 작품의 무료회차를 읽고 또 읽었다.


그 중 단 하나라도 내 마음을 울리는 이야기가 있기를 바라며 모래 속에서 바늘을 찾듯 뒤지고 또 뒤졌다.


며칠 밤낮을 가리지 않은 끝에 마침내 한 작품을 찾았다.


무료회차 이상 읽을 수가 없었던 다른 작품들과 달리 그 작품만큼은 마지막 회차까지 전부 완독할 수 있었다.


굉장한 성취였다.


덕분에 현대로맨스 장르의 구조가 어느 정도 파악 되었다.


더불어 좋아할 수 있는 작품을 찾겠다며 수백편의 무료회차를 읽었더니 소설 초반 후킹에 대한 감도 생겼다.


그건 생각지도 못한 성취였다.


인풋은 즐거운 일일 뿐이라는 생각에도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빠져들어 흡수하듯 읽지 않고 한걸음 떨어져서 작품을 바라보았더니 작품을 분석하는 눈이 생겼다.


작품 분석력은 이후 내가 강사가 되었을 때 훌륭한 자산이 되어 주었다.


이제 장르와 주인공 성별이 바뀜으로 인해 달라질 문맥을 수정할 차례였다.


마음가짐을 바로 하고 파일을 열었다.


웹소설 현대로맨스 작가로 가는 길이었다.

이전 06화5화. 다시는 내 언어를 잃지 않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