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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천교육교사모임 Apr 29. 2021

비밀의 무게

<비밀의 무게 / 심순 / 창비> - 정기진 씀

  저학년용이라고 하는데 그래도 3학년쯤 되어야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어른들이 읽고 나누어도 할 이야기가 많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 편의 단편이 담겨있다. 

  표제작인 「비밀의 무게」에는 남산타워가 소재로 나오는데 처음에는 참 뜬금없다는 느낌이었다. 아니 멀쩡한 남산타워가 왜... 어느 날 밤 남산타워와 교감한 찬이의 방에 남산타워가 진짜로 나타났다. ‘진짜로’라는 건 원래 있던 자리에선 없어졌단 뜻이다. 세상은 그 희한한 일로 시끄러워졌고 그 비밀을 안고 있는 찬이는 입이 근지러워도 참는다. 나만 알고 있는 그 비밀은 한편으론 설레고 뿌듯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비밀의 ‘무게’는 찬이를 딴사람처럼 바꿔놓았다. 예전처럼 말썽을 피울 수도 없었고 까불지도 않았고 말수도 적어졌다. 그러겠다고 결심해서가 아니었다. ‘무게’ 때문이었다. 이 과정을 지켜보면서 뜬금없게 느껴졌던 소재에 대한 이질감이 점점 없어지고 몰입된다. 


  반면, 남산타워는 찬이 방에서 뒹굴면서 아무 생각이 없는 듯 좋아라 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찬이는 몇 번이나 결심했던 말을 삼키지만 결국은 하게 된다. 이제 돌아가라고.... 남산타워는 서운해하는 듯했지만 고마웠다는 인사와 포옹을 남기고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 언제 사라졌었냐는 듯 태연히 불을 밝힌다. 다시 멀리서 교감하는 그들의 마음이 애틋하다. 그리고 찬이에게서 씻은 듯 사라진 그 ‘무게’가 많은 의미를 남긴다. 작가가 가장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었을까? 


  작가는 ‘비밀’의 소중함을 말하는 것 같은데 나는 그보다도 ‘거리’와 ‘제자리’의 소중함이 더 크게 다가왔다. (인간의 해석은 다 자신의 성향과 가치관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남산타워가 찬이의 작은 방에서 잠시의 일탈을 즐겼을 때, 둘은 행복한 비밀을 간직했지만 그게 영원할 순 없었다. 결국 자신의 존재가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야 하는 법이다. 아쉽고 힘들어도.... 세상 모든 것들 사이에는 적당한 ‘사이’가 있고 그 사이가 잠시 좁아질 순 있어도 적당한 순간에는 제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그 타이밍을 놓치면 상황이 망가진다. 찬이의 방에서 함께 있을 때도 좋았지만 멀리서 교감하는 지금이 좋다. 무엇보다도 마음이 편해서. 


  두 번째 작품의 제목은 「다 사정이 있어」 첫 번째 작품도 그랬는데 제목에 의미를 내포하는 작가의 작명 솜씨가 탁월하신 것 같다. 사정 때문에 일주일 동안 와계셨던 친척 할머니와 유나의 이야기다. 객관의 눈으로 할머니는 치매 환자시다. 하지만 유나에게는 요정들의 세상을 알려주는 친구였다. 그리고 요정들에게도 ‘다 사정이 있’ 다는 것까지. 


  치매에 걸린 할머니가 유나의 책가방 속에 온갖 쓸데없는 물건들을 넣어놓는데, 결국 그 물건들이 의미를 찾아가게 되는 과정이 재미있고 기발하다, 정 의미를 찾지 못한 경우에는 ‘사정이 있을 거야’로 이해된다. 불평할 것 없고 시비 걸 것 없는 따뜻한 세상이다. 도끼눈을 뜨고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이런 세상이 필요하다. 요즘 내 상태가 좀 그랬다. 다시 되뇌어 보자. “다 사정이 있어.” 


  마지막 세 번째 작품 「가장 귀한 눈물」에는 할아버지와 손자가 나온다. 생계에 매달려야 하는 딸을 대신해 손자를 맡으신 외할아버지. 조부모, 더구나 할아버지가 이와 같이 돌봄 노동에 시달리는 경우가 이제는 낯설지 않다. 하긴 우리 아들도 할아버지가 많이 키워주셨다. 지금은 같이 살지만 합치기 전에 몇 달간 아들을 아버님께 맡긴 적이 있었다. 아들은 그때를 ‘행복했다’고 회상한다. 그게 쉬운 일일까? 얼마나 애쓰셨기에 손자에게 그런 기억을 남길 수 있었을까? 이 책의 할아버지도 그런 할아버지다. 


  이 작품에서도 요정이 등장한다. 눈물요정. “세상에서 가장 귀한 눈물을 나에게 주면 네 소원 하나를 들어줄게.”라고 승모에게 제안한다. 우는 거야말로 승모의 특기. 별별 일로 다 울어재끼지만 할아버지를 힘들게 할 뿐 눈물요정에게 통과받지는 못한다. 그럼 눈물요정에게 인정받은 ‘세상에서 가장 귀한 눈물’은 누구의 어떤 눈물이었을까? 그의 소원은 무엇이었을까? 


  탐욕의 눈물, 분노의 눈물이 가득한 세상에서 귀한 눈물을 보기는 얼마나 어려운가? 나 또한 귀한 눈물을 흘려본 적이 있던가? 이 짧은 이야기가 담은 메시지에 가슴이 먹먹해 왔다. 이 책을 그저 저학년용 이야기책이라고만 분류할 수 없었던 이유다. 물론 어린아이들도 그들의 수준에서 충분히 재미를 맛볼 수 있겠고 감상도 가능하다. 하지만 그 이상의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이 책이 더 귀하게 느껴졌다. 창비 좋은 어린이책 수상작이라는데 그럴 법 하구나 하고 완전히 인정! 동화에도 충분히 인생의 진리를 담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책들 중에 한 권으로 꼽을 수 있겠다. 


  웬 남산타워? 하고 뜨악해했던 첫인상을 지나, 나에게 아주 따뜻하고 깊이 있는 인상으로 마무리된 동화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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