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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천교육교사모임 Apr 29. 2021

뒷집 준범이

“야, 너도이리 와.같이 놀자.”

이혜란《뒷집 준범이》를 읽고 /박미정 씀

  학교 운동장에도, 동네 놀이터에도 아이들이 없다. 드문드문 아이들이 있어도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적당히 서로 떨어져 놀이한다. 그마저도 종일 실컷 놀 수가 없다.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진 코로나 19 바이러스 때문이다. 잠깐이면 될 줄 알았는데 많은 시간이 흘렀다. 아이들도 어른도 ‘혼자’ 지내는 것에 익숙해졌다. 스마트폰, TV 벗 삼아 지루함도 외로움도 다 견딘다. 이제 코로나 19를 통제할 수 있게 되고, 평온한 일상을 회복하면 사람들은 또 ‘함께’ 어울려 잘 지낼까? 시원하게 답을 하지 못해 머뭇거리게 된다면 이혜란의 《뒷집 준범이》를 만나보자. 


 《뒷집 준범이》는 보림창작그림책공모전 수상작인 《우리 가족입니다》의 후속작이다. 표지에는 높은 건물 앞에 1층짜리 허름한 집이 그려져 있다. 높은 건물에 가려 햇빛도 들지 않을 것 같은 집이다. 연필로만 그린 표지 그림은 그린 이의 정성을 느끼게 해 줌과 동시에 추억을 회상하듯 아련한 기분이 들게 한다. 이 집에는 누가 살까? 사실 ‘뒷집 준범이’라는 제목이 다 말해준다. 이 집에는 준범이가 살겠구나 하고 독자는 금방 알아챌 수 있다.  


  책장을 넘기면 작가는 연필로 꾹꾹 눌러쓴 듯 정겨운 글씨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책에는 시선을 확 끄는 특이한 캐릭터나 화려한 그림은 없다. 그저 담담하게, 소박하게 연필로 그리고, 연필로 글을 썼다. 평범한 우리네 이웃의 모습을 담아내기에 이보다 더 좋은 표현 방법이 있을까 싶다. 공주네, 충원이네, 강희네 가족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절로 따뜻해진다. 그런데 독자의 시선은 곧 빈집에 혼자 있으면서 창밖으로 이웃 가족의 모습을 보고 있는 준범이의 시선이기도 하다.   


  무심코 책장을 넘기다가 독자는 깨닫는다. 준범이가 마당에서 서로 어울려 노는 아이들을 보며 어떤 마음일지, 왜 이토록 준범이 방은 어둡고 쓸쓸한 흑백 그림인지 알게 된다. 할머니와 단둘이 살며, 낯선 곳에 이사 온 준범이는 외롭다. 심심하다. 무섭다. 그래서 준범이 방도 준범이도 어둡다. 마당에서 노는 아이들에게 언뜻언뜻 비치는 빨강, 파랑, 노랑의 산뜻한 색은 준범이의 이런 어둠과 대비된다. 작가는 연필로 표현한 흑백의 명암과 최소한의 채색으로 준범이의 처지와 마음을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흑백의 명암과 채색으로 인물의 감정이나 상황의 분위기를 감각적으로 전달하는 장면은 또 있다. 강희와 친구들이 “준범아 노올자”하며 준범이 집으로 들어오는 장면이다. 어둡게만 그려졌던 준범이 방에 환한 햇살이 들어온다. 강희, 강우, 충원, 공주가 준범이네 집 안으로 따스한 색을 가지고 간 것이다. “준범아 노올자”라는 말과 함께 우당탕탕 몰려오는 천진한 아이들의 몸짓과 표정 그리고 화사해지는 준범이의 모습.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이 한 장면에 다 담아 보여준다. 


  창밖으로 친구들 노는 모습을 바라보며, 부러워하던 준범이를 제일 먼저 발견한 것은 강희다. 준범이를 향해 거리낌 없이 “야, 너도 이리 와. 같이 놀자”하며 손 내민 것도 강희다. 눈 밝은 독자들은 “아! 강희!” 할 것이다. 《우리 가족입니다》에서 치매 할머니를 품고 돌봤던 그 아빠의 딸 강희. 그런 강희였기에 준범이를 발견했고, 선뜻 손을 내밀었을 것이다. 화사해진 준범이의 모습을 보며 강희에게 고맙고 또 고마워진다.


   지금 우리 가까이에도 홀로 창밖을 보고 있는 준범이가 있지 않을까. 누군가 “같이 놀자” 해주기를 기다리는 외로운 준범이. 우리는 코로나 19를 핑계로 그런 준범이를 모른 척하고 있는 건 아닐까. 강희가 준범이를 향해 당차게 손 내밀며 했던 말을 다시 떠올려본다. “야, 너도 이리 와. 같이 놀자.” 이 말이 가진 힘을 잊지 말아야겠다. 우리는 함께 어울려 놀던 사람들이다. 혼자 보다 함께일 때 기쁘고 행복했다. 어려울 때일수록 손잡고, 힘을 모았다. 


   “같이 놀자!”는 혐오와 배제, 차별을 이겨내는 말이다. 따스한 연대를 이뤄내는 말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코로나 19 상황에서 점점 사라져 가는 말이기도 하다. 이혜란 작가가 이 책을 지을 때는 이 말이 이렇게까지 그립고 소중한 말이 될 줄은 몰랐을 거다.《뒷집 준범이》는 우리에게 이웃의 의미를, 주변을 돌아보는 따스한 시선을 다시금 되찾게 해 준다. 코로나 19를 이겨내기 위해서도, 코로나 19 이후에 다시 함께 어울려 살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준범이를 향해 손 내밀던 강희의 멋진 모습을. 같이 놀자하던 씩씩한 목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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