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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천교육교사모임 Aug 11. 2021

두 번째 주제: 여름밤 4

강상준 씀

여름밤의 단상 1     


  최근 10년 이내에 가장 즐거웠던 여름밤을 뽑으라면 2017년의 하루였다. 장소는 수원. 당시 나는 교직에서 무언가에 부딪혀 있었다. 한계랄까? 누군가 저 멀리서 나에게 “여기까지인가 보오, 이제.”를 외치던 느낌이었다. 그래서 터닝포인트가 필요했다.     


  그때 후배가 “선배, 제가 전주에서 들은 좋은 연수가 있는데, 그거 한 번 해봐요.” “글쎄.” 사실 대단한 내향형 인간인 나는 새로운 상황에 놓이는 것을 극도로 꺼려한다. 게다가 아예 다른 지역에서 들어야 하는 연수라니... 나에게는 대단한 도전인 셈이다. 그런데 왜일까? 무엇인가에 이끌린 듯 사이트에 가입하고, 인기 있는 연수라 시간을 기다려 최대한 빠르게 신청했다.     


  정말 후배가 추천할 만한 연수였다. 아름다웠고, 재미있었다. 우와, 연수가 아름답다니. 그런데 정말 연수가 아름답다. 사람들이 다 반짝였고, 눈에는 신뢰감이, 그리고 단단한 신념이 느껴지는 사람들이었다. 여유가 있었고, 품이 넓어 보였다. 부러웠다. 나도 저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되고 싶었다. 그렇지만 난 쭈글한 밴댕이인걸.     


  이 연수의 가장 아름다운 점은 밤이었다. 수원 화성의 여름밤. 그 앞에서 나눴던 수업 이야기. 그런데 그 수업 이야기가 부정적이고 우울하지 않았다. 힘듦을 이야기해도 서로 용기를 북돋았고, 신나는 일에는 모두 신났다. 불행 배틀은 없었다. 사실 학교 선생님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불행 배틀을 하게 되는 것 같다. 내가 더 힘들다고 온몸을 다해 표현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분위기에 이끌려 힘들다고 토해내고, 결국 뒷담화로 끝나는 대화이기 일쑤이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아름답고 멋있었다. 그들도 왜 이런 힘듦이 없었겠는가? 그렇지만 다들 유쾌하게 불행을 넘기고 그 너머의 희망을 보고 있었다. 부러웠다. 나도 저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그런 여름밤을 이틀 보내고 마지막 날. 내가 얻은 것은 술 때문에 넉넉하게 부은 얼굴만큼이나 수업에 대한 지식, 새로운 시도, 그리고 그것 중 하나라도 실천할 수 있는 용기와 희망. 마지막으로 중등 책 읽기 교육의 아이돌을 실제로 만나 받은 사인본 책. 그래서 그 여름밤은 아름다웠다. 나는 그 여름밤을 올해 만들고 있다. 나도 그때 그 사람처럼 될 수 있을까? 한 발짝 다가갔기를 바란다.                


    

여름밤의 단상 2     


  우리 집에 에어컨이 들어온 지 4년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여름밤은 나에게 선풍기를 안고 버티는 인내의 시간이었다. 당연히 옷은 속옷만 입고, 이불이 아닌 수건으로 배를 가린 채 그저 헐떡이는 개의 혀마냥 퍼져있는 시간. 그래서 내가 돈을 벌면서 여름밤에 가장 즐겼던 취미 중 하나가 카페를 가는 것이었다. 물론 밤에만 간 것은 아니지만, 밤에 가는 카페만의 맛이 있다. 똑같은 카페인데도 저녁시간부터 밤까지의 카페는 특별하다.     

  우선 주변 구경할 재미가 있다. 이 시간대 카페는 정말 이용객 층이 다양하다. 가족단위, 연인, 친구 등 다양하지만 그중 가장 재미있는 관계는 바로 소개팅. 딱 봐도 소개팅인 남녀가 있다. 남자는 안절부절하면서 최대한 예의를 차리고, 여성은 몸가짐을 바르게 하면서 동작을 크게 하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대화가 중간에 뚝뚝 끊기는 시간이 짧게나마 생긴다. 그럴 때 남자는 여자 쪽으로 상체를 기울이며 어떤 대화라도 잇기 위한 필사의 고민을 진행한다. 눈이 바삐 돌아가고, 입술이 바짝바짝 마른다. 여성도 눈동자가 바쁘다.

  그러다 누군가 꺼낸 대화 주제가 딱 맞아떨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남녀 모두 서로를 향해 상체를 가까이 숙인다. 테이블에 팔을 올리고 그 위에 체중을 실어 서로에게 눈동자가 고정이 된다. 그때부터는 입술이 바빠진다. 입꼬리는 하늘을 향해, 눈꼬리는 바닥을 향해. 서로 목청도 자랑하고, 가지런하지 않지만 잘 정돈된 치아배열도 서로 공개한다. 음료에 얼음은 다 녹아서 싱거워지고, 그들의 대화도 언제 열기가 올랐냐는 듯, 싱거워진다. 공기 밀도가 빠지면서 다시 어색한 순간으로 돌아간다.

  그렇게 서로를 알아가며 다음에 만날 약속을 잡는 남녀도, 그날 결론을 보려다가 실패한 남녀도, 서로 마음이 맞아 손 다정히 잡고 나가는 남녀도 있다. 그들의 지금이 어쨌든 앞날이 마치 여름 햇살처럼 찬란하길 바라지만, 모르지 여름밤처럼 어두컴컴할지도. 그렇지만 다행인 건 여름밤은 짧다. 다시 희망의 시간이 다시 온다.     

  두 번째 구경거리는 의외로 조명이다. 밤 카페는 조명이 예쁘다. 은은한 주광색의 조명은 주변 분위기를 묘하게 아름답게 만들어준다. 여름밤에 주광색. 왜인지 더울 것 같은 색 배치이지만 이상하게 따뜻하다. 여름에 따뜻함이 기분 좋다고? 그렇다. 기분이 좋다. 편안하고 아늑해지는 느낌이다. 그 조명 아래 앉아 있는 사람들은 왜인지 근심 걱정 없어 보인다. 모든 인생의 근심 걱정은 나만 안고 있는 느낌이랄까? 그런 센치한 감성에 젖기 카페가 좋다. 심지어 커피 향마저 내 코를 자극하는데 감성적이게 될 수밖에 없다. 학교에서 맡는 커피 내음과는 차원이 다르다. 아침의 커피 냄새는 어딘지 모르게 서글픈 생존의 맛이 있지만 저녁 커피 향기는 조명과 함께 카페를 더욱 낭만적이고 아름답게 만들어준달까?     


  세 번째 구경거리는 내 모습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남들에게 보이기 바라는 내 모습이랄까? 개인적으로 밤 카페는 혼자 가는 것을 즐겨한다. 약간의 허세일 수도 있고, 청승일 수도 있지만, 그저 취미로 책 한 권 들고, 슬리퍼 질질 끌고 반바지 차림으로 가서 아아를 시키고 앉아 책을 읽다가, 주변을 보다가, SNS를 하다가 앉아 있는 내 모습. 왠지 싫지 않다. 도시남자가 된 느낌이랄까? 평소 느낄 수 없는 세련된 사람이 된 느낌. 그게 좋다.

  친구랑 같이 가서 대화를 나누는 것도 내 모습이 아름다운 것 같다. 바쁜 일상 속에서 여유를 즐기며 인간관계도 놓치지 않는, 성실한 사람이 된 기분이랄까? 이렇게 적고 보니 참 허세 가득한 사람 같기는 한데, 어쩔 수 없다. 다른 데서 허세를 떨기 어렵고, 겸손해야 하는 세상 속에서 유일하게 나에게 허락한 허세니까 말이다.     

  코로나가 빼앗아간 일상 중 가장 큰 것이 카페 이용이다. 테이크아웃하고, 마스크 썼다 벗었다 하면서 음료를 마시는 것은 내가 원하는 느낌이 아니다. 그런 느낌적인 느낌이 살지 않는 느낌. 마스크를 집어던지는 날,(물론 아직 멀었고, 앞으로도 마스크를 애용할 것 같은 느낌이지만) 카페로 반바지에 슬리퍼 차림으로 뛰어가서 아아 시키고 앉아서 조용히 여름밤 에어컨 바람을 즐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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