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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천교육교사모임 Nov 01. 2021

까대기

사람이 우선인 세상

박미정 씀, 이종철 지음, 보리

  요즘 사람들은 대부분의 생필품을 인터넷으로 구입한다. 원하는 물건을 검색하고, 장바구니에 담고, 결제하기까지 몇 분 안 걸린다. 배송은 또 얼마나 빠른지. 오전에 주문하면 오후에 물건을 받는다. 신선식품인 경우 밤에 주문한 식재료를 다음날 새벽에 받아볼 수도 있다. 당일 배송, 총알 배송, 양탄자 배송, 새벽 배송 등 쇼핑몰은 저마다 빠른 배송을 내세운다. 소비자는 ‘빠른 배송’을 즐기며, 이른 아침 혹은 늦은 밤 문 앞에 배달된 물건을 별생각 없이 수령한다. 


  그런데 우연히『까대기』(이종철. 보리)를 읽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 많은 물건이 우리 집까지 오는 동안 어떤 이들의 손을 거치는지, 그들이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서 견디며 일하는지 알게 됐기 때문이다. ‘까대기’는 ‘택배에서 하는 상하차 작업’을 말한다. 화물차에 가득 담긴 택배 상자를 분류 레일 위에 내려놓는 단순 작업이다. 오로지 몸으로 정직하게 땀 흘리며 해야 하는 일, 너무 힘들어서 하루 이틀 일하고 포기하는 사람이 많은 일이다. 『까대기』는 택배 물류센터를 배경으로 까대기, 택배기사 등 택배 노동자의 삶을 생생하게 그려낸 만화이다. 


  작가 이종철은 만화가 지망생으로 서울에 올라와 6년간 지옥의 알바라는 까대기 알바를 했다. 생계를 유지하며 만화 그리는 일을 하기 위해서다. 그는 까대기 알바를 하면서 ‘그동안 몰랐던 택배 노동의 진면모’를 봤고, ‘택배 일 하는 사람들이 좋아서’ 택배 만화를 그렸다. 덕분에 독자는 택배 노동 현장을 생생하게 경험한다. 극한의 육체노동을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사람들, 정직하게 몸을 움직여 일하지만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 몸이 아파도 편히 쉬지 못하는 사람들. 작가가 전하는 택배 현장에는 ‘사람’이 없고, ‘물건’과 ‘효율’만이 있다. ‘빠른 배송’ 뒤에는 열악한 환경에서 육체노동을 감내하는 서민들이 있었다.   


  『까대기』의 부제는 ‘택배 상자 하나에 얽힌 수많은 이야기’이다. ‘택배 상자 하나에 담긴 수많은 이들의 피와 땀’이라 바꿔 읽어도 되겠다. 그만큼 묵직하고 중요한 이야기다. 이 책을 읽고 나면 하루, 한 시간이라도 더 빨리 물건을 받지 못해 안달하고, 택배 서비스를 당연시 여겼던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된다. TV 뉴스에서 흘려들었던 ‘택배 노동자 사망’ 소식이나 ‘택배 파업’ 소식을 다시 떠올려보게 된다. 그동안 우리는 왜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못했을까. 왜 남의 일이라 생각했을까.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몸을 움직여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자신의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우를 받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조금 느리더라도, 조금 손해 보더라도 ‘사람이 우선’이어야 한다. 사람이 손쉽게 바꿔 쓰는 부품처럼 취급받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 모든 사람들이 우선『까대기』를 읽어보면 좋겠다. 작가의 눈을 빌려 택배 노동 현장을, 그곳에서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을 만나 보자.   '빠른, 총알, 양탄자, 새벽' 이란 말이 불편해지고, 택배 상자 하나가 조금은 다르게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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