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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천교육교사모임 Nov 01. 2021

아버지의 뒷모습

생명 값을 가르칩니다


함은희 씀, 주쯔칭 지음, 박하정 옮김, 태학사                                                          

  여느 때처럼 알라딘 중고 서점에 이런저런 책들을 팔고, 그로 인해 번 돈보다 더 많은 돈을 다른 중고서적을 사는 일에 탕진하는 재미를 누린 날이었다. 어린 막내는 가장 비싼 마블코믹스의 만화책을 골라 들었고, 요즘 한창 막내를 키우느라 고생 중이신 친정엄마는 자녀 양육서를 하나 고르셨다. 나는 안 사려고 버둥거렸지만 오늘 들어온 책 코너에서 오래된 출판사인 태학사의 산문선 시리즈 두 권을 결국 사고 말았다. 수필이라고 했던 그 담백한 글쓰기와 글 읽기의 재미를 오래도록 잊고 살았다. 그럴 법도 한 것이 페이스북에서 정말 훌륭한 글들을 많이 만나면서 굳이 찾아 읽을 정도의 열정이 있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럼에도 이 책을 훑어보는데, 몇십 년, 거의 백여 년을 거슬러 올라간 이의 일상이 주는 담백하고 담담한 감동이 문득 묵직하고도 깊게 가슴을 울리며 다가왔다. 


  그래서 골라 든 책 중의 한 권 ‘아버지의 뒷모습’ 무려 1920년대에 써진 중학교 교사 출신인 중국인 주쯔칭 씨의 글이라는데 어쩜 이리 정서적으로 가까운지. 읽다가 문득문득 담백한 그리움과 담담한 공감에 마음이 참 부드러워지곤 했다. 우리네 정서에도 가까운 그의 글을 읽으면서 학생들에게도 몇 편 읽어주었다. 그러고 나서 이 글이 언제 써진 글일까요? 하고 물어보았더니 학생들은 모두 최근의 일을 쓴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어쩌면 이럴 수가. 세상이 잘 안 바뀌는 것인지, 우리 아이들이 삶의 이면을 잘 이해하는 것인지 정확하진 않지만 슬픈 현실의 반영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학생들에게 읽어준 글 한 편의 일부를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7전짜리 목숨>


  생명은 본래 가격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가격이 있다. 인신매매업자, 포주, 그리고 최근의 납치범들은 그들의 소유물에 각기 다른 가격을 매긴 다음 다른 사람에게 팔아넘긴다는 것이다. 머지않아 공개적인 인신매매시장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런저런 ‘인간 상품’ 중에 가격이 가장 높은 것은 당연히 납치범의 인질로, 적게는 수천, 많으면 수 만원이 된다. 아마 유사 이래 ‘인간 상품’의 최고 시세일 것이다. 그다음은 포주 소유의 기생인데 수백 원에서 수천 원이란 소리가 노상 들린다. 가장 저렴한 것은 인신매매업자들의 물건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의 소유물은 그저 보통 남자, 여자 아이들인데 ‘설익은 물건’이어서 제 가격에 팔 수 없다는 것이다. <중략>


  내 두 눈으로 직접 보았던 가장 싸구려 생명은 7전에 팔려온 여자 아이다. 그 아이는 다섯 살짜리 여자아이였다. 다섯 살짜리 여자아이가 7전에 팔렸다면 아마 가장 싼 가격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세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하나의 생명, 그 생명의 자유와 일곱 개의 동전을 동시에 천칭의 저울판에 올려놓는다면, 그것은 마치 아홉 마리의 소에 한 가닥의 소털을 비교하는 것 같이 저울판의 중량 차이가 사실 너무 현격하지 않겠는가? 


  아내는 그 여자아이가 부모 잃은 고아여서 오빠와 새언니가 주인집의 사위가 하고 있는 금은방의 점원에게 팔았다고 했다. 여자아이를 데리고 식사를 하던 그 남자 말이다. 그 남자는 마누라도 없는 것 같고 수입도 변변치 않으며 또한 폭음을 일삼는 못난 자식인 듯했다. 만일 그 여자아이의 부모가 아직 살아있다면 그 가련한 어린양을 결코 팔아넘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설령 어쩔 수 없이 판다고 해도 최소한 몇 년 지나서 팔았을 것이다. <중략>


  여자아이가 성숙해 질대로 성숙해지면 남의 집 첩으로 팔아넘기고 만다. 평소에 착취할 만큼 착취했는데도 부족하여 또 긁어먹는 것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여자아이가 인물이 반반하지 못하면 남자의 환심을 얻지도 못한 채 본처의 학대를 당하기 일쑤이다. 이렇게 그녀의 일생은 눈물 속에 보내게 된다 물론 일부 주인은 하녀나 첩으로 삼기도 하겠지만 늙은이와 젊은 처녀의 결합이란 그녀의 일생을 헛되게 날리는 셈인 것이다. 결국 이렇게 되거나 저렇게 되거나 오십보백보일 따름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더욱 비참한 것은 기생집에 팔려가는 것이다. 포주야말로 정말 살 떨리는 백정임에 틀림없다. 우리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어떻게 억지로 악기를 타게 하고, 노래도 배우게 하는 것인지, 어떻게 강제로 막일을 시키는 것인지, 어떻게 회초리로 때리는 것인지, 어떻게 바늘로 찌르는 것인지, 어떻게 손님의 환심을 사도록 몰아치는 것인지, 어떻게 남은 국에 찌꺼기 밥을 먹게 하는 것인지, 어떻게 잠도 못 자게 괴롭히는 것인지, 어떻게 해서 결국 독창이 온몸에 퍼지게 되는 것인지를 그 여자아이의 용모를 봐서는 천한 기생이나 할 것이다. 그녀의 윤락가의 생애는 그렇게 끝나고 말 것이다. 그녀의 비극 또한 마치게 되는 것이다. 


   아, 7전에 너의 모든 생명을 사들였다. 너희 피와 살이 결국 하찮은 7개 동전에 지나지 않는단 말이냐. 생명이 정말 참으로 하잘 것 없구나! 생명이 정말 너무나 싸구려란 말이다.


   내 아이들의 운명에 생각이 미치자 정말 간담이 서늘해진다. 황금만능의 세계에서 인간시장이 하루라도 존재하는 한 우리 아이들은 위험합니다. 우리 아이들에 대한 모독입니다. 그대도 어린아이를 키우는 사람입니다. 생각해보시죠, 이것은 누구의 죄입니까? 이것은 누구의 책임입니까? 


  읽기가 끝나고 잠시 정적. 처음에 웅성이며 듣다가 몰입하고 이야기가 끝나자 모두가 침묵을 하게 된 것이다. 게다가 놀라웠던 것은 이 이야기를 듣고 아이들이 모두 2000년대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어째 이리 세상이 더디게 변하는 것일까 라는 자탄도 들리고. 최근에 있었던 N번방 사건도 같이 떠올리고. 잠시 숙연해지는 아이들을 보면서 왜 우리가 이렇게 타인의 생명을 값싸게 여기는 세상이 된 걸까 질문을 던져보면서 함께 생각을 확장하는 대화를 나누었다. 크게 보면 이 이야기가 남의 이야기 같기만 하지만 우리 교실에선 어떤가요? 단순히 별거 아닌 이유로 친구들을 조롱하고 혐오하는 것이 일상화되었던 현실을 알고 있는지? 그런 교실 현실, 사회적 분위기에 대한 질문을 던져보니 다들 놀라긴 하는 것 같았다. 


  생명 값의 가벼움. 못생기고 뚱뚱하다는 이유로 조롱당하고 혐오의 대상이 되는 것은 너무 당연하고 가난과 배우지 못함도 조롱과 혐오의 대상, 외모뿐만 아니라, 교실에선 성적이 낮다는 것도 무시의 당연한 이유가 되어버린 지 오래이다. 학생들과 일 년을 지내면서 처음과 다르게 학기말이 되면 학생들이 서로의 다양함과 차이를 인정하고 그 모습 그대로 귀하게 여겨주고 존중하는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러한 변화를 이 아름다운 시월에 느낄 때가 가장 기쁘고 그래도 우리 잘 살았구나. 좋은 교육의 시간을 지나왔구나 하는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된다. 나이가 들수록 아이들은 자기만의 판단이 확고해지면서 서로에 대한 오해와 자기만의 생각을 허무는 과정이 더디고 벽을 허물기가 쉽지는 않다. 그래도 우리가 함께 한 시간 동안 조금씩 성숙해져서 함부로 대하던 말과 태도들이 부드러워지고 사랑과 관용의 학급 분위기가 슬그머니 느껴질 때 행복하고 감사한 마음이다. 이해하려 하기보다는 애당초 눈길도 피하고 말도 섞지 않던 아이들, 대놓고 멸시의 눈빛을 보내던 아이들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우열이 아닌 차이로 보는 시선을 배우게 되는 기적들을 교실에서 날마다 겪는 것이 기쁘다. 


  이번에 읽어준 글도 학기 초였다면 여성주의니 뭐니 이러면서 틱틱거렸을 텐데 사람에 대한 존귀함의 시선으로 받아들여주니 고마울 뿐이었다. 2학기의 교육목표는 혐오와 차별에 눈을 뜨고 자신의 삶의 작은 영역이라도 그 태도를 바꾸는 것으로 잡고 수업시간 다루는 글들을 그런 기준으로 최대한 찾아서 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문득 그 목표가 미세먼지만큼이라도 아이들 마음에 스며들었다는 징후가 보일 때는 피로한 중에도 몸과 마음이 시원해지는 기쁜 순간이다. 생명 값의 소중함을 배워가는 학교, 생명 값을 매기며 사는 사회가  부끄러움인 것을 아는 아이들로 자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너는 너 자신으로 소중하다고. 나는 나 자신으로 소중하다고 생활 속에서 경험하고 배워가는 것이 얼마나 귀한 교육인지. 


  “네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황금률의 기본은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담담하게 써 내려간 이웃의 이야기들을 통해 아이들의 오늘과 내일을 또 돌아보는 기쁨. 무려 100여 년 전에 중학교 선생님이 쓰신 일상이 현재의 우리에게 전해져 오는 마음. 그래서 책 읽기가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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