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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천교육교사모임 Dec 03. 2021

늘 마음을 어루만지는 케이트 디카밀로의 이야기

<마술사의 코끼리>를 읽고

정기진 씀


케이트 디카밀로/비룡소

  가끔씩 어떤 작가의 최근작이 나왔나 검색을 해볼 정도면 팬이라고 말할 수 있으려나? 케이트 디카밀로는 내게 그런 작가다. 그런데 작품은 정말 가뭄에 콩 나듯 가끔 한 편씩 나온다. 다작을 하는 작가가 아닌 듯. 하지만 작품을 읽어보면 알 것 같다. 그가 왜 다작을 하지 않는지. 아니, 할 수가 없는지. 


  그의 작품은 인생을 생각하게 한다. 주제는 표면에 드러나지 않으며 단순하지도 않다. 서사는 환상적이고 매력적이나 느낌은 눈물겹다. 그래서 "재밌다"라는 표현을 잘 쓰게 되지 않는다. 작품의 흡인력이 대단한데도. 


  내 친구 윈딕시나 생쥐 기사 데스페로, 에드워드 툴레인의 신기한 여행을 아이들에게 권해주고 별 재미를 보지 못했다. 동화를 쓰는 작가이나 사실 그의 주제는 어른들에게나 와닿는 것이 아닐까?라는 걱정(?)을 해본다. 요즘 '동화작가가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쓰는 사람인가, 아이들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쓰는 사람인가, 어느 쪽이 더 동화작가의 본질에 맞는가'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런 식으로 본다면 디카밀로는 내 경험상 후자와는 거리가 좀 멀다. 인생에 대한 깊은 통찰을 작품 속에 녹여내기 때문이다. 그것을 아이들이 찾아내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그의 작품이 꾸준히 잘 팔리고 있으며 영화로도 제작되어 상영되는 것을 보면 주제의식만을 고집하는 작가는 아니라는 점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내가 왜 이런 쓸데없는 걱정을 하며 글을 쓰기 시작했는가 하면, 특히 이 책이 가장 어려웠기 때문이다. 중반 이후까지도 고개를 갸우뚱하며 읽었다. 


  이 작가가 창조한 인물들은 이분법으로 나누기 어렵다. 그리고 대부분 인생의 무게를 안고 살아간다.


  피터 - 아버지는 전쟁터에서, 엄마는 동생을 낳다가 돌아가셨다. 아버지의 전우인 빌나 루츠에 의해서 일반적인 가정의 따스함과는 거리가 멀게 양육된다.

  빌나 루츠 - 의족을 한 상이군인이다. 군인으로서의 삶과 명예를 고집하고 싶지만 마음은 늘 괴롭다.

  마술사 - 그의 생애에 시시껄렁한 마술이 아닌 대단한 마술을 한번 보여주고 싶었다. 그게 엄청난 결과를 가져왔고 그는 감옥에 갇혔다.

  라 본 부인 - 마술 공연 구경하다가 이게 웬 날벼락이람. 코끼리가 지붕을 뚫고 그녀의 무릎 위로 떨어졌고 불구가 되어 휠체어에서 살아야 한다.

  레오 마티엔느 - 시인의 영혼을 가진 경찰. 아내 글로리아와 함께 피터의 아래층에서 살고 있다. 그들이 사랑해 줄 아이가 생기지 않아 슬퍼한다.

  바르톡 윈 - 괴물상을 특히 잘 만들던 전직 석수장이. 성당 꼭대기에서 떨어져 척추를 다친 후 코끼리 시중꾼으로 일하게 된다. 늘 큰 소리로 웃는다. 단, 기뻐서 웃는 게 아니다.

  한스 익맨 - 라 본 부인의 충실한 하인. 오랜 기억 속 어린 시절의 하얀 개를 떠올린다. 


  이야기는 시장에 심부름을 나왔던 피터가 "1 플로릿만 내면 당신의 마음이나 머릿속에 간직된 가장 심오하고 어려운 문제에 대한 답을 알려드립니다"라는 쪽지에 이끌려 심부름할 돈으로 점쟁이의 천막에 들어간 일로부터 시작된다. 피터의 마음속에 간직한 질문은 이것이었다. "어떻게 하면 제 동생을 찾을 수 있나요?" 


  점쟁이의 대답은 황당했다. "코끼리가 널 그곳으로 안내해 줄 거야."


  코끼리라니. 될 말인가? 그러나 그날 저녁, 오페라 극장에서 위에 쓴 것과 같은 사건이 일어나고 말았다. 코끼리는 나타났다. 한 귀부인의 다리는 부러졌고 마술사는 감옥에 갇혔고 코끼리는 처치곤란이 되었다. 


  이후로부터 짜여 가는 이야기는 내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다가 한순간에 맞춰져 버린 퍼즐처럼 마지막에 완성되었다. 모든 등장인물과 동물들은 자신의 역할을 했다. 자신의 가슴속에 키워 오던 꿈을 통해서. 그러면서 모든 것들은 있어야 할 자리를 되찾았다. 이야기는 따뜻하게 끝났다. 


  끝까지 내 마음을 풀어주지 못한 부분이 있는데 불구가 된 부인에 대해서이다. 나머지 이야기가 다 해피엔딩이라 해도 부인은 다리를 잃었지 않은가? 부인의 다리가 다른 이들의 행복보다 중요하지 않단 말인가? 그렇다면 마법으로 부인의 다리가 원래대로 낫는 게 좋은 결말이었을까? 그랬더라면 서사적 가치는 뚝 떨어졌을 것이다. 그래도 난, 부인의 다리가 자꾸만 마음에 걸려서..... 이야기에 몰입하기가 힘들었다. 


  그런데, 모든 일이 끝난 뒤 감옥 마당에서 라 본 부인은 이렇게 말한다.


  "마술사를 감옥에 다시 가둘 필요가 없다고. 그래 봤자 아무 의미도 없으니까. 이미 일어난 일은 일어난 일이야. 그러니 저 사람을 그냥 풀어 주세요."


  "부인."


  "그래요. 가 보세요."


  마술사가 가 버리자 라 본 부인은 자신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던 무거운 짐이 갑자기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가는 것 같았다. 


  케이트 디카밀로는 용서에 대해 자주 이야기한다. 생쥐 기사 데스페로에서 그랬던 것처럼.... 내가 부인의 다리에 집착하는 것처럼 용서는 힘든 일이다. 그러니 디카밀로의 작품이 쉬울 리 없다. 작가는 좀처럼 편안하고 부유한 삶을 그리지 않는다. 고단한 삶에서 서로 버팀목이 되어주는 사람들의 관계와 그들의 희망을 이야기한다. 그 사이에서 나는 내 것을 잃을 수도 있고 누군가를 용서해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나는 아직 이것이 안된다. 그래서 힘든 것일 게다. 


  디카밀로의 작품 속 세계는 짙은 안갯속 같다. 불투명한 유리창에 눈을 대고 들여다보는 느낌이다. 뭔가 뚜렷한 윤곽도 색채도 아니지만 그립고 따스하며 아름답다. 모르는 사이에 그의 작품은 내 마음을 어루만지고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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