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추석에는 부디 삼가 바랍니다
확실히 퇴직하고 나니 집안 행사에 참여할 기회가 많아졌다. 회사원이었을 때는 바쁘다는 핑계로 얼굴만 비추었던 곳도 일단 방문하면 오랜 시간 머물게 되었다. 그간 몰랐던 사람들의 속사정을 들으면 무심했다는 반성도 되면서 이후로는 종종 왕래해야겠다는 다짐을 하였다.
하지만 친척들과의 만남이 매번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간혹은 불편한 기분이 들 때도 있었다. 특히 사람들이 나의 퇴직 후 근황을 물어올 때는 더욱 그러했다. 걱정하는 마음이야 이해 가지만, 그 가운데 유독 껄끄럽게 들리는 말들도 있어 속상해지는 일이 다반사였다.
가장 듣기 싫은 질문은 요즘 뭐 하냐는 내용이었다. 특히 작은아버지는 나를 보실 때마다 이 질문을 빼놓지 않고 하셨다. 내가 현직에 있을 당시에는 본사에서 일하냐, 진급은 했느냐 등과 같이 회사와 관련된 얘기만 물으시더니 퇴직 후에는 요즘 어떤 일을 하는지에만 관심을 가지셨다. 유형만 바뀌었을 뿐, 예나 지금이나 내가 하는 업무가 참 많이 궁금하신가 보았다. 작은아버지는 나를, 평생 일만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
이 질문을 받으면 내 머리는 복잡해졌다. 회사를 떠난 후 게으름을 피지도 않았는데, 여전히 내겐 한 단어로 정리할 직업이 없었다. 언제는 글을 쓴다고 했다가 또 언제는 스타트업에 다닌다고 했다가, 말하는 나조차도 민망할 정도였다. 간신히 대답하고 나면 내 속은 시커멓게 타들어 갔다. 대체 나는 왜 아직도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있는 걸까. 떠돌이 같은 내 신세가 차량 맞게 생각되었다.
다음으로 불편한 질문은 수입에 관한 내용이었다. 1년에 한두 번 만나는 사촌 형님은 나의 살림살이를 늘 알고 싶어 했다. 평생 개인사업을 하면서도 직장인의 삶이 궁금한 듯 했다. 자신의 벌이가 변변치 않을 때는 회사원처럼 속 편한 직업이 어딨냐며 까칠하게 굴기도 했다. 아마도 나를 통해 자기의 모습을 저울질하는 것 같았다.
이 물음에도 나는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 퇴직 후 온전히 내 노력으로 벌어들인 돈은 그리 많지 않았다. 몇 년 전 사업 실패로 손실 난 수억이 아직도 내겐 커다란 짐이었다. 중장년 일자리가 시간당 1만 원인 현실 앞에서 과연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자존심이 상하여 매번 얼버무렸지만, 앞으로도 뾰족한 수가 없어 걱정이 태산이었다.
앞선 두 질문에 대한 답이 신통치 않으면 여지없이 이렇게들 물었다. 그냥 지나치는 사람이 없었다. 그 끝에 열심히 하라는 말까지 들으면 마음이 털썩 내려앉았다. 제발 속으로만 응원해 주면 안 될까. 세상 사람들이 흔히 주고받는 격려의 메시지는 퇴직자인 내게는 와닿지가 않았다. 두 번째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열심히 하고 힘을 낸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일은 별로 없기 때문이었다.
결정적으로 이 대목에서 나는 굳게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퇴직 후 가장 큰 깨달음은 내 계획대로 되는 일은 없다는 거였다. 회사를 떠난 후 수많은 계획을 세웠지만, 예상대로 흘러갔던 적은 손에 꼽았다. 그 때문에 언제부턴가는 먼 계획은 세우지를 않게 되었다. 그날그날 열심히 사는 게 차라리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날에 대한 확신도 없는 사람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화제를 돌리는 것만이 최상의 방법이었다.
이런 대화가 오간 후에는 여지없이 스스로 외톨이를 만들었다. 음식도 먹는 둥 마는 둥 식탁 주변만 맴돌며 부엌일을 도맡아 했다. 자신 있게 할 말이 없으니 피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렇다고 사람들에게 이러 이런 말들은 삼가해 달라고 부탁할 수도 없고 한 마디로 죽을 맛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왜 이토록 작아지는 걸까. 꼭 큰 성공을 해야지만 어깨 펴고 살 자격이 주어지는 것도 아닌데 굳이 기죽어 다닐 필요는 없지 않을까. 무엇보다,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은 그냥 하는 말일텐데 괜시리 혼자서 족쇄를 채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론적으로 나는 아직까지도 직장인 시절의 잣대를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눈에 띄는 성과를 내지 못하면 과정에서의 노력도 저평가해 버리는 나쁜 습관, 바로 이것 때문에 나 자신을 쉴 새 없이 몰아붙이고 홀대하고 있었다. 직장인이었을 때야 어쩔 수 없었다지만 퇴직 후에는 당장이라도 버리지 못하면 영원히 행복해질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요즘 나는 스스로에게 관대해지려고 노력하고 있다. 작업하는 글의 맥락이 영 조악해도, 영상의 퀄리티가 현저히 떨어져도 고생했다고 말해주고 있다. 맘에 들 때까지 몇 번을 되풀이하기보다 차라리 나와서 짧은 쉼을 갖는다. 팍팍한 회사밖 생활, 견뎌내주는 것만으로도 난 내가 참 고맙다.
만약 나처럼 퇴직 후에도 쉴새없이 뜀박질만 하시는 분이 계신다면, 이번 추석에는 잠시 여유를 가지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단 며칠만이라도 자신을 보듬어 주시는 따뜻한 한가위를 보내셨으면 좋겠다. 나를 포함하여 이 땅의 모든 퇴직자분들은 이미 충분히 애쓰셨고 수고하셨다.
※ 즐거운 한가위 보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