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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아로운 생각 Oct 26. 2024

퇴직 후 경조사에 함부로 다니면 안 되는 이유

#퇴직 8년 차ㅣ중소기업 임원 이야기


저는 광명시에 사는 60대 중반입니다. 회사를 나온 지도 벌써 8년이 다 돼가네요. 저는 그리 크지 않은 기업에서 지원 담당 임원으로 일했습니다. 회사의 이 구석 저 구석을 살피며 총괄하는 업무였지요.     


이제는 퇴직자라는 꼬리표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지만, 회사 나와서 처음 이삼 년까지는 모든 게 낯설고 힘들었습니다. 확실히 그 시절과 비교해서 제 마음이 어느 정도 평온해진 것을 보면 뭐니 뭐니 해도 세월이 약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여전히 곱씹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답답해지는 기억이 있습니다. 퇴직이란 게 이런 거구나 하는 것을 실감하게 해 주었던 경험이었지요.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드리려고 합니다.   

  

제가 퇴직을 한 바로 다음 해였어요. 어느 날 아침 일곱 시도 안 돼서 문자가 왔습니다. 대개 이른 아침이나 밤늦게 오는 연락은 다급한 소식들이 많은데 확인해 보니 역시나 부고 문자였습니다. 예전에 함께 근무했던 후배의 부친께서 세상을 떠나셨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순간 눈을 감고 짧게나마 고인의 명복을 빌어드렸습니다. 그리고 후배를 떠올렸습니다. 후배는 제가 많이 아끼던 친구였습니다. 같이 일하는 동안 늘 저의 든든한 오른팔이 되어 주었지요. 후배 또한 제게 항상 감사하다고 말을 해주어 더욱 고마웠습니다. 그런 친구가 큰일을 당했다면 마땅히 가야 했습니다. 부랴부랴 채비를 마치고 장례식장이 있는 부산으로 향했습니다.     


오후 두 시, 예상보다 일찍 도착하고 나니 서두르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장례식장에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 않았습니다. 바로 모니터에서 상주 이름을 확인하고 빈소로 향했습니다. 오래간만에 만난 후배는 무거운 표정이었어요. 시간의 흔적과 그간의 노고도 고스란히 느껴졌습니다.


짧게 조문을 마치고 식당으로 향했습니다. 서른 평 남짓 되는 공간 안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한쪽에 자리를 잡자 아주머니 한 분이 금세 한 상을 차려주시더군요. 배는 살짝 고팠지만, 일단은 후배를 기다리기로 하였습니다. 후배가 식사 때를 놓쳤을 수도 있으니까요. 우선은 물 한 모금부터 마셨습니다.     


한 10분 정도 지났으려나요. 후배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줄곧 물만 마시면서 앉아 있었지요. 식어가는 밥을 앞에 두고 음료만 마시려니 살짝 민망해졌습니다. 그렇다고 후배가 오지도 않았는데 넙죽 나 홀로 먹을 수는 없었습니다. 어차피 후배가 금세 올 것 같으니 잠시 더 기다려보기로 했습니다.


다시 10분이 흘렀습니다. 역시나 저는 혼자였습니다. 차려진 상 앞에서 마냥 있기도 뭐 하고 해서 그제서야 숟가락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조금 의아했습니다. 식당 안에 있는 손님이라고는 저 하나였고, 제가 인사를 드리고 나온 후에도 조문하러 온 사람이 전혀 없었거든요. 다급한 일은 없어 보이는데 후배가 나타나지 않는 게 이상했습니다.     


그 후로 10분이 더 갔습니다. 저만 덩그러니 식당에 앉아 있은 지도 30분이 되었습니다. 확실히 보통의 경우는 아니었습니다. 계속해서 영정을 지키고 있는 후배의 마음은 헤아려지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먼 길 찾아간 손님에게 잠시도 와보지 않는 태도가 서운하게 느껴졌습니다. 빈소 옆 중간 문을 열고, 몇 발자국만 걸으면 제게로 올 수 있는데 대체 왜 꼼짝도 하지 않는지 영문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총 한 시간이 지났습니다. 올라가는 기차 편을 끊어 놓은 터라 더는 머무를 수도 없었습니다. 저의 궁금한 마음은 서운한 마음으로 변한 지 이미 오래였습니다. 그때부터는 오히려 후배를 마주칠까 봐 걱정이 되었어요. 만나면 어색해질 게 뻔한데 인사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지요. 때마침 찾아온 다른 문상객들이 반갑게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그 사람들을 핑계 삼아 장례식장을 빠져나오면 됐으니까요. 도망치듯 자리를 뜨는 저 자신이 초라해 보였습니다.     

 

이후로도 후배에게는 연락 한 통 없었습니다. 문자로라도 감사하다는 인사조차 받을 수 없었습니다. 다음 날은 물론 다음 달도 그리고 몇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후배는 저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차마 먼저 말할 용기는 없고 의례적인 메시지라도 보내주면 좋으련만, 바라는 그 마음조차 욕심인가 봅니다    

 

그래서일까요. 이후로는 전에 알던 사람들에게 제 마음을 전하는 것이 어렵게만 느껴집니다. 나는 진심이지만 상대방은 정반대로 받아들일 수 있으니까요. 일단은 눈치부터 봐야 하는 상황들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아마도 제가 퇴직을 해서겠지요.     


후배에 대해서는 열심히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당시에 후배에게는 제가 모르는 다른 일이 있었을 거라 생각하는 중입니다. 그냥 그렇게 여기며, 오늘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모든 분들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 유튜브 '퇴직학교'에서 더 자세한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youtu.be/ZnLTB5z_vFE?si=BDbciBKaPcYqzhE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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