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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아로운 생각 Sep 20. 2024

퇴직 전후에 달라지는 명절에 대한 생각

#퇴직 1년차ㅣ중소기업 부장 이야기


저는 작년 연말에 퇴직한 사람입니다. 작은 중소기업에서 근무하다 육십 직전에 제 발로 나왔지요. 제가 다녔던 회사는 오십 중반이 되면 다들 나가는 분위기였지만 저는 그냥 눌러앉아 있었습니다. 당장 형편이 안 돼 가능한 버텨볼 생각이었으나 이래저래 치이기만 해서 결국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퇴직한 지 1년이 다 돼가는 지금은 집에서 쉬고 있습니다. 처음엔 실업급여받는 기간만 휴식하려 했었는데 보아하니 계획대로는 잘 안될 것 같습니다. 얼마 전부터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지만 영 쉽지가 않네요. 점점 마음은 조급해지고, 그래도 하는 데까지는 해보려 합니다.


저는 회사를 나와서 사람 만나는 게 제일 힘들었습니다. 제가 워낙 낯가림도 심하고 말주변도 없어서 혼자 있는 것을 더 편해하는 성격이거든요. 친척들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직장 다닐 때는 일 핑계 대며 집안 대소사에 빠지기도 했었는데 퇴직 후에는 핑곗거리가 사라져 웬만하면 참석하는 중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래저래 맘 상하는 일만 생기네요.      


특히 이번 추석은 정말 죽을 맛이었습니다. 명절 며칠 전부터 아내가 묻더군요. 처가에 언제 갈 거냐고요. 저희 처가는 김포에 있는데 장모님께서 혼자 살고 계십니다. 아내는 그런 장모님이 안쓰러운지 명절 다음날은 무슨 일이 있어도 새벽같이 김포로 출발했습니다. 먼저 가서 음식을 장만하다가 점심때쯤 제가 가면 함께 식사를 하는 일이 수십 년째 저희 집 명절 스케줄이었지요.


그런데 퇴직을 하고 나니 그러기도 애매해지더군요. 뻔히 집에서 노는 사람이 아내 먼저 처가에 보내는 것도 우습고, 교통비를 이중으로 쓰는 것도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궁리 끝에 이번에는 아내와 같이 움직이기로 했습니다.


저희 부부가 처가에 도착하고 얼마 후에 큰 처제 식구들이 왔습니다. 올해 초 대학에 들어간 조카도 함께 왔더군요. 밝은 얼굴로 인사하는데 그냥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입학 후 처음 만나는 지라 왠지 용돈이라도 챙겨줘야 이모부의 체면이 설 것 같았습니다. 다행히 현금은 가지고 왔는데 살짝 고민이 되었습니다.    

  

‘얼마를 줘야 할까?’ 대학생 아이에게 달랑 몇만 원을 주자니 손이 부끄럽더라고요. 그렇다고 십만 원, 이십만 원을 주기도 망설여졌습니다. 확실히 퇴직한 뒤에는 형편이 예전 같지 않았고, 요 몇 주 결혼식 쫓아다니느라 이미 이번 달 예산을 초과한 상태였거든요. 갑자기 예정에도 없는 용돈을 주려니 나중에 쪼들릴 일이 걱정되었습니다.

    

짧은 순간에 머리가 뒤죽박죽 되었습니다. 처가에 더 늦게 올 걸 그랬나 싶기도 하고, 오고 있는 다른 애들한테는 어떻게 해야 하나 싶어 여러모로 복잡해졌습니다. 그런 제 모습이 스스로도 너무 궁상맞게 보이더라고요. 그 끝에 큰맘 먹고 오만 원짜리 두 장을 꺼냈습니다. 보는 눈들이 많아 도저히 만 원짜리 몇 장을 줄 수가 없었습니다. 순간을 모면했다 싶었는데 진짜 난감한 상황은 그다음이었습니다.

  

“장모님, 저 왔습니다” 막내 처제 내외가 왔더라고요. 솔직히 막내 동서는 저와 좀 안 맞았습니다. 저는 조용히 있는 걸 좋아하는데 막내 동서는 목소리도 크고 떠벌리기도 잘하는, 저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성향이었습니다. 게다가 작년 해 상무로 승진까지 해서 마주치기가 더 싫었습니다. 공교롭게도 같은 해에 퇴직한 저와 비교가 됐으니까요.     


“형님, 어떠세요?” 그런 제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막내 동서가 다짜고짜 제게 물었습니다. 말투에서 당연히 제가 퇴직 후에 힘들어할 거라고 짐작하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알아보고 있다고 답하자 또 이런 말을 했습니다. “형님도 이제 좀 쉬세요. 쉬실 연세 시잖아요”     


참 서운했습니다. 내년에 오십 되는 동서는 자기는 젊은 줄 아나 보았습니다. 안 그래도 요즘 어디 나가면 제 나이보다 더 보는 사람들이 많아 속상한데, 처가에 와서까지 나이 얘길 듣다니 기분이 상했습니다. 무엇보다 제 얘기가 대화의 주제가 되는 게 편치 않았습니다. 그저 죽은 듯 있고 싶은데 온 관심이 제게만 집중되니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먼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원래는 처가에서 저녁도 먹고 분위기 봐서 하룻밤을 잘 심산이었지만 으슬으슬 몸살기가 있다고 거짓으로 둘러댔습니다. 혼자 전철을 타고 오려니 오만 생각이 들더군요. 내가 너무 속 좁게 군 것은 아닐까 후회도 됐지만 어두운 표정으로 있는 것보단 나을 것 같았습니다.      


집에 도착해 동네 편의점에서 캔맥주를 마시는데 구슬퍼지기 시작했습니다. 퇴직 전에는 명절 하면 며칠 푹 쉬기도 하고 친척들도 만날 수 있어서 좋았었는데, 퇴직하고 나니 전혀 그렇지가 않네요. 퇴직은 명절에 대한 느낌마저도 달라지게 만드는가 봅니다.     


몇 년이 더 지나야 제가 좀 괜찮아질까요. 사람들은 퇴직하고 1년이 가장 견디기 힘들다고 하던데 정말 1년이 지나면 나아질까요. 부디 내년 추석에는 제 처지가 지금보다는 여유로워졌으면 좋겠습니다. 꼭 그렇게 해달라고 둥근 보름달에 빌고 또 빌었습니다.




※ 유튜브 '퇴직학교'에서 더 자세한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youtu.be/6wlsOCMTd6s?si=Sz1-8q1ummqByXK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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