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7년 차ㅣ중견기업 대표 이야기
저는 경산에 사는 60대 중반으로 퇴직한 지 7년이 넘은 사람입니다. 이만큼 시간이 흐르다 보니 이제는 언제 내가 회사에 다녔나 싶을 적도 있네요. 가끔 예전 직장 동료들로부터 경조사 문자를 받을 때나 제가 한때 직장인이었던 사실을 떠올리게 됩니다.
저는 중견기업에서 대표를 지냈습니다. 전국에 슈퍼마켓 체인을 운영하는 회사였어요. 당시에는 제법 매장 수도 많고 가격도 싸다고 소문이 나서 대형마트 이상으로 인기를 누렸습니다. 충성고객이 있는 알짜배기 지점도 여러 개라 수익성도 괜찮았지요. 아쉽게도 그랬던 분위기는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점점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다들 손가락으로 쇼핑을 하다 보니 고객들이 빠르게 줄어들었습니다.
그때는 출근하자마자 무조건 매출 실적부터 확인해야 했습니다. 언제부턴가 일 목표 100% 달성은커녕 90% 아래로 떨어지는 경우도 생겨 스트레스가 상당했어요. 하지만 시대적 변화를 어쩌겠습니까. 아무리 가격 할인을 하고 추가 덤 상품을 쏟아부어도 한번 떠난 손님들을 다시 돌리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이런 분위기면 저의 자리도 위태롭겠다는 불안감이 서서히 들었지요.
그러던 중 결정적인 사건이 하나 터졌습니다. 한여름 어느 날이었어요. 바캉스 시즌이라 매출이 연중 최고로 오를 시기였습니다.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는데 인사 임원이랑 영업 임원이 보고할 게 있다며 들어왔더라고요. 굳은 표정으로 보아 심각한 사안인 것 같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관공서에서 불시점검이 나왔는데 매장에서 한 가지 사항이 적발됐다고 했습니다.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습니다.
그즈음에 개정된 지 얼마 안 된 법이 있었거든요. 노동자들을 보호한다는 목적으로 법제화가 되었는데 취지는 이해가지만, 현장에 적용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는 게 사실이었어요. 조심한다고 했는데 상황이 심각해졌다며 영업 임원이 고개를 숙였습니다. 들으려니 저 또한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결국, 저는 그로부터 얼마 후 회사를 나오게 되었습니다. 제가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하는 수순을 밟아야 했습니다. 마음이 참 무거웠습니다. 자리에 대한 욕심보다는 불미스러운 사건에 연루되었고 미처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물러나려니 무척이나 심란했습니다. 마지막까지 소임을 다해야겠다는 결심만 제외하고는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했습니다.
제 의지와는 달리 저는 퇴직 후에 크게 당황했습니다. 제가 예상하지 못했던 부메랑이 연속해서 날아왔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가 저의 오랜 숙원을 포기하게 된 거였어요. 저는 회사와 이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모 대학으로부터 교수 제의를 받았습니다. 현장에서의 경험을 학생들과 생생하게 나누는 과목이었습니다. 시종일관 분위기도 좋았어요. 총장과 면담까지 하고, 바로 다음 학기부터 강의를 진행하기로 결정되었으니까요.
“대표님, 이게 뭔가요?” 그러던 중 처장이 전화를 했더라고요. 인사를 할 새도 없이 다짜고짜 이렇게 물었습니다. 순간 목소리 톤만으로도 감이 왔습니다. 여전히 법적 문제를 안고 있는 제 이력이 걸림돌이 된 것 같았습니다. 대학 측이 최종적으로 저의 신분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제가 가진 결격사유를 발견했던 것이었어요. 그저 죄송하다고 말씀드리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솔직히 저도 당황하긴 매한가지였습니다. 저 역시 전혀 예측하지 못했거든요. 근무 중 떠안은 책임이 두 번째 출발을 하는 저에게 영향을 줄 거라는 생각을요. 저의 개인적인, 특별히 윤리적인 잘못도 아니고 업무를 수행하는 가운데 후배들을 보호하느라 짊어진 사슬인데 그게 그렇게 장애가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저는 그 일을 서두로, 퇴직 후 5년 동안 아무 일도 하지 못했습니다. 신원 증명이 필요한 공식적인 대외 활동은 어떤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참담했습니다. 퇴직 후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한 골든타임에 발이 완전히 묶였으니까요. 일단 새로운 일을 하려면 걱정부터 들었습니다. 어차피 마지막에 틀어질 게 뻔한데 굳이 시도를 할 필요가 있나 싶었습니다.
퇴직 후 제 진짜 아픔은 무언가를 해보고 나서 얻은 실패가 아니라 아무것도 해보지도 못하고 얻은 실패였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숱한 실패 경험을 이야기하면 가끔은 부러워지기도 합니다. 하고 싶은 일을 원 없이 도전이나 해봤으면 후회라도 없었을 텐데, 저에게는 그런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요즘 저는 고향에 내려와 지내고 있습니다. 지금은 세상 돌아가는 것도 모르겠고 저란 사람이 사회에 나가는 것 자체가 욕심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모든 분들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 유튜브 '퇴직학교'에서 더 자세한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youtu.be/9INhong8Bh8?si=QGO5VkqVtNK_YT0x